2017년 5월 6일 토요일

악마와 소녀 - (1)

 옛날 옛적, 한 옛날, 어딘가에.
 그리 크지 않은 작은 마을의 옆에는 숲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숲속의 오두막에는, 한 악마가 살고 있었답니다.
 후미카라는 이름의 악마는 홀로 누구와도 만나지 않은 채, 오두막에 가득한 책을 읽으며 살아가고 있었어요.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는 후미카는 책들을 읽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비록 그 책에 쓰여진 것 모두 그녀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들이라고 해도, 그것을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풀어냈고 자신의 생각을 남아냈는지는 알 수 없었으니까요.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숲에는 악마가 살고 있으니 가까이 가지 말라고 늘 이르곤 했답니다.
 비록 후미카가 아이들의 심장을 빼어먹거나 갓난아기를 제물로 바치지는 않았지만, 마을 바로 옆의 숲에 악마가 산다는 것만으로도 마을 사람들은 불안했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후미카를 두려워하며, 마치 그 숲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살아갔답니다.
 그런 마을에, 호기심이 아주 많은 소녀가 살고 있었어요.
 소녀의 이름은 아리스였습니다.
 아리스는 모든 것이 궁금했어요. 날아가는 저 새의 이름도, 숲속의 나무의 이름도, 길가에 피어있는 꽃의 이름도 궁금했어요.
 그것만이 궁금한 게 아니었어요. 저 새는 어디에서 왔을까도, 저 나무는 이야기로만 들은 머나먼 바다 너머의 나라에서도 자라는지도 궁금했어요. 아리스는 머나먼 바다 너머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어요. 밤하늘의 별들은 왜 반짝이는지도 궁금했어요. 어째서 달은 조금씩 커지고 작아지고를 반복하는지도 궁금했어요. 아리스는 말 그대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답니다.
 어릴 때부터 아리스는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봤어요. 하지만 시골 마을의 사람들은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제대로 내놓을 수 없었답니다. 그들이 대답을 해줄 때마다 아리스의 의문은 줄어들기는 커녕 계속 커지기만 할 뿐이었어요. 겨우 납득할만한 대답을 들었으면 또다른 의문이 생겨났죠. 결국 마을 사람들은 점점 그런 아리스를 귀찮아하고 질려해갔어요.
 마을에 한 명뿐인 신부님의 대답도 아리스에게는 제대로 된 대답이 되지 않았어요. 하느님의 은총으로 별이 빛난다면 어째서죠? 어째서 하느님은 달을 그렇게 만드신 거죠? 신부님은 계속되는 질문에 견디다 못해 계속 그렇게 질문을 해대면 이단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경고까지 했지만, 아리스에게는 그것 역시 새로운 의문일 뿐이었답니다.
 아리스는 크지 않은 마을 안에 있는 책이란 책은 이미 모두 읽었어요. 새로운 책을 구하려고 해도 아리스의 집은 그럴 돈은 없었답니다. 가끔 마을에 들리는 상인들에게 부탁했지만, 그걸로는 아리스의 호기심을 채울 수 없었어요. 거대한 호수의 물을 티스푼으로 퍼낼 뿐이었죠. 얼마 안되는 책을 읽을 때마다 아리스는 목이 마르기에 바닷물을 마시는 기분만을 느꼈어요. 비록 바다를 본 적도 없었지만. 그러고 보면 어째서 바다는 짠 걸까요? 그 소금은 어디에서 온 걸까요?
 매일같이 계속되는 의문과 질문 속에 아리스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답니다. 너무나도 답답해서 잠도 잘 수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리스는 숲속의 악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답니다.
 숲속의 악마는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대.
 어른들은 늘 악마에 대해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악마는 신과 대적하는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시작으로, 아이의 심장을 산채로 뽑아 먹는다는 잠자리에서 들려줄 이야기까지요.
 아리스는 그 모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믿지 않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어요. 아리스는 두려워하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그 악마가 무섭고 두렵다고 해도 이 터질 것 같은 의문의 괴로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아리스는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리스는 사람들 몰래 마을을 벗어났어요.
 아무도 돌보지 않아서 잡초가 무성하게 나 흔적만 남은 길을 따라 숲으로 향했어요.
 자신의 키보다 몇 배나 큰 나무들을 수도 없이 지나 헤맨 끝에, 아리스의 눈앞에 오두막이 나타났어요.
 소문은 거짓말이 아니었어요. 꿀꺽, 하고 아리스는 침을 삼켰어요.
 악마 같은 건 없어. 아리스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오두막에 사는 사람은, 분명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거야.
 그런 기대를 가지고, 아리스는 오두막 문을 두드렸습니다. 똑똑. 귀여운 노크 소리였어요.
 계세요?
 아리스는 불안을 숨기려 하며 말했습니다.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아리스는 다시 한 번 문을 노크하며 말했습니다.
 안에 누구 계세요?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습니다. 아리스는 실망했습니다.
 그저 소문이었던 걸까. 그저 여기는 버려진 오두막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오두막 안에서 발소리가 들렸어요. 또각, 또각. 나막신이 나무바닥을 차는 소리였어요.
 끼이익.
 오랫동안 열리지 않아서인지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면서 문이 조금 열렸습니다.
 그 사이로는 젊은 여성이 서있었어요.
 누구세요?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였습니다. 눈높이에 아무도 없어 두리번 거리던 후미카는 시선을 낮췄어요.
 당신이 숲속의 악마인가요?
 아리스는 당당하게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어요. 아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어렵게 구한 자신의 노트를 끌어안았어요. 후미카는 아리스의 말에 눈을 깜빡거렸지만, 이윽고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어요.
 네. 제가 숲속의 악마랍니다. 사람이 저를 찾아온 건 오랜만이네요. 무슨 일이신가요?
 당신이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다고 들었어요.
 네. 그렇답니다.
 아리스의 질문에 후미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다면 저에게 알려주세요.
 용기를 낸 아리스의 부탁에 후미카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습니다.
 무엇을 알려주길 바라나요?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이요. 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요.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아요.
 아리스는 후미카의 질문에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아리스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자신에게 대답해주지 못했던 질문들을 쏟아냈습니다.
 저 새의 이름은 뭔가요? 이 나무의 이름은 뭔가요? 어째서 밤하늘의 별들은 빛나고 달은 크기가 변하나요? 하늘은 어째서 파랗죠? 바다는 어째서 그렇게나 물이 많고 짠 거죠? 그 소금은 어디서 나온 거죠?
 아리스의 질문은 끝이 없을 것 같았답니다. 그 말에 후미카는 조용히 문을 닫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어요. 질문을 계속해서 토해내던 아리스는 그 행동에 말을 멈췄습니다.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순식간에 차가운 분노만이 차올랐어요.
 결국 소문이었을 뿐이야.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기는 무슨. 이 사람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 그딴 걸 궁금해한다고 하는 거야.
 실망감에 아리스는 몸을 돌리고 다시 마을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때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문이 열렸습니다. 돌아본 아리스에게, 문을 열며 후미카는 말했어요.
 미안해요. 집 안이 지저분했거든요. 손님은 오랜만이라서요. 자, 안으로 들어오세요.
 예상 외의 대답에 당황하면서도, 아리스는 기대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오두막 안으로 들어섰어요. 그리고 오두막 안의 광경에 아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답니다.
 우와.
 책, 책. 어딜 봐도 책이었어요. 밖에서 볼 때는 그저 작은, 무너져가는 오두막일 뿐이었는데 안이 이렇게 큰 것도 놀라웠지만, 아리스에게 가장 놀라운 것은 그 공간을 모조리 책으로 메우고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벽마다 있는 천장까지 닿는 책장에도 책이 가득하고, 거기 들어가다 못해서 바닥을 모두 책이 탑을 쌓고 있었어요. 오두막 안의 빈 공간보다 책이 차지하는 공간이 더 많아보일 정도였답니다.
 그 끝, 창문 쪽에 가까운 곳에는 테이블이 있었어요. 후미카의 안내에 아리스는 자리에 앉았답니다. 후미카는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찻주전자와 컵을 가져와 아리스에게 따라주며 말했어요.
 지저분하죠? 제가 책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아니에요. 정말 멋있어요.
 빈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 증거로 아리스는 오두막 안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저 온 사방의 책들만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아리스가 지금까지 그리 길지는 않지만 평생동안 탐욕스럽게 읽어온 마을 내의 모든 책도, 후미카의 오두막에서는 바닥에 쌓인 작은 탑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처럼 보였어요. 눈을 반짝이며 사방을 둘러보는 아리스에게 후미카는 살포시 웃으며 말했답니다.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뭐든 가져가서 읽어도 좋아요.
 예상하지도 못한 말에, 아리스는 차마 대답하지도 못했어요. 그저 믿을 수 없다는 듯 후미카를 바라볼 뿐. 후미카는 그런 아리스를 보며 웃었어요.
 여기 있는 것들은 이미 다 읽은 책들이니까요. 그야 가끔 다시 보고 싶은 책들도 있지만, 저보다는 당신이 더 보고싶어할 것 같네요.
 정말이에요?
 정말이랍니다. 악마는 거짓말은 하지 않아요.
 후미카의 대답에 아리스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럼, 언니는 진짜 악마인 거예요?
 네. 후미카라고 한답니다. 당신의 이름은 뭔가요?
 당연하다는 듯 순순히 하는 후미카의 대답에 겁을 먹으면서도, 아리스는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리스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아리스. 제 집에 온 걸 환영해요.
 후미카는 아리스의 말에 그저 웃으며 손을 내밀었어요. 아리스는 그 손을 불안하다는 듯 바라봤지만, 결국 손을 맞잡고 악수를 나눴어요. 아리스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자, 저에게 궁금한 게 있어서 찾아왔다고 했죠?
 악수를 마치고 찻잔을 들어올리며 후미카는 말했어요. 아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요. 이 세상에는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아요. 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못해요. 너무나도 궁금한 것이 많은데 답을 몰라 답답하고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제발 부탁이에요. 필요하다면 제 영혼도 드릴게요.
 그런 말은 하면 안 돼요.
 용기를 쥐어짜서 한 아리스의 말에 후미카는 고개를 가로저었답니다.
 영혼은 소중한 거예요. 이런 걸로 남에게 준다는 소리를 하면 안 된답니다.
 그렇지만 후미카 언니는 악마라고 했잖아요. 악마는 영혼을 원한다고 들었어요. 영혼을 대가로 한 계약은 어길 수 없다고요.
 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는 영혼이 필요 없답니다. 이렇게 제 오두막에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거든요.
 그렇지만.
 자신도 모르게 테이블을 양 손으로 치면서 벌떡 일어난 아리스의 모습에 후미카는 찻잔을 내려놓고 아리스를 빤히 바라봤습니다.
 저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아요. 정말 후미카 언니가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다면 알려주세요. 부탁이에요.
 물론이에요.
 후미카의 순순한 대답에 아리스는 눈을 깜빡였습니다. 후미카는 그저 빙긋 웃으며 말했답니다.
 아리스가 궁금한 게 있다면 뭐든지 알려줄게요.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요. 그렇지만 영혼은 필요없답니다. 사실 아무 것도 필요 없어요. 그저 제 오두막에 찾아만 와주세요.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요?
 굳이 말하면 친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아리스의 말에 후미카는 웃으며 대답했답니다.
 제 친구가 되어줄래요, 아리스?
 하지만 저는 한참 어리고... 게다가 후미카 언니는 악마잖아요. 그럼 저보다 엄청나게 오래 살았을 거잖아요.
 친구가 되는 것에 나이는 필요 없답니다.
 후미카의 대답에 아리스는 생각했습니다.
 마을에서는 누구도 아리스의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또래 아이들은 모두 세상 모든 것을 궁금해하는 아리스를 귀찮아했어요. 아리스 역시, 이 세상에 모르는 것과 신기한 것과 알고 싶은 것이 그렇게 많은데 기껏해야 소꿉놀이나 해대는 마을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은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답니다.
 그렇지만 후미카는 그런 아이들과 달라보였어요. 자신과 말이 통할 것만 같았어요. 무엇보다, 자신에게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려주겠다고 말하는 사람이에요. 친구가 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답니다.
 좋아요. 후미카 언니의 친구가 될게요.
 정말인가요? 기쁘네요. 친구는 오랫만이에요.
 아리스의 대답에 후미카는 환하게 웃었답니다. 아리스도 기뻐질 정도로요. 하지만 아리스는 찾아온 이유를 잊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렇다면 제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세요. 제가 궁금한 것들을 대답해주세요.
 알겠어요. 음... 그럼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후미카는 즐겁게 웃으며 책을 둘러보기 시작했어요. 아리스는 그런 후미카의 모습을 보면서, 후미카가 건네준 찻잔을 들어올렸어요. 난생 처음 맡아보는 향기가 났어요. 그 향에 신기해하며 아리스는 찻잔을 입으로 옮겼어요. 맛도 처음 보는 맛이었어요.
 이 차는 무슨 차인가요?
 아리스의 질문에, 후미카는 싱긋 웃으며 말했어요.
 그럼 그것부터 시작할까요? 그 차의 품종은 실론이라고 해요.
 처음 들어봐요.
 이곳에서 아주 먼 나라에서 나는 차거든요.
 어디에 있는 나라인데요?
 지도를 보면서 설명드릴게요. 지도가 어디 있더라...
 그렇게, 그 날.
 숲속의 악마와 마을의 소녀는 서로를 만났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