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1일 수요일

Wild Flower - (1)(파일럿 에피소드)

 "좋은 아침이야."
 아침이 오면 잠에서 깨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굳이 아침이 아니라도 괜찮겠지. 잠에서 깨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니까. 그걸 살아있다고 부른다. 그리고 매일 하는 일을 계속하는 걸 일상이라고 부르고.
 "오늘도 날씨가 좋아."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날이 쌀쌀하더니, 오늘은 아침임에도 그럭저럭 날이 따뜻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봄이 다시 찾아오고 있었다. 지평선을 넘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하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이제 곧 또 밀알을 심어야겠지."
 봄이 찾아왔다는 건, 다시 올해의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몇 년 사이에 밭도 많이 넓어졌다. 작년 구입한 트랙터가 없으면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홀로 일하는 것은 힘들지만, 할 일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긴 겨울동안에는 장작을 패는 것 정도 외에는 할 일이 없었으니까. 벌써 몸이 조금은 불은 것이 느껴진다.
 글쎄,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그다지 말재주가 없는 나에게 그녀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지는 언제나 고민되는 일이었다. 특히 그게 매일 보는 상대라면. 한때는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했었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새삼스럽지만 그때의 나는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수염이 자란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른 사람 이야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마지막으로 사람을 본 게 언제였나 기억도 잘 안 나서."
 이제부터는 농사를 지어야 할테니 나아지겠지만,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는 이 지역의 특성상 집 밖에 나갈 일이 별로 없다. 읍내에 가서 생필품을 살 때 정도를 제외하면.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 외딴 오두막집을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적어도 이번 겨울에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성격이 아니다.
 "외롭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아."
 원래부터 딱히 외로움을 타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혼자 있어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외톨이도 아니지만. 사람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울적해지거나 하진 않는다. 홀로 사는 건 그 나름대로의 장점도 있는 법이니까.
 나는 다시 말을 골랐다. 이번에는 턱을 문지르는 대신 신발로 흙을 툭툭 걷어찼다. 군화는 아니었다. 그건 버린지 오래니까.
 "뭐, 가끔 외롭다고 생각하긴 해."
 홀로 있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도 없다. 문제는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기억이 있었다는 점이지. 그것이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법이다. 결국 기억이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거다. 한 때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외롭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누군가가 더는 없다는 사실이. 외로움이란 학습이다.
 "봄이니까 곧 또 꽃이 피겠네."
 나는 흙을 걷어차는 것을 그만두고 중얼거렸다. 발끝에 싹이 겨우 터오르려 하는 것을 발견했으니까. 짓밟고 싶지는 않았다. 설령 그것이 이름 없는 잡초에 불과하다고 해도.
 오늘은 달리 청소해줄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묘비를 한 번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보고 싶어."
 물론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늘 그랬듯이. 나는 한 번 고개를 끄덕여준 다음, 마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죽었다. 벌써 3년이나 지났다.
 결혼하고 2년째 되던 겨울. 그녀는 감기에 걸렸다. 의사는 걱정했고, 나 역시 걱정했다. 하지만 그녀는 늘 그렇듯 독기 어린 말로 짜증을 내며 약 먹고 조금 자면 괜찮아질 거라고 우겼다. 걱정은 했지만, 나 역시 동의했다. 감기란 그런 법이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낫지 않았다. 기침은 심해졌다. 그녀는 독감 따위에 걸렸다고 웃었다. 나는 웃지 못했다.
 기침은 더욱 심해졌다. 열이 높아졌다. 가래가 끓었다. 나는 뒤늦게라도 그녀를 입원시키려 했다. 그녀는 듣지 않았다. 약국에서 지어온 약은 그녀에게 그다지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기침은 폐렴을 불러왔다. 의사는 절대 입원하지 않겠다는 그녀를 억지로 입원시키려다 실패하고, 그 대신 매일 같이 우리 집을 드나들었다. 치료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녀는 집 앞에 묻혔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저 하늘을 한 번 올려봤을 뿐이었다. 애석하게 이번에는 비도 내려주지 않았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그리 많은 이들이 오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의 결혼식에 왔던 사람들보다 적었을지도 모르겠다.
 장례식에 찾아온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를 고향에 데려가 묻고 싶어했다. 나는 반대했다. 우리는 아마 처음으로 싸웠다. 그녀의 아버지는 소리를 지르며 우리 집의 얼마 없는 집기를 내던져 깨버렸고, 과연 그녀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내가 납득할 정도로 내게 메서운 욕설들을 날렸다. 그 마음을 나는 이해했다. 좋은 집을 버려두고 무너져가는 오두막에 그녀를 데려오고, 그것도 모자라서 제대로 치료도 받게 하지 못해 3년만에 그녀를 죽였으니까. 그다지 길지는 않았지만 마치 영원처럼 느껴진 싸움 끝에 그녀의 부모님은 포기했다. 그녀를 포기했는지, 나를 포기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결과는 같으니까 아무래도 좋다고 느꼈다.
 그녀는 집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묻혔다. 개새끼가, 내 야전삽이 묻힌 곳이었다. 매장은 나홀로 했다. 그저 그러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삽으로 땅을 파고 또 팠다. 이미 묻혀있는 오랜 친구가 그리웠다. 그녀가 들어간 나무 관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덜컹거렸으니 "이것도 똑바로 못하냐 이 빌어먹을 개새끼야" 같은 욕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편안해보였다. 그렇게나 기침을 하고, 피가래를 토하고, 피리 소리 같은 숨소리를 냈으면서. 한겨울에 땀이 뻘뻘 날 정도로 고열에 시달렸는데. 먹는 것마다 토해냈으면서. 그럼에도. 그저 언젠가처럼 편안하게 잠든 것 같았다.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잠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그 모든 것에서, 그녀의 불편한 사지와 사라진 한쪽 눈동자에서도, 울부짖으며 깨어나야 할 악몽에서, 피와 살과 철과 불로 가득찬 과거에서, 눈꼽만큼도 사랑하지 않는 남편에게서 해방됐다는 듯.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렇지만 차마 그녀를 따라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런 생각 자체가 떠오르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언젠가, 아직 그녀가 살아있을 때는 생각했었다. 아마 그녀가 죽으면 나 역시 죽을 것이라고. 하지만 막상 그녀가 편해지는 모습을 본 뒤에는,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를 잊었다.
 어차피 살다보면 서두르지 않아도 그녀의 곁에 갈 것이다. 그냥 그렇게 받아들였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결혼할 때 했던 말을 철저할 정도로 지키고 있었다.
 그녀가 나와 결혼한 이유는, 그게 내 남은 인생동안 나를 괴롭힐 가장 좋은 방법이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좋은 괴롭힘을 나는 떠올릴 수 없었다.
 나는 그녀를 묻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녀와 함께 살며 매일 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녀가 그 자리에 없었을 뿐.
 아침에 눈을 뜬다. 가벼운 아침을 먹는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다.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는 커피를 한 잔 하거나 술을 한 잔 한다. 그녀와 함께. TV를 보거나 소일거리를 잠깐 한 뒤, 그녀와 결혼하고 1년째에 구입했던 트윈베드에 눕는다. 그녀에게 잘 자라고 인사를 한다. 눈을 감는다. 아침에 일어난다.
 그렇게 살아왔다.
 3년 동안.
 그리고 이제는 그만 그녀를 만나러 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외로움이라는 것은 함께 있을 때를 기억하면서 찾아오는 것이니까.
 오후즈음이었다.
 서서히 녹기 시작하는 넓은 밭을 갈아엎고 있을 때였다.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 라기보다는 그냥 그러고 싶다는 이유로 트랙터를 사용하지 않고 쟁기를 들고 집 가까운 곳을 내리치고 있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불발탄이라도 찾고 있었던 것 아닐까 싶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농사를 지은 자리에 그딴 게 묻혀있을 리도 없건만.
 저 멀리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를 향해. 우리 집을 향해.
 여전히 싸늘한 날씨에도 이마에 흐르는 땀을 팔뚝으로 닦아내며 바라봤다.
 비포장의 흙길을 그 누군가는 걷고 있었다. 모래연기는 그다지 생기지 않았다.
 그 길을 따라 도달하는 곳은 우리 집 뿐이다. 그리고 방문자는 길을 헤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나를 찾아 우리 집에 올 사람은 없다.
 굳이 따지면, 의사 정도. 하지만 그녀가 죽은 뒤로 의사는 우리 집을 그다지 찾지 않았다. 내가 가끔 읍내에 나갈 때, 생각이 난다면 정도의 빈도로 의사를 찾아갈 뿐. 그조차도 의사는 가끔씩 피하는 일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마 의사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만약 자신이 그녀를 억지로라도 입원시켰으면. 다른 방법을 찾았으면. 좀 더 적극적이었다면. 그런 고민들. 나는 의사에게 그런 책임을 묻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말이 없고 홀로 있는 걸 좋아해서 그렇지 사람이다. 의사가 어떤 식으로 나를 보는지는 알 수 있다.
 찾아온다면 찾아올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문자는 의사가 아니었다. 걸어오고 있었으니까.
 조금씩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나는 방문자를 살필 수 있게 되었다.
 키는, 작았다. 내 키가 큰 편이긴 하지만, 아마 기껏해야 내 가슴 정도에 올 것이다.
 여자였다. 그리고 어린애였다. 기껏해야 중학생쯤 되었을까.
 커다란 가방을 짊어진 채, 제멋대로 자란 듯한 긴 검은 머리를 나풀거리며, 소녀는 묵묵히 걷고 있었다.
 나는 쟁기 끝을 바닥에 내려두고 손잡이를 받친 채,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소녀가 내 앞에 다가올 때까지.
 그 사이 해는 저물고 있었다. 저 지평선 너머로 붉은 석양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마침내 소녀가 멈춰섰다. 대화를 나누기에는 살짝 멀지만, 여차할 때 도망칠 수 있을 거리였다. 나는 소녀의 판단을 존중했다.
 "무슨 일이지?"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 그녀와 늘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에게 말을 하는 것은 오랜만이기에 긴장 아닌 긴장이 됐다. 다행히 목소리는 크게 갈라진 것 같진 않았다. 소녀는 언덕을 올라와서 그런지 거칠어진 숨을 잠시 고른 뒤, 손에 들고 있는 뭔가를 꺼내 저물어가는 석양에 비춰보며 말했다.
 "...의 집이 여기가 맞나요?"
 소녀는 낯선 이름을 말하듯, 손에 들고 있는 종이에 써진 글자를 그저 읽을 뿐이라는 억양으로 말했다.
 오랜만에 듣는 그 이름에, 나도 모르게 수염을 문지르던 손이 멈췄다. 나도 모르게 한숨, 보다는 떨리는 숨이 새어나왔다.
 "그래, 맞아."
 대답하는 내 목소리는 약간 갈라져 있었다.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투로 나를 보던 소녀의 눈빛이 조금 이채로운 빛을 띄었다.
 "여기가 맞다고요?"
 "그래."
 "당신은 누구죠?"
 어디 있죠, 부터 물어보지 않는군. 아무래도 좋지만 소녀의 질문에 생각했다.
 아마 대답을 고민했어야 했을 것이다. 소녀가 누군지,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하필이면 그걸 물어본다는 점에서. 하지만 내 입은 멋대로 대답했다. 그녀와 나의 관계라면, 이제는 그것이니까.
 "남편이야."
 전우였고, 주인이었으며, 동거인이었고, 원수였지만.
 그럼에도, 그녀와 나의 관계는 그랬으니까.
 나는 영원히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는 영원히 나를 고통스럽게 하기로 서로 맹세했으니까. 우리는 둘 다 그 맹세를 지키고 있었고, 따라서 우리는 여전히 부부였다.
 "그렇군요."
 내 대답에 잠시 말이 없던 소녀는, 이윽고 천천히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종이를 입고 있는 크고 지저분하며 추워보이는 싸구려 코트 주머니에 쑤셔넣고는 말했다.
 "그럼 그 사람은 어디에 있나요?"
 "이쪽이야."
 나는 몸을 돌렸다. 뒤에서 소녀가 나를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벅거리는 발걸음. 신고 있는 낡아 빠진 부츠가 바닥에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 둔한 코트 주머니 속의 무언가가 사그락거리는 소리. 커나란 침낭과 배낭 속에서 금속끼리 맞부딪히는 신경 쓰이는 소리. 그런 소리들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나는 멈춰섰다. 나무로 만든 묘비 앞에 멈춰서, 다시 소녀를 돌아봤다.
 "여기."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말에 그녀의 묘비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는 주머니에 한 손을 넣은 채, 나머지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소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퉷."
 소녀는 묘비에 침을 뱉었다.
 다음 순간, 나는 턱을 문지르던 손으로 소녀의 코트 목깃을 잡아 비틀어, 그대로 소녀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소녀의 양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고, 그 발끝이 천천히 버둥거렸다. 소녀는 마치 내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소녀는 숨이 막힌다는 듯 콜록거렸지만,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 눈에는 공포나 두려움은 없었다.
 누군가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그래."
 침착하려 애썼고, 스스로는 침착하다고 생각했지만, 내 목소리는 듣는 내가 거슬릴 정도로 갈라져있었으며, 감정이 가득 차있었다. 미간의 핏줄이 아플 정도로 두근대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애써 느릿하게 호흡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무슨 이유로 이딴 짓거리를 했는지 듣고 싶은데."
 "그래, 남편이라고 했지."
 소녀는 콜록거리면서도, 표정에 숨이 막히는 괴로움을 가득 담았으면서도, 나를 향한 비웃음을 흘렸다. 어느새 편해진 말투는 덤과 같았다. 소녀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마치 내 얼굴에도 침을 뱉고 싶다는 듯.
 "무슨 이유로 이딴 짓거리를 하는지보다, 내가 누군지를 대답해야할 것 같은데. 물어봐줄 수 있겠어?"
 그 말에, 손에서 힘이 조금 풀렸다. 나는 소녀를 바닥에 내려놨다. 두 발이 땅에 닿자 소녀는 거칠게 기침을 해댔다.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입가를 문질렀다. 바닥에 침을 뱉었다.
 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답 같은 건 듣지 않아도.
 그럼에도 나는 물었다. 그녀에게 늘 그랬듯이.
 "그녀랑 무슨 관계지?"
 소녀는 콜록거림을 멈추고 웃었다. 이를 드러내는, 어딘지 모를 일그러짐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저년 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녀는 내 침묵을 설명을 더 요구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턱으로 그녀의 묘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창년이 창관에서 일할 때 싸지른 딸."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그렇기에 충격은 없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는 없었다.
 그럼에도 정정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나는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소녀 쪽이 더 빨랐다.
 "그리고 당신이 저년이랑 결혼했다면, 당신 딸이 될수도 있겠네. 아빠."
 그 한마디로, 나는 완전히 납득했다.
 과연 그녀였다.
 그녀는 정말로 나를 영원토록 괴롭히는 것에 대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가 의도하지 않은 부분조차 이러니까.
 석양이 이미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검보라색의 별하늘이 머리 위에 걸친 밤.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묘비 옆에 피어난 이름 없는 잡초 하나가, 밤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