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7일 금요일

우발적 사고

아스토리아 궤도에서 벌어진 함대전은 마침내 자전 45회간의 기나긴 전투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베토르 제국과 볼라니 연합의 갈등은 이미 짧은 시간동안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최초의, 외교관 끼리의 가벼운 말다툼조차 탄소-14의 반감기 만큼 전에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그 갈등 사이에도 몇 번이나 전쟁은 벌어졌고, 이번 5차 전쟁 역시 그러한 연장선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전개 역시, 이전과 비슷했다.
아스토리아는 볼라니 연합의 거점이자 일종의 성채와도 같았다. 볼라니 6 연합함대의 거점이기도 한 이곳은 수많은 행성방위병기 뿐만이 아니라 항성방위병기 역시 설치되어있어 베토르 제국으로서는 어떻게든 점령해야 하는 지점이었고, 지금까지의 4차례의 전쟁에서도 결국 함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베토르 제국은 이번에야말로 소코계를 점령하겠다는 듯 함대를 아스토리아로 몰아붙였고, 양동작전에 속은 볼라니 6 연합함대의 주력부대가 소코계 8행성에서 3행성, 아스토리아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아스토리아 공략전의 자전 34회째를 맞이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있는대로 쏟아부워!"
함장의 외침에, 볼라니 6 연합함대 소속 순양함 '요단세르의 복수'는 이미 궤도를 점거하고 있는 베토르 순양함에게 가능한 모든 포화를 쏟아붓고 있었다. 이는 아스토리아 궤도에 있는 수천 척의 함선 모두에게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궤도는 함선들과, 그들의 잔해들과, 쏟아낸 포화로 인해 포화상태였다. 모든 함선은 궤도를 일주하며 서로를 향하여 공격을 가한다. 그리고 그 포격도, 남아있는 파편들도 궤도를 따라 아스토리아 궤도를 채울 것이었다. 이 전투가 어느 쪽의 승리로 끝나든 한동안 아스토리아 궤도는 수많은 데브리로 항해가 불가능하겠지만, 그 일을 지금 신경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요단세르의 복수 옆에서 지원사격을 하던 구축함 '엘리 5'는 그 사이 눈먼 파편에 브릿지를 맞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명령체계와 조타력을 잃은 '엘리 5'는 그대로 실과 같이 얇은 안전궤도를 벗어나, 더 많은 파편과 포화에 노출되어 그대로 폭발했다. 사방으로 튀어나간 수많은 파편, 그리고 승무원들은 또 다른 부수적인 피해를 만들 것이었다. 이 전투에 참가한 함선들 외에도, 지상에도.
아스토리아 표면에는 벌써 45일째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불과 철의 비가. 밤낮도 없이 내린 그 비가 어디 떨어질지, 전투 초기에는 예측할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행성방위시스템이 그 파편들을 막아줘야 할 터였지만, 이미 그 시스템은 파편을 더욱 늘리기 위해서 불을 뿜고 있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피난을 가기 위해 겨우 살아있는 예측 시스템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시스템이 포화상태에 이른 지금은 그저 행성을 불태우는 그 비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엘리 5의 파편은 요단세르의 복수를 향해서도 날아갔다. 다행히도 파편들은 35m에 달하는 복합장갑을 뚫지는 못했다. 충격을 통해 전해지는 소리만이 브릿지에 뭔가가 장갑판을 두드렸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경고음에 묻혀 금방 사라졌다. 요단세르의 복수를 향해 5발의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었다. 베토르 제국이 자랑하는 요호로 미사일로서 35m의 복합장갑 정도는 쉽게 뚫고 들어와 요단세르의 복수 역시 데브리 중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무기들이었다. PDS가 미친듯이 불을 뿜어댔다. 네 발은 그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파편으로 변했지만, A19-56-91 한 발은 계속해서 요단세르의 복수를 향하고 있었다.
"좌현 전타!"
함장은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승조원을 위해 브릿지에 남아있던 공기는 그 외침의 파장을 조타수의 귀로 옮겼다. 조타수의 신경회로는 채 의식하기도 전에 몸에 익은 동작을 행했다. 안전궤도가 어떻게 되는지는 나중 문제였다. 요단세르의 복수는 그들이 보기에 좌측으로 급격하게 몸을 돌렸다. 엔진이 불을 뿜고, 전기신호를 받은 RCS가 25km에 달하는 거대한 함체를 돌리기 위해 분사와 휴식을 반복했다. A19-56-91 한 발이 요단세르의 복수를 향하는 발걸음은 그 덕분에 빗나가버렸다. 경고음이 꺼진 것에 요단세르의 복수는 그대로 선체를 돌려 방금 미사일을 날린 베토르 제국의 순양함을 향해 매스 드라이버의 불을 뿜었다. 이미 빗나간 A19-56-91 미사일을 신경쓰는 이는 아스토리아 궤도에 아무도 없었다.
A19-56-91은 짧지만 긴, 그 평생의 연소를 마쳤다. 하지만 그것이 요호로 미사일의 여행을 끝낸 것은 아니었다.
모든 투사체가 그렇듯, A19-56-91 미사일은 그만의 궤도를 그려나갔다. 아스토리아 외우주는 수도 없는 파편과 함선으로 붐비고 있었지만, 그들의 궤도가 일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호로 미사일은 행성 궤도 전투만을 대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주에서의 함대전은 심하면 행성간 거리를 두고 벌어질 때도 있었으니까. A19-56-91 미사일의 속도는 이미 아스토리아의 중력권을 벗어날 정도로 올라가 있었다. A19-56-91 미사일은 그렇게 아스토리아 궤도의 전투를 뒤로 하고, 심우주로 뻗어나갔다.
칼리포르늄-252의 반감기만큼이 지난 뒤, 소코계 밖을 향하던 A19-56-91 미사일은 소코계 5 행성, 토스디아의 중력에 붙잡혀 그 궤도를 바꿨다. 하지만 토스디아의 중력이 잡아당기는 만큼, A19-56-91 미사일의 속도는 가속되었다. 그 속도를 바탕으로 A19-56-91 미사일은 새로운 궤도를 얻어 토스디아의 중력권을 뻗어나갔다. 스윙바이라고 불리우는 우주항해 기법이었지만, 그저 우연의 일치였을 뿐이었다.
그 힘을 바탕으로, A19-56-91 미사일은 소코계의 밖을 향해 더욱 힘차게 뻗어나갔다.
다시 세슘-137의 반감기만큼 시간이 지났다. A19-56-91 미사일은 소코계의 자기 고속도로를 벗어나, 진정한 의미로 소코계를 벗어났다.
A19-56-91 미사일은 우주의 텅 빈 공간을 떠돌았다.
탄소-14의 반감기동안,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듬성한 성간물질과의 충돌 외에는 그 누구도 A19-56-91 미사일의 여행을 방해하지도, 도와주지도 않았다.
발사될 때의 그 모습 그대로, A19-56-91 미사일은 우주를 떠돌았다.
우주의 대부분은, 아니 절대 다수는 공허한 텅 빈 공간이었다.
우라늄-235의 반감기가 지날 무렵, 그런 A19-56-91 미사일의 여행에 이변이 발생했다.
우주는 빅뱅 이후로 빛의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공간 그 자체의 팽창에 의해, A19-56-91 미사일을 누군가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 힘에 A19-56-91 미사일은 조금씩, 하지만 천천히 속도를 올리며 궤도를 바꿔나갔다.
A19-56-91 미사일이 그 미약한 힘에 궤도를 곡선으로 바꾸는데, 또다시 아메리시움-241의 반감기가 걸렸다.
요호로 미사일의 길이는 티끌과도 차이 없는, 고작 200m에 불과했다.
천천히 자신을 끌어가는 힘에 몸을 맡긴 채, A19-56-91 미사일이 그 항성계로 들어온지 세시움-137의 반감기만큼 시간이 지난 시기, 날아가는 A19-56-91 미사일의 앞에 한 행성계가 들어왔다.
본디, 그런 식으로 떠도는 혜성이나 운석은 대부분 위성의 중력에 의해 궤도를 잃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A19-56-91 미사일의 작은 체구 때문에, 그 궤도는 제대로 바뀌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경우가 나빴다. 원래대로라면 스쳐 지나갈 A19-56-91 미사일의 궤도가 행성의 궤도로 향하게 되었으니까.
고작 200m에 불과한 A19-56-91 미사일을 발견하기에는, 지구의 기술력은 그렇게까지 좋지 못했다.
일반적인 운석이었다면 어려움을 겪더라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호로 미사일은 베토르 제국이 자랑하는 미사일이었다. 당연히 일반적인, 예상되는 주적인 볼라니 연합의 감지망을 따돌릴 수 있는 스텔스성을 만족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지구의 기술력은, 볼라니 연합의 기술력에 비하면 청동기에 불과했다.
"어... 휴스턴. 잠깐 주목하라."
그렇기에, 그 발견 역시 그저 우연의 일치에 불과했다.
"무슨 일인가?"
"저쪽... 지금 시점으로 러시아 방향 상공에 정체불명의 물체가 보인다. 확인할 수 있나?"
ISS에 탑승하고 있던 승무원의 말에, 보고를 받은 휴스턴의 상황실에서는 각종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어떠한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무전사는 그 결과를 확인하고 말했다.
"확인되지 않는다. 파악되지 않는 데브리일 가능성이 있다. 그쪽에서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나?"
"확인할 수 있다.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전을 받으며 승무원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창문으로 얼굴을 가져다 댔다. 빛도 제대로 반사하지 않는 그 물체는 점점 접근하며, 본인이 예상하던 것보다 거대하다는 사실을 승무원에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자연체는 아니다. 인공체로 보인다. 하지만 데브리라고 보기에는... 거대하다! 휴스턴! 거대한 미사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사실에, 승무원은 크게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에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던 ISS 승무원들이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건 휴스턴에서 그 순간 일어난 혼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A19-56-91 미사일은 지구 궤도에 끌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짙은 대기가 미사일과 만나 미사일을 소멸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정도로는 요격을 막기 위해 두텁게 가로막은 장갑판을 녹일 수 없었다.
A19-56-91 미사일은 북아메리카 대륙 동부를 향해 날아갔다.
요격미사일이 미국 전국에서 발사되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것도 요호로 미사일의 교란시스템을 이겨내지 못했다. 지근거리의 폭발로는 A19-56-91 미사일의 궤도를 조금 더 바꾸는 것 뿐이었다.
A19-56-91 미사일은 워싱턴 D.C에 착탄했다.
최대 50m의 복합장갑판을 뚫고, 50km에 달하는 전함조차 격침시킬 수 있는 미사일이었다.
ISS에서도 볼 수 있는 강한 섬광과 함께, 약 7억년 전의 목표물 대신 A19-56-91 미사일은 워싱턴을 중심으로 한 미 대륙 동부 반경 500km를 완전히 소멸시켰다.
뒤따른 것은 수많은 작은 미사일이 하늘을 메우는 광경이었다. 상호확증파괴의 시작이었다.
지구가 검은 잿더미로 변해버리는데는 고작 다리움-201의 반감기가 걸렸다.
그로부터 다시 라리움-226의 반감기가 흘렀다. 비록 그를 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없어도 아인슈타인은 옳았다.
베토르-볼라니 연방의 신호망에, 약 1600광년 떨어진 위치에서 발신한 신호가 수신되었다. 미약한 원시신호를 찾는 과정에서 수신된 신호였다. 발전된 베토르-볼라니 연방의 기술력으로도 그 원시적이디 원시적인 신호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는데는 산소-15의 반감기가 소요되었다. 그 대신 그들은 7억년 전, 신화와도 같은 시절 벌어진 전투에 쓰였던 베토르 제국의 요호로 미사일 A19-56-91 가 보내온 신호이며, 무슨 결과를 불러왔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지구를 조사한 뒤, 미개종족의 소멸에 대한 이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책임질지에 대해 성토하는 국부 은하군 연합회에 다음과 같이 통보했다.

'불가능한 확률에 의한 우발적 사고임.'

국부 은하군 연합회는 베토르-볼라니 연방의 무죄를 선포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