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6일 화요일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짐승들(가제) 180117 수정

 문이 열리자마자, 선명한 냄새가 흘러넘쳤다.

 이치노세 시키는 다른 사람들보다 후각이 예민하다. 태어날 때부터 지닌 능력이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자신의 흥미에 열중하면서 생긴 병과도 같았다. 방 안에 가득한 건, 그런 시키에게는 마치 눈에 보일 것만 같은 냄새의 벽이었다.

 찌르는 것 같은 석유의 냄새. 유화 물감과 테레빈유와 린시드유 냄새. 그리고 담배의 냄새. 그것들이 뒤섞인 형용할 수 없는 냄새.

 몇 번이나 맡아본 냄새임에도 자신도 모르게 실험가운의 소매로 코를 가리며, 시키는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뭐야, 이게. 창문이라도 좀 열어놓지 그래?"

 "응? 누구, 시키쨩이야?"

 들려온 대답은 나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평소와 같은 톡 쏘는 듯한 목소리는 희미한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미야모토 프레데리카는 마치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캔버스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짧게 자른 황금색의 머리카락. 누군가 그에 맞춰 색을 새겨넣은 것 같은 황금색 눈동자. 하지만 평소에는 동그랗게 뜨던 그 커다란 눈동자는 마치 약에 취한 듯 반쯤 감긴 채 둔탁한 색이었다. 옷차림은 즐겨 입는 평상복 위에 미술용 앞치마. 주의 없이 흔드는 손에 쥐고 있는 붓에서는 물감이 몇 방울씩 사방으로 튀었지만, 프레데리카는 그런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자신 외에는 다른 누구도 본 적 없을 모습. 시키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아, 시키쨩 봉주르~."

 "응응, 실부플레."

 흔히 나누는 의미는 통하지 않는 인사를 하며, 시키는 방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섰다. 애나멜 구두가 리놀륨 바닥에 또각거리는 소리를 연주했다. 프레데리카는 인사로 충분하다는 듯 다시 캔버스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이야, 이런 곳까지?"

 "아마 후레쨩이랑 같은 이유일 걸."

 적당히 대답하며 시키는 눈에 띄는 의자를 끌고 와 프레데리카의 옆에 걸터앉았다.

 346 프로덕션은 거대한 회사이며, 거대한 부지에 거대한 건물을 갖추고 있다. 그만큼 사용되는 방이 많은 한편, 많은 방들은 비어있거나 사용되지 않는다. 해체된 프로젝트에 할당되었던 사무실, 버리긴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사용할 수도 없는 비품들을 모아놓은 창고, 아예 담당자나 담당 부서가 바뀌며 표류한 끝에 왜 비었는지도 모른 채 비어있는 방 등등. 지금 둘이 있는 방도, 그런 방 중의 하나였다.

 구석에는 철 지난 아이돌의 등신대 간판이 몇 개나 빛 바란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한 쪽에는 쓰이지 않는 책상들이 차곡차곡, 혹은 제멋대로 열을 짜며 늘어져 있고, 언젠가 공연에서 썼을 법한 플라스틱 의자들이 몇 겹으로 쌓인 채 조금씩 부식되고 있었다. 무엇이 들었는지도 알 수 없는 채 빵빵하게 채워진 박스도 가득하고, 벽에는 먼지 투성이의 선풍기 하나가 걸려 있었다. 한 번도 따지 않은 채 녹슬어가는 페인트통이 무너질듯 쌓여있었다.

 이 버려진 방은, 둘만의 비밀의 아지트와 같았다.

 서로 그렇게 하자고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우연일 뿐. 혼자만의 공간을 찾던 두 사람이 우연히 같은 방을 자신의 아지트로 삼았고, 마주쳤을 뿐이었다.

 시키와 프레데리카는 346 프로덕션 안에서 같은 프로젝트에, 심지어는 같은 그룹에 소속된 아이돌이다. 때문에 같은 일을 하며 마주치는 경우도 많았고, 사석을 함께 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단 둘이서, 이런 공간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다. 적어도 시키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았다. 서로를 피하지는 않았다. 그럴 사이는 아니니까. 그렇지만 서로에게 일정 이상으로 다가가거나 하지도 않았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할 뿐인 관계. 그것으로 충분했다.

 무엇보다, 이곳은 그런 것들로부터 도망쳐 온 도피처였으니까.

 "뭘 그리고 있는 거야?"

 시키는 큰 관심은 없다는 투로, 시선은 향하지 않은 채 물었다. 프레데리카는 여전히 나른한 목소리인 채로 대답했다.

 "글쎄에~?"

 "지금 후레쨩이 그리고 있잖아."

 "응. 분명 그렇긴 한데에~. 어라아~? 근데 정말 이건 뭐지...?"

 시키의 지적에도 프레데리카는 흐느적 거리며 고개를 꺾은 채 캔버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느새 손도 멈추고, 마치 본인도 정말로 지금 자신이 뭘 그리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잠시 후.

 "뭐... 아무려면 어때."

 고개를 꺾은 채 한참을 캔버스를 바라보던 프레데리카는 그걸로 됐다는 듯,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키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창문 안 열어도 괜찮겠어?"

 "응~. 열지 마. 이 냄새가 좋은 거니까."

 후각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예민하고, 유일하게 '지치는' 감각이다. 불쾌감 자체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은 남아있기에, 킁킁거리던 시키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런 거 맡다보면 나까지 취할 것 같은데 말이야. 게다가 불 날지도 몰라."

 "아, 괜찮아. 아직 안 나고 있으니까. 생각해보니까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을지도 몰라. 얼마나 있으면 불이 날까?"

 거의 다 타들어간 담배를 문 채, 프레데리카는 눈을 반짝이며 시키를 돌아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화학약품의 냄새 때문인지 나른하던 눈빛은 빛을 되찾은 상태였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눈동자. 흔히 사용되는 화려한 수사(修辭)일 뿐이지만, 시키는 그 눈동자는 정말 '빠져버릴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시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찮아. 아마 불이 날 때쯤이면 그게 문제가 아닐 테니까."

 "아쉽네~"

 전혀 아쉽다는 기색은 담기지 않은 채로, 프레데리카는 다시 나른한 목소리와 함께 시선을 돌렸다. 시키는 앉아있던 의자 등받이를 앞으로 돌려 양 팔을 얹고는 턱을 얹은 채 프레데리카의 그림을 바라봤다.

 ㅡ색깔이 날뛴다.

 시키로서는, 그 그림을 그렇게 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수많은 색깔이, 캔버스 안에서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튀어 오르고, 뛰어다니고, 날아오르고, 흩뿌려졌으며,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끼리 뭉치고, 서로 싸웠으며, 함께 소리 높여 웃고, 부딪혀서는 튕겨나갔다. 스스로도 미술에 그리 조예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시키였지만, 그럼에도 그 누가 본다면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지 않을까.

 스스로의 의문에 그렇게 해답을 내리며, 시키는 손을 뻗었다. 캔버스 옆, 미술도구를 올려둔 테이블 위의 재떨이를 집어들어 꽁초를 하나 주어 코에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킁킁, 하고. 그 냄새는 시키가 예상하던 냄새와는 달랐다.

 "어라? 그냥 담배야?"

 "응~? 응~."

 눈을 자신도 모르게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는 시키의 질문에 콧소리로만 대답하며, 프레데리카는 시선은 캔버스에 고정한 채 어느새 다 타버린 입가의 꽁초를 재떨이가 있던 자리에 비벼 껐다. 그리고는 다시 물감이 잔뜩 튄 앞치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나도 하나 줘."

 시키의 말에, 프레데리카는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앞치마에서 담뱃갑을 꺼내 시키에게 내밀었다. 시키는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고 그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입 안에서 담뱃개비를 굴리며 시키는 말했다.

 "난 당연히 마리화나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특히 그 캔버스를 보면 말이야. 하지만 프레데리카는 붓을 들지 않은 손으로 능숙히 불을 붙이며 새는 발음으로 말했다.

 "아~. 아니야. 구하기도 힘들잖아."

 "필요하면 내가 구해줄 수 있는데? 아니면 효과는 비슷하고 증거는 안 남는 걸로 만들어줄 수도 있고."

 아마 의심을 사지도 않을 것이다. 화학과 약품 제조는 시키의 취미이자 특기이자 또 다른 직업이었으니까. 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내밀고 있는 프레데리카의 손에 쥐어진 라이터로 불을 붙이며, 시키는 재떨이를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난 후레쨩이라면 당연히 할 줄 알았는데. 특히 이런데 숨어서 그림 그리면서 피운다면 더더욱. 가끔은 그래서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했고."

 "난 그런 거 안 좋아해. 특히 하고 그림 그리는 건 싫어."

 "의외네. 예술가는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평소에는 생각도 못 하던 작품이 나온다고."

 "아~. 그런 말 듣긴 했어. 하지만 난 싫어."

 손놀림은 멈추지 않은 채 프레데리카는 말했다.

 "생각도 못 하던 작품이라는 건, 내가 했다는 실감이 없는 거잖아? 그러니까 내가 그리지 않은 그림인 셈이고. 그런 건 싫어. 후레쨩은 제정신인 상태로 그림을 그릴 겁니다~."

 "냐하하. 자기가 뭘 그리는지도 몰랐으면서."

 "와오~! 그건 그렇네!"

 웃으며 하는 시키의 지적에 프레데리카는 환호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 웃는 표정을, 시키는 누군가는 고양이 같다고 부르는 눈동자를 가늘게 뜨며 바라봤다.

 과연 어느 쪽이 진짜 그녀의 모습일까.

 시키는 이 방에 올 때마다, 늘 그런 것을 생각했다.

 자신과는 다르게, 프레데리카는 언제나 속과 밖이 뒤섞여 있었으니까. 동시에 드러나 있었으니까. 뫼비우스의 띠처럼. 클라인의 병처럼.

 이치노세 시키는 가끔씩 자신이 동물원 속의 존재라고 생각하곤 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시키는 자신이 원숭이들 사이에 홀로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무언가의 착오로, 혹은 그저 생김새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실수로 그곳에 들어가게 된 인간. 주위의 원숭이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단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본능에 따라 아무 가치도 찾을 수 없는 일에만 관심을 쓸 뿐이며, 아무리 떠들어대도 말은 하나도 통하지 않는다.

 시키는 오랫동안 자신과 주위의 세상을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어도 그저 덜떨어진 존재로만 생각되었다.

 어째서 이렇게 간단하고 당연한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지, 마치 세상이 뒤집힌 듯 놀랍게 받아들이는지 시키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때는 그런 어리석은 인간들을 시키는 내려보았다. 하지만 그, 자신이 판단한 어리석음을 반복해서 경험하며, 시키는 그들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이해할 수 없는 거다. 시키가 그들을, 그들이 시키를. 마치 서로 다른 동물처럼.

 그렇기에, 그들은 시키를 두려워했다. 기분 나빠했다. 꺼려했다.

 자신이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주위의 모두는 표정을 굳히며 자리를 떠났다. 아이도 어른도 구분 없이.

 자신이 기분 나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셀 수도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 역시 셀 수도 없었다. 괴물이라고 불린 적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단 한 번이었다.

 ㅡ내가 저딴 괴물을 낳은 건 당신 탓이잖아.

 그 날 이후, 시키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머니를 본 적이 없다.

 한 때는, 시키는 그런 세상을 두려워했다.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이라는 것이 두려웠다. 사람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로 들렸다. 이해할 수 없는 소음으로 들렸다. 이해할 수 없는 짐승들의 울부짖음으로 들었다.

 틈을 보이면 그들이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만 같았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늘 시키는 공포에 떨었다. 누군가 자신의 이상함을 눈치챌지도 몰라. 자신이 그들과 다른 존재라는 걸 깨달을지도 몰라. 시키는 가끔씩 식은 땀에 흠뻑 젖은 채 악몽에서 깨어나고는 했다. 꿈 속에서 시키는 인파 사이를 걷고 있었다. 다음 순간, 자신들의 일에 열중하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마치 기묘한 것을 보듯이. 전혀 이해할 수 없고,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자신들의 사이에 있다는 듯.

 꿈 속의 장소는 늘 바뀌었지만, 경험은 늘 똑같았다. 시키는 꿈 속의 거리에서, 학교에서, 공원에서, 백화점에서, 도서관에서 연구실에서 역사(驛舍)에서 도로에서 편의점에서 광장에서 박물관에서 동물원에서 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환상을 경험했다.

 환상 속의 집에서, 겪어본 적도 없는 화목한 저녁식탁에서, 아버지가 앉아있고 어머니가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차려주는, 그녀 자신의 상상이라기보다는 매체에 의한 환상 속의 저녁식탁에서조차, 행복함을 느끼던 시키는 그 시선을 마주했다.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아버지가, 어머니가, 자신을 마치 난생 처음 보는 이질적인 무언가를 보듯 바라보는 시선.

 그럴 때면, 시키는 도망쳤다. 하지만 도망쳐도 도망쳐도 시선들은 자신을 따라왔다. 결국 투명한 벽에 도착한 시키는 공포에 질린 채 울부짖으며 그 벽을 두드렸다. 유리창 너머의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주기를 바라면서.

 미쳐버리지 않은 것은, '미쳐버린다' 는 흔해빠진 일이 일어나기에 자신은 너무 특별했기 때문이라고, 지금도 시키는 분석하고 있다.

 그렇기에 시키는 늘 꿈꿨다. 언젠가는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주지 않을까. 무언가 착오가 있었다며 소란을 부리며 이 동물원의 우리 밖으로 꺼내주지 않을까. 어린 감성에, 시키는 별들을 올려보며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하다 못해 저 별들 어딘가에라도 그런 존재가 있기를 바라면서. 자신을 찾아와, 이런 일이 있던 것에 사과하며, 시키 같은 이들이 모인 곳에 자신을 받아주는 것을 꿈꿨다.

 나이가 든 지금은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생각에는 모순이 있으니까.

 동물원 안에 있다는 건, 창살을 넘으면, 혹은 유리벽 너머에는 또다른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더 이상 시키는 자신을 원숭이 우리에 혼자 뿐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대신, 시키는 자신을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짐승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동물원에 전시되어있는.

 멸종되어가는 종과는 다르다. 지금까지 자신과 같은 종이 발견된 적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따지자면 돌연변이라고 봐야겠지만, 시키는 순전히 자신의 감성으로 그것과는 다르다고 결론 내렸다.

 무엇보다 기왕이면 돌연변이보다는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짐승' 쪽이 조금 더 로맨틱하니까.

 우연과 무작위가 들어갈 곳이 없으니까.

 그리고.

 "흥 흥 흥흥~"

 또 다른, '이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짐승' 이 자신의 눈 앞에 있다.

 단 하나 뿐인 짐승으로서, 시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워야했다. 어쩌면 언젠가 그들이 자신이 그들과 생김새만 같을 뿐 다른 존재이며, 그렇기에 자신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늘 그런 법이었으니까. 심지어 같은 동물인 자기들끼리도 이유를 붙여 싸우고 없애려 노력하는 동물이니까.

 시키는 두려움에 떨지는 않았다. 두려움은 이미 극복한지 오래였다.

 다만, 다른 동물들 앞에서는 언제나 가면을 하나 쓰고 다녔을 뿐이다.

 밝고 화려한 색깔로 칠해진, 화려한 가면. 그것을 쓰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연기를 한다. 마치 피에로처럼. 그렇게 인간을 연기한다.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짐승이라는 사실을 숨긴다.

 어디에도 머물 수 없다면.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면.

 어디에서도 자신과 같은 짐승을 발견할 수 없다면.

 가면을 바꿔가며, 자리를 바꿔가며, 흘러가듯, 떠돌아다니듯.

 자신이 살 곳을 찾아 세상을 헤메이는 짐승처럼.

 그렇기에 시키는 처음 프레데리카를 본 순간, 어쩌면 자신은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짐승이 아닐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가면을 쓴 누군가가, 무리 안에 섞여 있었으니까. 똑같이 인간이라는 짐승을 연기하며.

 기쁨에 가슴이 두근거린다든지, 잠을 청하지 못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다.

 어릴 때는, 그런 상상을 하며 기대에 부풀곤 했다. 언젠가는 나와 같은 누군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서로를 알아봐야 할까?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어떻게 내가 너와 같은 짐승이라는 걸 알릴 수 있을까? 다른 동물들에게는 들키지 않으면서.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시키는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시키의 예상처럼, 프레데리카는 그녀와 같은 동물이 아니었다.

 그저 또 다른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짐승' 일 뿐. 인간들과는 다른, 자신과도 다른.

 누구도 그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도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녀는 나와는 전혀 다른 짐승이니까.

 프레데리카가 바라보는 세상은,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 분명하다.

 자신이 화학식을, 화합물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프레데리카는 색과 그림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오로지 홀로 있을 때. 온전히 그녀가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짐승이 되었을 때.

 그럴 때면, 누구도 보지 못한 프레데리카의 어떤 면모가 깨어난다. 가면을 벗어던지고 날뛴다.

 도대체 프레데리카의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 걸까.

 시키는 콧노래를 부르며 캔버스에 붓을 휘두르는 프레데리카를 보며 생각했다.

 가끔은, 저 머리를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두개골을 열고 연분홍색의 뇌를 꺼내 어떤 독특한 점이 있기에 저럴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시키는 했다. 그것이 시키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었으니까.

 시키는 늘 상상하고는 했다. 자신의 약물로 프레데리카를 잠재우고, 그녀를 실험대 위에 올리는 상상을. 전기톱날로 매끈한 피부를 가르고 두개골을 가른다. 그녀 역시 짐승인 이상 두뇌는 있을 것이다. 그녀의 전두엽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측두엽과 후두엽에 특이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메스로 가르고 전선을 연결하고 바늘로 자극을 주고 화학약품과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으로 그녀의 뇌를 시키는 상상 속에서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헤집었다.

 시키의 머릿속 구석에는 실험이 끝난 프레데리카의 찌꺼기가 산처럼 쌓여있다. 똑같은 빛을 잃은 눈동자로. 똑같이 멍한 표정으로.

 몇 마리나, 몇 마리나. 셀 수 없을 정도로.

 시키는 양심의 가책 같은 말은 이해하지 못했다. 궁금하기에, 알고 싶기에, 그것을 해결하려는 것뿐이다.

 애당초 시키와 프레데리카는 서로 다른 동물이 아닌가. 동족이라든가 하는 명제는 성립되지 않는다.

 시키는 궁금증에 근질거리는 엉덩이와 등골을 움직이는 것으로 그 충동을 억눌렀다.

 하나 뿐인 실험소재를 그렇게 낭비할 수는 없으니까.

 누군가는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 이라고 말했다. 시키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시키는 생각하는 동물이다.

 시키의 모든 것은 생각과 계산에서 나온다. 심지어는 그녀의 본능조차 시키 본인은 모르는 생각과 계산의 결과였다. 이 약품과 저 화학물질을 조합해 이렇게 처리하면 그런 향기가 나올 것이다.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고, 말로 하거나 문자로 쓰지 않는 수식만이 존재한다. 시키에게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은 확고한 논리로, 이론과 계산과 결과로, '사고(思考)'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시키에게 프레데리카는 자신과 정반대의 존재였다.

 프레데리카는 찰나의 동물이다.

 모든 것이 우연. 모든 것이 즉흥.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혼란. 시키는 프레데리카를 그렇게 인식했다. 생각하는 동물으로서 시키는 자신과는 다른 동물들과 어울리기 위해 타인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정리하여 이해했다. 가면을 쓴 채, 웃는 얼굴인 채로 눈동자는 가늘게 뜬 채 남들을 엿봤다. 그리고 프레데리카는 도저히 그렇게 분석하고 정리할 수가 없었다.

 마치 저 그림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붓을 움직인다. 휘두른다. 캔버스라는 무도회장에서 프레데리카는 붓이 되어 춤을 추었다. 타들어가는 담뱃불을 조명으로 삼아. 물감과 테레빈유와 린시드유와 석유를 향수와 파티의 주류(酒類)로 삼아. 오로지 그녀 혼자의 무도회장에서, 오로지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뮤즈의 노래를 반주로 삼아.

 시키는 가만히 의자 등받이에 턱을 기댄 채, 홀로 그 연회를 감상했다.

 그렇기에, 시키는 프레데리카를 좋아했다.

 모든 것을 분석하고 정리하고 사고하여 체계화 하고 분해하고 해부하여 라벨을 붙여 진열해두고 구성물을 전부 이해해버리는 시키에게, 프레데리카는 마치 깜짝상자와 같았으니까. 도저히 분석할 수 없는, 정리할 수 없는, 사고할 수 없는, 체계화할 수 없는, 분해하거나 해부하여 라벨을 붙여 진열해두고 구성물을 전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니까.

 시키와 프레데리카는, 문자 그대로 서로의 모순(矛盾)이었으니까.

 모든 것을 이해하는 짐승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짐승.

 그저, 다만 한 가지.

 시키가 프레데리카에게 단 하나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그 점이, 바로 시키가 프레데리카 역시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짐승이라고 확신하게 만든 공통점이었으니까.

 둘은 남들 앞에서는 언제나 웃는다. 남들을 웃게 만든다.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언동과 행동과 반응으로 타인을 즐겁게 한다.

 그들은 결코 웃지 않는 채.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이라는 뼈저린 고독을 느끼며.

 시키는 고독하다.

 프레데리카 역시 고독하다.

 그렇기에, 이 방에 오는 것이다.

 인간 이치노세 시키, 인간 미야모토 프레데리카가 아닌.

 이 세상에 그저 단 하나 뿐인 짐승 이치노세 시키와, 이 세상에 다만 단 하나 뿐인 짐승 미야모토 프레데리카로 돌아가기 위해.

 몽롱한 눈빛과 나른한 목소리로 담배를 문 채 캔버스 위에서 춤을 출 수 있는 장소로.

 그녀가 색과 함께 춤출 수 있는 장소로.

 오로지 그녀와 그녀의 흔적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시키는 사고를 그만두고, 그저 프레데리카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ㅡ색깔이 날뛴다. 프레데리카와 함께.

 역시, 시키로서는 그 그림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마 프레데리카 본인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추상화니 현대미술이니 하는 거창한 표현은 필요 없다. 이건 그런 것이 아니니까.

 다만, 프레데리카의 그림을 보며 시키는 단 하나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ㅡ눈부시도록 아름답다고.

 ㅡ살아 숨쉬고 있다고.

 미야모토 프레데리카라는 동물이, 짐승이, 살아있다는 흔적이라고.

 "좋아!"

 프레데리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 구석으로 걸어가, 노란색 페인트통 하나를 들어올렸다. 호쾌하게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완, 성!"

 그대로 페인트통의 내용물을 캔버스에 끼얹었다.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페인트의 냄새가 방 안을 가득 메워 시키의 코를 자극했다.

 노란색 페인트의 뭉치는 그대로 캔버스를 뒤덮었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이젤이 기우뚱 거리며 결국 뒤로 넘어가버렸다. 사방에 페인트가 튀었다. 물론 프레데리카에게도. 시키의 얼굴에도 한 방울이 튀었다. 하지만 시키는 피하지 않았다. 페인트 한 방울은 시키의 눈 바로 밑을 스쳐, 그대로 흘러내렸다. 한 줄기의 노란 눈물처럼.

 "아하하하하하하하하!"

 프레데리카는 소리 높여 웃었다. 마치 평소처럼. 늘 모두의 앞에서 웃는 것처럼.

 하지만 시키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짐승이었으니까. 그 안에 담긴, 마치 예술가가 자신의 가장 걸작을 완성짓고 내는 것 같은 웃음소리를. 이 세상에 태어난 자신의 아이를 보며 기뻐하는 어미 같은 울부짖음을. 시키 본인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자신에게도 그런 어미가 있었다면, 조금 더 능숙하게 살 수 있었을까.

 프레데리카를 알게 되며, 시키는 가끔 그런 가설을 세우곤 했다.

 가끔씩 프레데리카는 가면을 벗어던진다. 그럼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끔씩 프레데리카는 시키가 볼 때도 그녀가 인간인지 프레데리카라는 동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시키가 볼 때에, 프레데리카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만 같았다. 프레데리카가 될지, 인간이 될지.

 질투라는 감정은 시키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상상하고 말 때가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이 낳은 것이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원해서 마치 또다른 아이처럼 남편과 만들어낸, 자신에게 넣은 약물이 괴물을 만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자신이 원했던 것처럼 비상한 두뇌를 가진 대신 인간의 마음이 없는, 괴물이 아니라고 받아들였다면.

 그저 독특하게 생긴 원숭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면.

 시키 본인은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인간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줬다면.

 마치 프레데리카에게 그녀의 어미가 그랬듯이, 그랬다면.

 어쩌면, 시키 역시 자신이 머물 곳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 더 능숙하게 가면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저런 울부짖음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축하해."

 시키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프레데리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시키를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덜컹. 의자를 앞으로 밀며 시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슬슬 정리해볼까?"

 "응."

 두 사람은 함께 자리를 정리했다. 창문을 열고 냄새를 빼낸다. 캔버스와 이젤을 일으켜 세우고, 바닥에 미리 깔아뒀던 비닐포를 벗겨 뭉치고, 파레트와 물감을 정리한다. 붓털이 안에 있는 석유와 다른 기름들을 빈 페트병에 옮겨 담는다.

 "오늘은 바로 집으로 갈 거지?"

 "응. 이렇게 냄새 내면서 사무실 가면 다들 놀랄걸?"

 "그러니까."

 "시키쨩, 담배 냄새랑 기름 냄새 없애는 향수는 못 만들어?"

 "음~. 생각해보니까 그거 괜찮겠는데? 좋아. 다음 번에 해봐야겠다. 고마워 후레쨩!"

 "엣헴. 더 칭찬해도 좋은 것입니다~."

 그런 수다를 떨며, 시키는 캔버스를 가리켰다.

 "저거, 내가 가져도 돼?"

 "응. 상관 없어."

 프레데리카는 관심도 없다는 듯, 마치 버려진 과자 봉투를 가져도 되냐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하듯 대답했다. 의아함을 담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으며, 가지고 싶은 이유는 딱히 궁금하지 않다는 듯. 시키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프레데리카에게 저 그림의, 저 연회의 가치는 춤을 추고 있는 순간 밖에 없을 테니까. 이미 끝나버린 파티에서 발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따위, 프레데리카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이다. 무도회장이 있기에 춤을 춘 것이 아니라, 춤을 추기 위해 무도회장이 필요했으니까.

 프레데리카에게 자신의 가치도 그럴 지도 몰라. 시키는 문뜩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뭐, 그럼 어떻다는 것인가.

 자신도 마찬가지인데.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짐승들의 관계는, 그걸로 충분하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한다면, 받아들인다면, 너는 나와 같은 존재라고 인정해버리면,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짐승'이 될 수 없으니까.

 시키와 프레데리카는 가장 먼 곳에 존재해야 한다. 서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양 극단에.

 둘은 방을 나섰다.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방을.

 복도를 걷는다. 로비를 지난다. 둘과는 다른 수많은 짐승들이 그곳에 있었다. 시키와 프레데리카는 능숙하게 각자의 가면을 쓴 채, 웃으며 그들과 어울린다. 그들 중의 하나인 것처럼.

 건물을 나선다. 거리를 걷는다. 셀 수도 없는 다른 짐승들을 지난다.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짐승들이, 인파 사이로 숨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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