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8일 일요일

저 너머의 그대에게 향기를

-정말 후각이라는 게 없다고?

-응. 그게 그렇게 이상해?

채팅창에 뜬 답변에 자연스럽게 ‘당연하지’ 라고 타자를 치려던 손이 멈춰 섰다. 나는 하려던 동작이 멈춰 허전해진 손으로 팔짱을 낀 채,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봤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이 채팅창이 주장하는 설명을 믿는다면.

사이트 이름은 앤서블. 읽기는 이렇게 읽지만 표기는 ‘Answer-Able’이다. 노골적으로 외국 소설가가 주장한 그 개념과 ‘이름은 달라요~’ 하고 배 째라 식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려는 이름이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처음 사이트가 나왔을 때 그 제목과 함께 홍보한 것이 중요한 점이지.

‘다른 은하의 지적 생명체와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앤서블이 내세우는 채팅방의 캐치프레이즈다.

몇 년 전에 공개된 이 사이트는,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우리 은하와는 다른, 멀리 떨어진 다른 은하들과 연결된 채팅방이다. 뭐 은하를 넘어서 다른 세계, 흔히 이세계라고 부르는 곳들과도 연결된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직접 그런 쪽과 연결된 적은 없기 때문에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진짜 주장대로 다른 은하와 연결되는지도 모르겠고.

사이트에서 주장하는 바로는 그들의 특수한 뭐시기 장치를 이용해 양자얽힘 어쩌구를 사용하여 다른 은하나 이세계와 통신을 할 수 있으며, 상대가 진짜 존재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상대성 이론을 부정하지 않고, 이론적으로 틀렸다고 주장할 수 없다나 뭐라나. 역으로 상대가 진짜 존재한다고 증명할 수도 없지만, 일단 튜링 테스트는 통과했기 때문에 처음 공개됐을 때는 반짝 화제를 모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반짝’이라는 점이다. 초기에는 밥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뒤적거리는 것이 인생의 모든 것인 괴짜들이나 관심을 가졌지만, 이윽고 과학계에서 관심을 가지고,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고, 언론에서도 나오고, 그러면서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고 심지어 정부까지 끼어들어 조사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말 ‘아무 것도 보장할 수 없음’ 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앤서블은 전파를 우주로 날려 보내지 않았다. 그냥 데이터 패킷이 들어가고 나오는 서버였다. 조사에 의하면 뭔가 수상쩍은, 처음 보는 기계와 연결은 되어있었지만 기계는 내부 구조상 전혀 작동하지 않는 깡통이었고, 재질도 구조도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동일하게 제작해서 사용해본 곳도 많았다. 물론 응답하지 않았고, 앤서블 사는 자체적인 채팅 프로그램을 이용해야만 같은 결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프로그래밍 언어는 자체 제작이었고, 소스는 엉겨 붙어 사흘은 퉁퉁 불어터진 것 같은 스파게티였다.

언론도 정부도 과학계도 ‘이건 사기다!’ 라고 관심을 끊었고, 일부 이용자는 사기죄로 고소까지 했지만, 법정은 ‘아니라고 증명도 할 수 없다’ 는 앤서블 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그렇게 앤서블은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사라졌다.

나 같이 아직도 이용하는 몇몇 괴짜를 빼곤 말이지.

왜 이용하냐고 물어본다면, 맞는지 아닌지 증명할 수 없는 그 점에서 로망을 느꼈다고 대답할 수도 있겠고, 먼 은하의 다른 존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능성에서 과학적 탐구심과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속내는 간단했다.

학부생 시절 앤서블이 처음 나왔을 때 호기심에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 중 하나였고, 그때부터 친해진 채팅 상대와의 정이 사기라며 손을 털어버리기에는 너무 깊어진 게 원인이었다.

바로 지금 채팅 상대, #202003042031과 맺은 인연이.

(채팅명은 무조건 숫자로 매겨진다. 저래보여도 16진법이라 꽤 많은 인원이 배정 가능하다.)

-그게 그렇게 이상해?

한참 생각을 하다 보니 채팅창에 다음 메시지가 떠올랐다. 답장이 없어서 보냈나 싶어 나는 팔짱을 끼고 하던 생각을 정리해 키보드를 움직였다.

-아니, 이럴 때면 진짜 다른 은하에 있는 상대와 채팅하나 싶어서.

-그러게. 난 네가 말하는 ‘후각’이라는 거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하기사, 후각이 없을 수도 있지.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오감 외에도 감각이 있는데 인간은 감각기관이 없어 모른다든가. 비둘기는 지구 자기장을 느낀다든가, 뭐 그런 것들. 그럼 후각이 없을 수도 있겠지. 지렁이는 촉각 말고는 없댔나.

-그래서 그 후각이라는 게 뭐야?

시프(아무래도 12자리의 숫자를 죄다 치며 상대를 부르기 힘들어서 상호 양해하여 부르는 별명. 서로 고민하다 채팅명을 16진법에 넣어봤더니 끝이 ceef로 끝나서 정했다.)의 재촉에 나는 다시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후각이 없는 상대에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으니까. 고민하다 움직이는 손가락은 느릿하고 의심이 가득했다.

-그러니까... 음... 냄새... 를 느끼는 감각인데...

-냄새는 또 뭔지 모르겠다.

-그러네. 나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텔레파시 설명했을 때처럼?

-그런 느낌이지.

시프의 대답에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쪽 종족은 텔레파시를 쓸 수 있다는 모양인데, 내가 아는 텔레파시랑은 개념이나 감각이 완전히 상이했다. 한참 설명을 들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그냥 그 정도로 이해하기로 했던 게 떠올랐다. 뇌의 정후방 하측을 떨면서 ‘귀’를 뒤집는 감각이 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아, 그래!

그런 생각을 하다 나는 잽싸게 타자를 쳐 넣었다. 이럴 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으니까.

-그러니까, 화학분자를 느끼는 감각이야. 공기 중에 있는 화학분자를, 우리는 ‘코’라는 기관을 통해 느낄 수 있어.

-와! 신기하다. 투이네 종족은 그럼 그걸로 언제든 주위의 상황을 인식하겠네?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강렬한 ‘냄새’는 맡을 수 있지만, 농도가 옅거나 무신경하면 별로 느끼지 못하거든.

나는 냄새라는 개념이 없는 시프를 위해 따옴표를 붙이기 시작했다. 자기 종족을 ‘인간’이라고 부르는 건 경험상 모든 종족의 공통점인 모양이라, 우리는 서로를 ‘누구네 종족’ 이라고 부른다. 일종의 예의다. 투이는 말할 것도 없이 내 대화명의 약칭이고.

-그럼 네가 말한 꽃향기는 어떤 건데?

맞아. 그걸 이야기하려다 여기까지 온 거였지. 나는 창밖에 만발한 매화를 바라봤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눈을 감고 집중하자 꽃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그 꽃이라는 건 단일 화학분자로 이루어진 생물이야?

-어... 그건 아닐걸.

아무래도 시프는 자신이 모르는 개념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그런 개념을 접하는 매력에 앤서블을 쓰고 있는 거니까. 나는 조금 더 설명하려 노력했다.

-‘냄새’는 보통 여러 화학분자가 결합되어 느껴지는 걸 거야. 나도 그쪽 전공은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꽃마다 ‘냄새’가 다르고 음식마다 ‘냄새’가 다르거든.

-그렇구나. 화학분자의 조합에 따라 ‘냄새’가 달라진다는 건, 거의 무한한 조합이 가능하다는 뜻이겠네. 공기 중의 화학분자에 반응하는 걸 보면 분자 농도와 양에 따라서도 바뀔 테고.

-응. 그래서 우리 종족은 ‘향수’라는 걸 쓰기도 해. 꽃 향기라든가, 그런 것들을 풍기는 액체를 뿌리는 거지. 좋은 향은 기분을 좋게 하거나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거든.

-우리 종족의 ‘kdfio’ 같은 건가보네.

-응? ‘kdfio’가 뭐야?

자동번역이 안 되는 걸 보면 시프네 종족의 개념인 모양이었지만, 반사적으로 물었다.

-너희 ‘냄새’처럼 텔레파시로 느끼는 거야. 좋은 ‘kdfio’는 주위의 기분을 차분하게 하거나, 재생산을 촉진시키는 감정을 일으키거든.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재생산’ 말고 다른 단어를 써줄래? 매력적이라거나, 뭐 그런 거.

-하하, 미안. 투이네 종족에서는 이런 걸 ‘분위기 없다’ 라고 한댔지? 응. 매력적으로 느끼게 해줘.

-시프네 종족의 ‘재생산’ 개념은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음...

-그 이야기는 늘 들었으니까 그만 해도 돼. 서로의 종족차를 인정하자고.

“뭐 하고 있어? 또 채팅이야?”

웃으며 다음 타자를 치려했지만, 그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대신 고개를 돌렸다. 연구실에 들어온 선배가 탓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으니까. 나는 잽싸게 타자를 쳤다.

-미안. 선배가 와서. 그만 가볼게.

-그래. 또 보자. 꽃 ‘냄새’ 이야기 재미있었어. 나도 느껴보고 싶네.

시프의 답변을 보고 채팅창을 닫았다. 내 뒤에 선 선배는 커피를 한 모금 후룩, 하고 마시더니 질렸다는 투로 말했다.

“넌 또 앤서블 가지고 놀고 있냐. 유행 지난지가 언젠데.”

“냅둬요, 남의 취미인데. 그리고 뒤에서 모니터 보지 마요. 매너 없게.”

“매너는 네가 없지. 하라는 연구는 안 하고. 데이터 정리는 다 했어?”

“선배도 커피 마시러 가놓고선. 제건요?”

“당당도 하다.”

코웃음을 치면서도, 선배는 내 몫의 커피를 탁, 하고 탁자에 내려놓았다. 뚜껑을 열자 따뜻한 덕분인지 선배가 들어올 때부터 느껴졌던 커피 향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선배는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래, 또 그 시프인가 하는 애랑 논 거야?”

“뭐, 그쵸.”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려놨던 창을 띄우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참 대단도 해. 상대가 진짜 다른 은하의 외계인인지, 어디 AI 연구소에서 장난치는 건지, 컨셉질하는 배불뚝이 씹덕일지도 모르는데 몇 년이나 채팅하고.”

“시프는 그런 애 아니거든요. 몇 년이나 채팅했는데 그런 거면 벌써 꼬리가 드러났겠죠.”

“모르지 뭐. 원래 안 드러내고 컨셉질 하는 애가 제일 무서운 법이야.”

“선배가 친구는 인터넷 친구도 없어요 하는 인간이라고 남까지 까내리지 마요.”

“누가 친구는 인터넷 친구도 없어. 너야말로 계속 앤서블 가지고 놀다보면 그런 애들하고만 같이 놀게 된다.”

놀리듯 이죽거리는 선배의 말투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꼭 옛날 사람처럼 꼰대처럼 말하기는. 선배가 하는 말은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이랑 똑같다고요.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어떻게 알아? 직접 만나본 적도 없잖아? 야,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을 위험하게 어떻게 만나?’ 하는.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하긴, 우리 부모님도 내가 예전에 정모 나간다니까 그러시더라. 그래도 좀 다르지 않아?”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것 같더니 토를 달았다.

“그 사람들은 적어도 진짜 사람들이지만, 앤서블은 뭔지 알 수도 없잖아. 진짜 외계인인지 진짜 사람인지 뭔지. 설령 진짜 외계인이라고 쳐도, 다른 은하면 만나볼 수도 없고. 아님 걔네, 그 시프네 종족은 초광속 이동이라도 가능하대?”

“아뇨. 걔네도 이제 위성에 깃발 꼽는 정도인 거 같던데.”

“봐봐.”

“그렇게 따지면 인터넷 친구도 똑같죠. 선배가 이야기하는 사람이 사실 정체를 숨긴, 그 뭐냐, 옛날 영화...”

“맨 인 블랙?”

“아, 맞아요, 그거. 그거처럼 지구에 사는 외계인인지, 지구에도 안 사는 외계인인지, 그림자 정부가 만든 AI인지, 지저에 사는 랩틸리언 외계인인지, 아무 것도 모르잖아요. 선배 인터넷 지인도 전부 만나본 것도 아닐 거면서.”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음모론 마인드다. 너도 지구평평단이냐? 그러면서 앤서블은 용케도 쓴다.”

“시끄러워요. 적절한 음모론은 즐거운 지적 유희거리라고요. 지난번에 앤서블에서 랜덤채팅으로 만난 종족은 진짜 평평한 지구에 산대서 서로 얼마나 싸웠는데.”

“너도 진짜 중증이다. 그래서, 오늘은 뭐 이야기 했는데?”

“냄새에 대해서요.”

“냄새?”

“네. 이쪽은 봄이라 꽃향기가 난다고 했더니, 시프네 종족은 ‘후각’ 이라는 개념이 없대요.”

나는 다시 커피를 마시며 대답했다. 커피 향이 다시금 코를 통해 느껴졌다. 이 냄새를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생각하며. ‘커피향’ 외에 설명할 방법이 있을까?

“거 컨셉 진하네.”

“물어봐서 대답해줬더니 또 비꼬려고.”

나와 마찬가지로 커피 향을 맡으며 중얼거리는 선배에게 쏘아주자, 선배는 어울리지도 않게 눈을 감고 커피 향을 음미하는 척을 하며 말했다.

“생각해봐. 왜 동물들이 ‘냄새’를 맡는지. 왜 동물들은 특히 더 민감한지.”

“그게 생존에 유리하니까 겠죠?”

“그치. 예로 들어서 우리도 음식이 상했는지 아닌지 냄새로 알잖아. 주위에 뭐가 타면 타는 냄새로 미리 알기도 하고. 동물들은 먹이를 찾기도 하고. 시각이나 청각 못지 않게 후각이 생존에 유리하니까 그렇게 진화했겠지. 근데 걔네 종족은 뭐 어디서 살기에 냄새를 못 맡겠냐?”

“흐음.”

또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면 뭐라고 해주려 했더니, 일리가 있는 말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까지 시프와 이야기를 하면서 그쪽도 생명체로서 기본 요소는 대부분 비슷하다는 걸 확인해왔고. 그래서 몇 년이나 이야기를 했는데 ‘냄새’ 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에 놀란 거고. 선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야 물속에 살거나 하면 냄새를 못 맡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또 아니라며. 그런데 ‘후각’ 이라는 개념이 없다니, 신비하게 컨셉질 하다가 대차게 미끄러졌다는 생각부터 드는데.”

“시프가 그럴 리는 없어요. 이 정도로 실수를 할 거면 이전부터 실수를 했을 테고. 아무래도 그쪽 행성에서는 후각이 없어도 생존하기에 무리가 없었나보네요.”

“그 뭐시기냐, 텔레파시 같은 걸로?”

“네. 냄새는 아니지만 뭐라더라, ‘kdfio’ 라는 비슷한 건 있는 모양이던데. 텔레파시로 느끼는.”

“크드피오?”

“발음이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어요. 채팅으로 본 거니까.”

“거 참 어지간히도 믿는구만. 걔가 은하 연대 보증 서달라면 서주겠다.”

“선배가 서달라는 것보다는 확률이 높을 걸요.”

“너무하네. 그래도 내가 더 오래 알고 지내지 않았어? 매일 직접 보기도 하고.”

“오래 알고 지낸 거랑 신뢰도는 비례하지 않거든요. 술 마실 때마다 다음에 줄 테니까 내달라고 한 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그래, 그래. 좋아하는 상대라 이거지. 너도 참 독특하다.”

선배의 말에 발끈해 인상을 구겼다. 내 눈빛에 놀리듯 이죽거리던 선배는 실수했다는 듯 입을 닫았다. 나는 조금 더 선배를 노려봤지만, 사실을 말한 것이기에 한숨과 함께 시선을 다시 돌렸다.

그래, 나는 시프를 좋아한다. 친구 이상의 감정으로. 그리고 연인이 되고 싶다보다는 미만의 감정으로. 어차피 될 수도 없으니까.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른다. 한 번 서로의 생김새를 글로 설명한 적은 있었지만, 어차피 글을 통한 묘사니까 서로 좋을 대로 생각할 거라고 본다. 일단 시프가 묘사한 바로는 인간의 생김새와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본 적은 없으니 나는 내 멋대로 인간의 모습으로 상상하고 있다. 그 쪽이 편하니까. 아마 시프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후각’에 대한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목소리도 들어본 적 없다. 일단 발성기관은 있다는 걸 확인했는데, 시프 말로는 자기네 종족은 그것보다는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무래도 발성기관을 통한 대화는 우리의 ‘수화’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었다. 텔레파시는 내 쪽에서는 시프에게 있어서 ‘후각’과 같은 것이기에 느낄 수 없고, 따라서 ‘들어볼(이 동사로 표현하는 게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선배가 늘 말하는 대로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아닌지도 모른다. 정말 지구 어딘가에 사는 누군가가 컨셉을 잡고 노는 걸지도 모르고, 어딘가 연구소에서 개발한 AI(왜 다른 은하에 사는 외계인이라고 스스로를 인식하는 AI일지는 모르겠지만)일지도 모른다. 설령 진짜 다른 은하의 외계인이라고 해도 만나볼 일은 없다. 피차 기껏해야 자기 모행성의 위성에 로켓을 날려서 깃발 꼽는 정도의 과학력을 가지고 있다니까. 한 번은 서로의 은하가 서로 관측됐는지 이야기도 해봤는데 그것조차 아니었다. 둘 다 전문은 아니지만 우리가 서로 교차확인한 정보가 맞다면 반경 465억 광년 내에는 없다. 이것만으로도 사실이라면 관측 가능한 우주 외의 정보를 접한 대발견이지만, 전공이 아닌 나나 시프에게는 ‘그렇구나’ 수준의 이야기다. 앤서블을 통해 확인한 정보는 과학적 발견으로 인정되지도 않고(증명이 불가능 하니까).

그렇지만 나는 시프가 좋았다.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성격이 좋았다. 지적이고, 호기심이 많고, 이해심이 많고, 관심사는 비슷하고, 신비했으며, 자상했다. 물론 종족의 차이인지 분위기 없고, 눈치가 없을 때도 많고, 이해심은 많지만 자신감도 많아서 무시당하거나 하면 화를 내기도 하고, 그래서 서로 싸운 적도 많고, 그런 점은 싫어하지만, 원래 완벽한 존재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그건 이 은하든 다른 은하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뭔가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한 번쯤 만나보고 싶긴 하지만 서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고, 애당초 내 짝사랑일 가능성이 더 크다. 시프네 종족과 우리 종족의 연애관... 이랄까, 시프네 종족의 표현을 빌리면 ‘재생산’에 대한 인식이나 개념은 크게 다른 모양이니까. 어쩌면 시프 역시 그런 문제로 좋아하면서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보지만, 그건 너무 희망적인 관측일 것 같고.

무엇보다 이건 이것대로 로맨틱하잖아?

결코 만날 수 없는 두 존재. 서로 확인조차 불가능한 불확정적 존재. 그런 존재를 있다고 믿고, 좋아한다는 건 충분히 로맨틱하다고 생각한다.

뭐, 누구 말 맞다나 2차원의 캐릭터를 사랑하는 것과 뭐가 그리 다른가 싶기도 하지만.

영원히 이 마음을 간직하겠다, 만날 일은 없어도 우리의 마음은 늘 하나야, 혹은 네가 돌아봐주지 않아도 나는 영원히 너를 사랑하겠어, 아, 지고지순한 나의 순애보... 뭐 이런 개소리를 할 생각은 없다. 나도 더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을 좋아할지도 모르고, 시프가 어느 날 ‘재생산’에 성공했다고 할지도 모르고, 계속 채팅이 가능할지도 모르고, 어느 날 이 로맨틱한 불확정성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지금의 관계와 마음을 좋아하고 만족한다. 그래서 선배가 방금 한 것처럼 그 부분을 센스 없이 지적하면 나도 모르게 발끈하는 거고.

“야, 화 좀 풀어.”

그런 생각을 하며 한참동안 말없이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으니 불안해졌는지 선배가 말을 걸었다. 나는 그제야 아무 말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딱히 화난 거 아니에요. 그냥 일하다보니 그런 거지.”

“세 시간이나 아무 말도 없이 그러고 있으면 충분히 화난 거라고 생각하는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요?”

“응. 다른 사람들은 벌써 다 갔어.”

그 대답에 둘러보자, 과연 다른 연구실 사람들은 떠났는지 빈자리뿐이었다. 선배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네가 말없이 집중하고 있으니까 다들 말도 못 걸고... 왜 그러냐고 해서 대답했더니 다들 나만 뭐라고 하고... 가시방석이었다, 야.”

“그래서 집에 안 가고 있던 거예요?”

“응. 그러니까 슬슬 화 풀어. 내가 말 잘못 했어.”

“그러니까 화난 거 아니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보통 화났던데.”

“계속 귀찮게 굴면 진짜 화낼 거예요.”

눈을 흘기며 그렇게 쏘아주자, 선배는 그제야 화난 거 아니라는 말을 믿었는지 하하하, 하고 마음 놓은 웃음을 지었다. 이럴 때는 쓸데없이 귀여워서 곤란하다.

창밖을 보니 해는 이미 진 후였다. 그럼에도 매화 향기는 여전히 코를 간질였다. 내 시선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선배는 물었다.

“시프한테 ‘후각’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게 그렇게 신경 쓰여?”

“뭐에요. 아까는 컨셉질이라면서.”

“역시 화났네. 뭐, 솔직히 여전히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네가 신경 쓰니까.”

“절반쯤은 선배가 진화 어쩌고 하면서 쓸데없는 소리해서거든요.”

“나머지 절반은?”

“글쎄요.”

나는 창밖을 보면서 생각한 바를 말로 꺼낼까, 아니면 속에 담아둘까 고민했다. 말해서 또 놀림 당하거나, 쓰잘데 없는 소리를 듣거나, 괜히 말로 꺼냈다 그 감성이 옅어지거나, 그런 걸 고민했지만 결국 조용히 입 밖으로 꺼냈다. 불확정의 존재라 매력적인 것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것도 있으니까.

“내가 좋다고 생각한 건, 역시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지잖아요?”

별 대단한 건 아니다. 기껏해야 꽃향기고, 애당초 이야기를 꺼낸 건 그냥 주위에 있는 신변잡기를 이야기하다 나온 결과였고, 평소에 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꽃이 아름다운 걸 좋아하는 문과적 마인드가 있다면 나는 이과적 마인드 쪽이라.

그래도, 시프가 말까지 했으니까.

나도 느껴보고 싶다고.

눈을 감고, 상상 속의 시프와 함께 꽃향기를 맡는 상상을 했다.

“풋.”

그 한 소리에 바로 감성은 작살나버렸지만. 딱 좋은 타이밍에 들린 웃음소리에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봤지만, 선배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입을 가린 채 키득거렸다.

“진짜 화낼 거예요.”

“아니, 보기보다 감수성이 풍부하다 싶어서.”

“좋아요, 해보자 이거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선배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아니, 웃음은 반사적인 거였다니까. 너도 내가 눈 감고 그윽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가 좋다고 생각한 건, 역시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지잖아?’ 같은 말 하면 웃을 거 아냐.”

“그 전혀 안 닮은, 놀리는 것 같은 말투에서 진짜 한 번 싸워보자는 감정은 느껴지네요.”

“진정해, 진정. 감수성이 풍부한 게 나쁜 건 아니잖아? 분위기에 웃은 거지 말 자체는 나도 공감해. 하긴, 이런 날씨면 좋아하는 사람하고 꽃이 만발한 곳에 피크닉 가서 꽃향기라도 맡고 싶어지니까.”

“안 어울려요.”

“봐봐, 너도 똑같이 반응하잖아.”

선배는 히쭉 웃더니, 그래도 내가 진정했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이었다.

“아무튼, ‘냄새’를 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설명은 해줄 수 있겠지.”

“어떻게요?”

내 질문에 선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말해줄게. 내일 채팅에서 전해줄 수는 없겠지만, 원래 이런 건 생각났다고 바로 전해줘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네가 원하는 것도 넘치는 감수성의 산물이니까. 준비가 좀 필요할 것 같거든.”

“좋아요. 뭘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들어나 보죠.”

나는 끝까지 웃음기를 지우지 못하는 선배의 옆구리를 손날로 찌르며 말했다.

며칠 뒤. 앤서블에 접속하고, 한동안 한가하게 랜덤 채팅으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시프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안녕, 투이.

-안녕, 시프. 마침 잘 됐다.

-잘 됐다고?

-응. 며칠 전에 ‘냄새’에 대해서 이야기했잖아.

-기억하고 있어. 그 이야기를 더 해주게?

-비슷해. 우선 이것 좀 봐줘.

나는 채팅창에 미리 복사해뒀던 글자들을 복사해 붙였다. 잠시 시간이 지난 뒤에 시프의 채팅이 올라왔다.

-화학분자식이네?

-맞아. 지금 내가 있는 곳에 피어있는, ‘매화’ 라는 꽃냄새의 화학식이야.

선배의 아이디어라는 건 이 정도였다. 솔직히 기대해서 손해 봤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툴툴거리자 선배가 한 말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너나 시프나 이과계잖아? 감성도 생각하는 것도.’

-시프 네가 말했듯이 조합식은 무한하니까, 이 ‘향기’의 조합식을 알려주고 싶었어.

-‘향기’?

-‘냄새’ 중에 좋은 ‘냄새’. 좋은 ‘kdfio’ 같은 거.

-아.

분자식 자체는 인터넷을 조금만 뒤지니 나왔다. 서로의 원자 목록, 그러니까 주기율표는 이미 예전에 교환한 이후였기에 시프가 식을 알아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정확히는 ‘주기율표’ 자체를 교환했다기보다는 부르는, 표기하는 명칭을 교환한 거지만. 우리가 아는 원자들이나 시프네 종족이 아는 원자들이나 크게 차이가 없었거든. 관측 가능한 우주 밖에도 동일한 원자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그럴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확실하지 않으면 전해지는 것이 있어도, 불확정성을 파고들지 않기에 멋진 것도 있으니까.

-한 번 상상해봐. 주변에는 꽃들이 잔뜩 펴있어. 하얀색 꽃이야. 꽃잎은 다섯 개고, 타원형이야. 가운데는 노란색의 수술이 있어.

서로 색에 대한 것도 교환했다. 하지만 보는 색이 같을지는 모른다. 서로 전자기파의 주파수 영역까지 알려줬지만, 느껴지는 빛이 같을지는 모르겠다. 다른 은하의 완전히 다른 생명체일 테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알려준 것이 사실이라면.

-만발한 꽃들에서는 그런 화학분자들이 풍기고 있어. 좋은 향기, 좋은 kdfio야. 느껴지는 건 달콤한 미각에 가까워. 살짝 바람이 부니까 더욱 많이 화학분자들이 날리는지 향이 강해져.

화학분자식을 공유하는 게 과연 로맨틱하게 보일지는 모르겠다. 누군가는 멋도 뭐도 없는, 이론적인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나는 로맨틱하다고 느꼈다. 처음에는 투덜거리던 선배의 의견을 듣길 잘 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서로 결코 만날 리 없는 다른 우주의 존재들이, 동일한 법칙을 가지고 있고, 그 법칙에 따라 무한한 조합 중에 하나를 공유하고 있다. 느낄 수 없는 감각을 통해.

나 역시 느끼려고 노력했다. 시프네 종족이 가졌다는 ‘텔레파시’를 통해, 좋은 kdfio라는 것을. 정확히는 상상하려고 노력했다. 뇌의 정후방 하측을 떨면서 ‘귀’를 뒤집는 감각을 상상하려고 해봤다. 도저히 불가능했지만, 노력했다는 거다.

-햇빛은 기분 좋고, 온도도 적당해. 겨울동안 얼었던 땅이 녹아서 나는 향기도 있어. 그게 꽃향기와 섞여서 느껴져. 어딘지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따뜻해지는 기분이야.

결국 앤서블은 상상을 요구하는 도구다. 어쩌면 믿음일지도 모르겠고.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없다. 앤서블 사가 내놓은 기계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과학 원리를 통해 진짜 양자얽힘이 어쩌구 하는 현상을 퉁퉁 불어 꼬여버린 스파게티 같은 코드를 통해 데이터 패킷을 다른 은하에 주고받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냥 나 같이 멍청한 인간들에게 정액제라는 명목으로 돈을 삥 뜯기 위해 만든 깡통일지도 모른다. 시프는 내가 상상하는 것처럼 다른 은하의 멋진 존재가 아니라 지구 어딘가의 골방에서 ‘얘 봐라 뭐 하는 거야’ 하고 손가락질하며 웃는 배나온 기분 나쁜 인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불확정성이란 좋을 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이건 좀 이과적이지 않나?

소리도 전파도 빛도 그 무엇도 상대성 원리를 이겨내지 못하고, 앤서블도 불가능해보이지만 본인들 말로는 ‘상대성 원리를 속이고 있는’ 거라고 한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상대성 원리가 결코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다.

상상만 하면 다른 은하의 존재가 내 옆에 앉아 매화꽃의 향기를 맡고 있으니까.

시프가 상상하는 광경과 내 모습은 좀 다르겠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나도 멋대로 시프를 인간으로 상상하며 내 옆에 앉아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시프네 종족에게 ‘앉는다’ 라는 동사가 적절할지도 모른 채.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

잠시 후 채팅창에는 시프의 메시지가 올라 왔다. 여전히 무신경하고 분위기 없게 내 등 뒤에서 커피를 든 채 모니터를 엿보는 선배가 ‘오’ 하는 소리를 내는 게 들렸지만, 무시했다.

-아주 좋은 kdfio야.

시프가 웃는 게 보이는 것 같아, 들리는 것 같아, 나는 웃었다.

-너도 느껴져, 투이?

-응. 느껴져. 아주 좋은 향기야.

눈을 감고, 매화의 화학분자를 코 가득 담았다.

아주 좋은 kdfio, 향기였다.






------------------------------------------------------------------------------------------------------

2020년 3월 4일 '장르 코드 전력'(https://twitter.com/genrewritingst1)에 참가하는 글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