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8일 일요일

인공지능 로봇 연구소 긴급 기자회견

기자회견장에는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 기자회견장의 상황을 찍는 셔터 소리, 미리 기사의 앞부분을 작성하는 타자 소리로 시끄러운 가운데 연구자가 마침내 단상에 오르자, 소란스러움은 더욱 커졌다. 찰칵대는 셔터 소리와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지는 것을 잠시 견딘 다음, 발표를 맡은 연구자는 손가락으로 마이크를 두 번 툭, 툭, 하고 쳤다. 그것을 신호로 기자회견장의 모두는 침묵에 들어섰다.

“우선, 이번 발표를 듣기 위해 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발표자는 평범한 인사치례로 말문을 열고는, 단상에 놓여있던 발표문의 표지를 넘기고는 말을 이어갔다.

“당초 예고한 대로, 이번 발표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성과를 보여드릴 것입니다. 지난 발표에서 밝혔던 내용을 수년이 지난 지금,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발표를 맡게 된 점에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발표자의 마지막 말은 정말 감동에 벅차 말하는지 음색이 떨렸다.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플래시와 셔터 소리가 기자회견장을 가득 채운 것도 잠시, 발표자는 단상 옆에서 대기하던 도우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손을 움직이자, 지금까지는 빈 페이지만을 띄우던 영사기가 새로운 페이지를 띄웠다.

“우선 지난 발표의 내용을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연구진은 지금까지 우리와는 다른, 하지만 우리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금까지 성과를 보여 왔지만, 우리가 목표로 했던 ‘생각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는 성과들이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은 연구진의 연구 성과를 사진으로 띄우고 있었다. 현미경을 이용해야 볼 수 있는 작은 존재로부터, 직접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존재까지. 기사를 작성하는 타자 소리 사이로 슬라이드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행동할 수 있는, 즉 ‘움직이는 존재’를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류는 있었지만, 그것은 ‘생각하는 존재’를 만드는 것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문제였습니다.”

이어진 영상은 이전 성과물들이 직접 움직이는 영상들이었다. 처음에는 뒤뚱거리며 우스꽝스럽게 움직이는 영상들이었지만, 뒤로 이어지며 그 움직임은 자연스러워졌다.

“성과 없이 이어지는 오랜 연구에 좌절하기도 했지만, 이전에 발표 드린 대로 저희는 새로운 접근법을 통해 우리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든다는 꿈의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간의 확인 끝에, 우리는 이 성과를 발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확신에 가까운 발표자의 말에 셔터 소리가 다시금 늘어났다. 박수와 환호소리를 잠시 음미하듯 즐긴 뒤, 발표자는 단상 뒤쪽을 슬그머니 바라봤다. 괜찮다는 듯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발표자는 뿌듯한,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기자회견장의 모두를 향해 말했다.

“그럼 소개드리겠습니다. 저희 연구진이 만들어낸, 최초의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로봇’입니다. 박수로 맞아주십시오.”

그 말과 함께 카메라의 플래시가 사이키델릭하게 단상을 비췄다. 회견장의 모두는 긴장한 채, 웅성거림도 멈추고 단상 뒤에서 이어지는 통로를 바라봤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은, 하지만 길게만 느껴지는 기다림 끝에 ‘로봇’이 단상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로봇’의 모습은 이질적이었지만, 모두는 그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생김새에 놀라 순간 박수를 치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우선 ‘로봇’은 아주 자연스럽게 두 발로 걷고 있었다. 비틀거리지도, 부들거리지도, 이전에 개발되었던 이족보행 로봇들처럼 불안하지도 않았다. 아니, 발걸음 자체는 긴장한 것처럼 조금 주춤거렸지만, 그것 역시 연구진이 발표한 대로 인간처럼 생각한다는 말을 믿는다면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현으로 느껴졌다.

‘로봇’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1m쯤 될까. 무게도 그리 나가지 않는지, 바닥을 딛는 몸놀림은 가볍게 느껴졌다. ‘로봇’은 불안한 듯 옆에 함께 나오는 연구자의 손을 붙잡고 몸을 기울이듯 한 채였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걷지 못해 부리는 꼼수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아이가 하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동작이었기에.

‘로봇’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는 게 처음인지 투명한 눈동자를 깜빡이며, 조금은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속해서 자신을 향해 터지는 플래시에 눈이 아픈지, 깜빡이는 두 눈은 약간 인상을 찌푸린 채였다.

그 모습에, 뒤늦게야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그를 뒤따르듯 어느새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었다. 그 갑작스러운 반응에 ‘로봇’은 깜짝 놀란 듯 움찔, 하고 몸을 떨고는 손을 붙잡은 연구자의 몸에 더욱 달라붙었다. 마치 연구자의 뒤에 숨는 것처럼. 그 모습에 연구자는 다른 손으로 ‘로봇’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뭐라고 말했다. 마치 진짜 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그 소리는 박수소리와 환호성에 묻혀 회견장의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지만, ‘로봇’은 알아들었다는 듯 연구자를 올려보고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자의 눈빛을 확인한 발표자는 마이크를 잡고는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 진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환호는 감사하지만, ‘아리’가 놀라고 있습니다. 진정하고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발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리’를 배려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목소리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박수를 쳤지만, 이윽고 조금씩 그 소리는 잦아들었다. 이윽고 조금 긴 시간이 지나 하나 둘 씩 자리에 앉자, ‘아리’라고 불리운 ‘로봇’은 그제야 안심이 됐다는 듯 마음을 놓은 것 같았다.

처음의 흥분이 지나가자, 기자회견장의 모두는 새로운 ‘로봇’을 천천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실 자연스러운 이족보행에 가슴을 두근거렸지만, 저 정도의 반응은 이전의 ‘로봇’들 역시 보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로봇’은 이전에 발표했던 다른 ‘로봇’들과는 확연한 차이점이 있었다. 우선 외견부터 그랬다. 이전의 ‘로봇’들은 사족보행이 기본이었고, 인간의 생김새와는 차이가 있었다. 표면은 털로 덮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발이나 손, 얼굴의 생김새도 인간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표피는 대부분 연분홍색의, 반짝이지 않는 무광의 뭔가로 덮여 있었다. 부드러워 보이는 것이 얼핏 고무나 실리콘처럼 보였지만, 그것과는 어딘지 다른 재질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손과 발도 인간과 거의 동일했다. 얼굴의 생김새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아래로 기다란 머리와 살짝 돌출된, 표피와 같은 채색의 코. 치아는 조금 더 붉은 색의 표피로 덮여 있었다. 한 쌍의 귀가 머리 양쪽에 붙어 있었고, 머리 위쪽에는 기다란 털이 자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저희는 이 ‘로봇’에게 ‘아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로봇’, 아니 ‘아리’를 바라보던 기자회견장의 모두는 발표자의 말에 시선을 돌렸다. 발표자는 만면의 웃음을 지은 채, 자신과 연구자의 사이에 숨듯 서있는 ‘아리’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그 행동에 ‘아리’는 깨달았다는 듯, 잠시 망설이더니 두 사람의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아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자연스러운 말에 기자회견장은 다시 술렁였다. 녹음된 게 아니라 본인이 하는 말이라는 것은 확실했으니까. 이전에는 말을 하는 ‘로봇’이 선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몇 번 유사한 경우는 있었지만, 그것들은 그저 인간의 말을 기억해 따라할 뿐이었다. 다시금 이어진 웅성임과 셔터 소리에 ‘아리’는 두려워하는 것 같았지만, 얌전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발표자가 다시 발언을 이어갔다.

“그럼 우선 ‘아리’를 만들어낸 과정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로봇’ 개발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물론 이족보행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로봇’ 개발에 있어서 운동능력을 구현할 수 있는 신체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요. 동시에 인공지능 개발 부분에서는 ‘로봇’의 모든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는 ‘뇌’의 클럭 성능을 높이고, 머신러닝을 통해 다양한 행동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발표자의 설명이 이어지며, 슬라이드에서는 여러 사진과 설명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 모인 기자나 관계자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이런 중대한 사건의 발표에는 이런 이론적인 부분이 빠질 수 없었다.

“에츄.”

기나긴 설명이 이어지던 중, ‘아리’가 갑자기 소리를 냈다.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기묘한 소리를 낸 ‘아리’는 양 손으로 팔을 문지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행동의 의미를 깨달은 연구자는 단상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도우미에게 손을 흔들었다. 회견장의 모두는 그 행동의 의미를 궁금해 했지만, 차마 물어보지는 못한 채 단상 위에서 일어나는 움직임들을 바라봤다. 연구자가 잠시 단상 뒤를 향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진 뒤에 연구자는 직물로 만든 커다란 보온용 천을 들고 와, ‘아리’의 어깨에 덮어줬다. ‘아리’는 기다렸다는 듯 그 천으로 몸을 감쌌다. 연구자는 보관대에서 또 다른 천 주머니를 꺼내 ‘아리’의 발에 씌워줬다. 그 행동을 관심 있게 바라보는 이들에게 발표자는 설명했다.

“아, ‘아리’는 표면이 ‘털’로 보호되지 않아 보온성능은 조금 떨어집니다. 일반적인 ‘로봇’들처럼 항온성을 유지해야하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한 해결책을 연구 중입니다.”

발표자가 설명하는 사이, 도우미 하나가 한랭지용 보온팩을 천 주머니에 담아 ‘아리’에게 건네줬다. ‘아리’는 고맙다는 듯 도우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천에 담긴 보온팩을 몸에 두른 천 안으로 집어넣고 꼬옥 끌어안았다. 극한지역에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라 온도가 높은 것을, ‘아리’의 항온성을 위해 천 주머니에 넣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뒤늦게 이해했다.

“그럼 설명을 이어가겠습니다. 이를 통해...”

잠깐의 헤프닝이 끝나자, 발표자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설명이 길어지자 ‘아리’는 어느새 긴장이 풀린 건지 지루한 건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이다 휘청, 하고 몸을 한 번 넘어트릴 뻔하다 일어났다. 처음 ‘아리’와 함께 나왔던 연구자는 당황하며 다시 몸을 반듯이 하는 ‘아리’에게 웃어주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아리가 그 위에 앉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렇게 처음 5개의 ‘로봇’을 만들어냈지만, 제작 과정에서 4개는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단 하나 남은 ‘아리’를 저희 연구진은 수년간의 ‘육성’ 과정을 거쳐 이렇게 여러분께 발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발표자의 말이 끝나고, 더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이들은 이윽고 다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연구자의 다리에 앉아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거리던 ‘아리’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듯 몸을 한 번 떨고는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럼 이제부터 질문을 받겠습니다.”

발표자의 말에 기자들은 우루루 손을 들었다. 발표자는 그 중 가장 먼저 손을 든 기자를 가리켰다. 기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리코 타임즈의 A-457입니다. 그럼 현재 ‘아리’는 제작된 지 몇 년이 지난 겁니까?”

“현재 ‘아리’의 생산부터 5년이 지났습니다. 저희 연구진은 완전히 ‘육성’을 끝내고 완성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10년 정도가 필요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GBC의 HE-983입니다. ‘아리’를 개발한 과정은 잘 들었지만, 정말 ‘아리’가 인공지능을 지녔다는 사실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이전의 다른 ‘로봇’들과 달리 외견이 인간을 닮은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머신러닝을 통해 학습한 내용이 아닌 정말 ‘인공지능’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모두가 발표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오늘 발표의 가장 중요한 점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발표자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좋은 질문입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아리’가 직접 여러분의 질문에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리’, 이리 오렴.”

발표자는 앉아있는 ‘아리’를 향해 말했다. ‘아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나 자리를 비켜준 발표자 대신 단상 앞에 섰다. 처음에는 조금 높이가 맞지 않았지만, 도우미가 발판을 가져오자 모두에게 잘 보이게 되었다.

“아, 아직 ‘아리’는 ‘육성’ 과정에 있으므로 너무 어려운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잘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고 질문해주세요.”

발표자의 말에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HE-983은 아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리’, 지금 기분이 어떻지?”

“아, 그... 조금 긴장돼요. 이렇게 많은 ‘인간’을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기자의 질문에 아리는 딱딱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 말투는 정말 긴장한 인간과 같았다. HE-983은 다시 질문하려 했지만, 발표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HE-983이 이해했다는 듯 자리에 앉자, 다른 기자들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아리’는 명령을 내려달라는 듯 발표자를 바라봤고, 발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는 조심스럽게 기자를 가리켰다.

“자신이 생각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건... 잘, 모르겠어요. ‘생각한다’는 게 어떤 거고, 어떻게 증명할지, 잘 모르겠어요.”

이번 대답은 자신 없다는 듯, ‘아리’는 기자의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발표자는 웃으며 마이크를 잡고 대신 말했다.

“하하, 말씀드렸듯이 ‘아리’는 아직 ‘육성’과정에 있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하신 것 같군요.”

발표자의 말에 기자들 사이에서는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질문한 기자 역시 머쓱했는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다시 기자들이 손을 들고, ‘아리’는 그 중 하나를 가리켰다.

“이렇게 많은 ‘인간’을 본 것이 처음이라고 했는데, 그럼 이 자리에서 혼자 ‘로봇’인 것에 대해서는 어떤 기분입니까? 다른 ‘로봇’들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나요?”

“저 혼자 ‘로봇’인 건 늘 그래서 괜찮아요. 다른 ‘로봇’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아요. 그래도 잘 지내고 있어요.”

“잘 지낸다는 건 어떤 뜻이죠?”

“애완용 로봇과 지내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인간을 공격하듯 ‘아리’를 공격해 부상을 입힌 적도 있지만, 온화한 ‘개’ 형이나 ‘고양이’ 형 애완용 로봇과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발표자의 대답에 기자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이어서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다. ‘아리’는 가능한 내에서 대답을 하고, 잘 대답하지 못하거나 부연 설명이 필요한 것은 발표자가 대신 답하거나 ‘아리’를 돕거나 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지나자 ‘아리’가 답변하는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발표자는 그 모습에 말했다.

“자, 아무래도 ‘아리’가 지친 모양이니 질답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마지막 질문 하나만 받도록 하죠.”

마지막 질문이라는 말에 기자들은 자신이 마지막을 차지하겠다는 듯 번쩍 손을 들어올렸다. ‘아리’는 마지막이라는 말에 고민하듯 사람들을 둘러보다 한 명을 지목했다. 뒤쪽에 앉아있던 기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최초의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로봇으로서, ‘아리’는 유일한 개체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간과도 다르고, 다른 ‘로봇’들과도 다른 것 같군요. 즉 세상에서 하나뿐이라는 것인데,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나요?”

‘아리’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발표자가 대신 대답하려 했지만, ‘아리’의 표정을 보고는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리’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저 혼자라는 건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연구실에 있는 많은 인간분들이 제 ‘육성’을 위해 함께 해주시고 있어서 괜찮은 것 같아요. 게다가 연구가 잘 진전되면 저랑 같은 ‘로봇’을 잔뜩 만들 거라고 하셨으니까, 외로워도 그때까지 기다릴래요.”

‘아리’의 대답에 기자는 알겠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발표자 역시 ‘아리’의 대답에 만족했다는 듯 싱긋 웃어보이고는 ‘아리’를 데려온 연구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자는 ‘아리’에게 이제 됐다고 속삭였다. ‘아리’는 알겠다는 듯 자신에게 내민 연구자의 손을 잡고 단상 뒤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발표자는 마이크를 잡고 말하기 시작했다.

“방금 ‘아리’가 한 마지막 답변은 좋은 대답이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미리 말한 것은 아쉽지만요. 네, 우리는 ‘아리’를 통해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을 완성시키고, 제작과 육성 과정을 더 안정화시킬 예정입니다. 계획대로 진척된다면,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사회 곳곳에서 우리의 일을 대신해줄 것입니다.”

단상 너머로 사라지기 전, ‘아리’는 왜인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연구자는 그런 ‘아리’의 행동에 의문을 품었지만, 재촉하지는 않았다. ‘아리’가 단상 너머로 사라지지 않은 것을 모른 채 발표자는 말을 이어갔다.

“아시다시피 ‘로봇’은 자체적으로 재생산이 가능합니다. ‘성별’이 다른 두 개체간의 재생산 과정을 통해, 두 개체의 특성을 공유하는 ‘로봇’을 제작하지요. 물론 인간이 태어나는 것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희는 연구를 통해 그 과정을 빠르고 확실하게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를 도와줄 장치 역시 연구 중이고요. 인간에게는 필요 없는 여러 화학 물질을 섭취해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고, 또 개체수가 늘어나는 만큼 장기적으로 ‘로봇’이 완성된다면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이미 ‘아리’와 짝을 이룰 다른 ‘성별’의 개체도 제작 중입니다. ‘로봇’ 연구의 앞날은 밝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과정에 큰 족적을 남긴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자, ‘아리’.”

결국 연구자는 ‘아리’를 재촉했다. ‘아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구자를 따라 단상 뒤의 대기실로 향했다. 사람이 적어져 긴장이 풀렸는지, ‘아리’는 ‘로봇’ 특유의 불필요한 동작으로 가슴 부위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엄청 긴장했어요.”

“그래도 잘 끝냈어. 역시 ‘아리’ 넌 대단한 로봇이야.”

“그런데 저랑 같은 ‘로봇’을 만들고 있다는 건 사실인가요, 박사님?”

“물론이지. 지금은 제작 초기 단계지만, 곧 생산 자체는 완료될 거야. 물론 ‘아리’ 네게 ‘육성’ 과정이 필요했듯, 너랑 같은 ‘로봇’도 ‘육성’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네 ‘육성’이 끝날 무렵에는 그 ‘로봇’도 어느 정도 ‘육성’이 끝날 거란다.”

“기대돼요. ‘외로움’이라는 건 잘 모르겠지만, 세상에 저 같은 ‘로봇’은 저 하나라는 건 지금까지 생각도 못 해봤거든요.”

“그런 것도 ‘아리’ 네 ‘육성’에서 좋은 자극이 된 모양이구나. 발표가 너무 이른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잘 된 일인 것 같아. 자, 지친 모양이던데 잠시 전원을 끄고 쉬고 있으렴. 다 끝나서 연구실로 갈 때가 되면 전원을 넣어줄 테니까.”

“네, 박사님.”

연구자의 말에 ‘아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에너지가 부족한 ‘로봇’들처럼 길게 ‘하품’을 했다. 연구자는 마치 애완용 로봇 같은 그 동작에 싱긋 웃고는, ‘아리’를 위해 준비된 대기실의 문을 열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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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7일 ‘장르 코드 전력'(https://twitter.com/genrewritingst1) 주제 '로봇'에 참가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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