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6일 수요일

Broken Flower(가제) - (2)

 그녀를 '구입' 하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창관에서 그녀를 '사오는' 것은 큰 무리가 없었다. 그녀는, 글쎄, 내가 예상하던 '가격' 보다 너무할 정도로 저렴했으니까. 그녀를 찾기 위해 창관에 오는 단골이 있다는 것이 유일한 문제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제시한 가격을 들은 창관주에게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닌 듯 했다. 그는 그저 내게 마지막으로 물어봤을 뿐이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하자'가 있는 상품이지요. 뭐, 그래서 구입하려고 하시는 거라면 상관 없겠지만, 나중에 와서 딴 이야기 하셔도 곤란하답니다. 아시겠죠?"
 마음만 같아서는 제시한 가격의 돈다발 대신 애용하던 야전삽날으로 뺨을 때려주고 싶었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한 달. 나는 그녀의 생활에 대해 몇 가지를 배웠다.
 "일어나."
 아침. 군인의 하루는 빠르다. 나는 겨우 동이 터오를 무렵 침대에서 일어나, 옆 방의 문을 두드렸다. 물론 대답은 없었다. 나는 문을 열고 그녀의 침대로 다가갔다. 이불을 벗겼다.
 옆으로 몸을 뉘운 채 잠을 청하던 그녀는 찬 바람이 싫은지 몸을 웅크렸다. 짧은 오른쪽 팔은 베게와 평행을 이루고 있었다. 조금 더 긴, 팔뚝 부분까지 남은 왼팔은 허리쯤에 놓여있었고, 발목 밑은 없는 양 다리는 배 부분까지 올라가 있었다.
 한 달 사이에, 이미 익숙해졌다. 나는 그녀의 잠버릇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어떤 형태로 잠드는지. 늘 옆으로 누워 오른손을 뺨에 댄 채, 왼손은 배에, 양 다리는 교차하며 마치 태아와도 같이 몸을 웅크렸다. 언젠가 그녀는 '총을 안고 자 버릇 했거든' 이라고 그렇게 자는 이유를 설명했었다. 그렇게 인상에 남은 잠버릇이기에, 처음 그녀를 깨우러 갔을 때는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잃어버린 팔다리를 익숙한 위치에 놓은 그녀의 모습에, 예전과 다른 그 모습에.
 하지만, 말했듯이 이제는 익숙해져버렸다. 그녀는 잠시 꿈틀거렸지만, 이윽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천천히 눈을 떴다.
 "가끔 어떻게 예전에는 이 시간에 일어났나 싶다니까."
 "일어날 때마다 나도 늘 그 생각을 해."
 "오늘 밤에도 찾아오지 않았네. 기다렸는데. 그러다 썩을 지도 몰라. 사용하지도 않을 '상품'을 도대체 왜 산 거야?"
 "어떤 용도로 어떻게 쓰는지는 내 자유야. 일어나기나 해."
 놀리는 그녀의 말에도 담담하게 되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내 재촉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을 뒤집었다. 조금 더 긴 왼팔을 의지해 상체를 일으키고, 배 부분으로 끌어올린 양 다리로 몸을 마저 일으켜 침대 맡에 걸터 앉았다. 그녀는 짧은 양 팔을 좌우로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오른팔로 눈가를 문지르는 그녀에게 말했다.
 "다 끝났으면 붕대부터 갈자고."
 오른팔을 뗀 그녀의 눈가는, 그녀의 피고름이 조금 묻어있었다.
 처음 그녀를 깨운 내가 그 모습에 놀랐을 때, 그녀는 말했었다.
 "워낙 상처가 깊었거든. 그리고 야전병원은, 뭐 너도 알듯이 실력도 능력도 없는 놈들이 전부고. 그 이후로 계속 이래."
 진물이 스며나와 노랗게, 혹은 빨갛게 물든 붕대를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바라보며 그녀는 말했다.
 "이 정도 지나면 아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 매일 이런 식으로 진물이랑 피고름이 나와. 어쩌면 썩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 살아있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
 "역시 겉으로 보는 것과 함께 지내는 건 다른 일이지? 그러니까 손님으로 남지 그랬어요, 주인님."
 말을 잃고 굳은 내게 그녀는 몇 번이나 지었던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하루 일과는 소독이랑 붕대를 다시 감는 걸로 시작해. 물론 몸이 이러니까 나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상품을 산 이상 유지랑 보수는 본인이 담당하셔야겠죠?"
 그녀는 마치 나를 놀리듯, 혹은 재듯이 말했다. 잠시 머뭇거렸다. 충격에서 빠져나오기에는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벗긴다."
 그리고 한 달 째, 이렇게 일과는 이어지고 있다.
 "가능하면 살살 해주면 좋겠는데."
 먼저 그녀의 왼손을 잡은 내게 비웃듯 말하면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가 이를 악 물고 있는 것도, 각오하고 있는 것도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다. 나는 마주 고개를 끄덕여주고, 최대한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
 이를 악 문 그녀의 입가에서, 비명이 되지 못한 신음이 새어나온다. 아무리 조심하려고 해도 흘러나와 피부와 붕대 사이에 스며들어 굳어버린 진물과 피고름은 떨어져나가며 그녀의 상처에 격한 통증을 안겨준다. 이것 역시 한 달 사이에 배운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조심스러운 손놀림을 조금 더 세심하게 바꾼다. 조금이라도, 그 고통이 덜하길 바라면서.
 붕대 밑의 상처는, 솔직히 말해서 보기 흉했다. 갈색을 넘어 거의 검은색에 가까웠다. 마치 익어버린, 아니 타들어간 고깃덩어리처럼. 그것들이 제멋대로 주름을 잡으며 쭈글거리고 접히고 늘어나 있었다. 전장을 거치며 그런 광경은, 정확히는 사람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건 자주 보아왔지만, 그럼에도 견디기 힘들었다.
 "이번에는 아플 거야."
 "방금도, 충분히, 아팠어."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려 애쓰는 내 목소리에, 그녀는 불규칙적이고 거친 호흡 사이로 말을 토해냈다. 이미 붕대를 벗긴 것만으로도 그 정도의 고통이다. 이제부터 할 일은, 아마 그걸 아득하게 넘어설 고통.
 "줄까?"
 "줘."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갈아주기 위해 챙겨온 붕대를 그녀의 입에 가져다 댔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내밀어 붕대를 물었다. 붕대를 꽉 물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두어번 잡아당기고 흔들었다. 잘 고정되어 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눈으로, 두려움과 각오를 제멋대로 뒤섞은 눈빛으로 나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뚜껑을 열고, 망설임 없이 소독약을 상처에 부었다.
 "ㅡㅡㅡㅡ!"
 그녀는, 비명이 되지 못한 비명을 내질렀다. 붕대를 문 입이 부들부들 떨린다. 아마 있는 힘껏 물고 있는 거겠지. 발목 위로만 남은 다리가 버둥거린다. 제멋대로 움츠러들었다 펴지기를 반복한다. 왼팔을 있는 힘껏 붙잡았다. 그래도 오른팔보다는 낫다. 짧은 그녀의 오른팔은 잡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나를 때리지 못한다. 나는 소독약이 잔뜩 묻어 있는 그녀의 상처 주름 주름 사이를 거즈로 문질렀다. 말 그대로 상처를 헤집는 느낌이 들겠지. 소독약 만으로도 불타던 그 순간의 통증이 기억날 텐데, 이제는 그 사이마다 흘려넣고 있으니까.
 "그ㅡㅡㅡㅡ! 그으ㅡㅡㅡㅡㅡㅡ!"
 그만하라는 뜻이겠지. 그녀의 웅얼거리는 비명을 알아듣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꼼꼼히, 마저 소독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녀의 팔을 놓아줬다. 한동안 그녀는 몸을 꿈틀거렸다. 물론 비명도 계속되었다. 잠시 후, 그녀는 죽은 눈을 내게 돌렸다. 한 쪽뿐인 눈에서는 눈물이 잔뜩 흘러나와 있었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입에 손을 가져다 대, 붕대를 꺼냈다. 흘러나온 침에 붕대는 축축해져 있었다. 침이 붕대와 그녀의 입 사이에서 얇은 실을 만들어내다 끊어졌다. 그녀는 거친 숨을 헉헉대며 내쉬었다.
 나는 말했다.
 "이제 왼팔 차례야."
 그녀는 하핫, 하고 웃었다.
 한참의 씨름 끝에, 그녀의 붕대는 전부 새 것으로 바뀌었다. 물론, 그녀의 잃어버린 한 쪽 눈도. 그 때의 그녀가 가장 고통스러워 했기에, 가장 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더 이상 떠올리지 않았다. 그 밑에 있는 것을 매일 보기에 잊을 수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치 그녀의 옛 모습을 기억하려고 하는 것처럼. 그녀를 볼 때마다, 잔혹한 현실을 마주하는 것처럼.
 "이제 씻겨줘."
 겨우 안정을 취한 그녀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이거 하나는, 너에게 구입되어서 좋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역시 일그러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허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말 자체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창관에서는, 붕대를 벗기고 바로 씻어버렸다니까. 소독약 보다야 물이 낫겠지만, 그녀는 그 고통을 겪고 싶어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말로 언젠가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다고 했지만.
 그녀의 잠옷을 벗겼다. 속옷도 벗겼다. 창관에서는 일에 '방해'되는 그런 것은 입히지 않았다. 다음날 내가 속옷을 사오자, 그녀는 처음으로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 웃었다. 내게 어떻게 여성 속옷 가게에 들어가서, 자신의 사이즈를 알고, 이렇게 사올 수 있었는지 계속해서 물어봤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알몸은, 미안하지만, 더 이상 아름답지는 않았다.
 창관에서 봤을 때 예상했던 대로, 온 몸 여기저기에는 크고 작은 화상과 흉터들이 있었다. 다행히도 팔과 다리의 절단면 만큼이나 상처가 심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역시 여위어 있었다. 흉부에는 갈비뼈가 화상에 쭈글거리는 가죽 너머로 마디마디 튀어나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허리는 가늘어져있었다. 한 때는 보일 듯 말 듯 새겨져 있었던 복근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나는 그녀의 나체를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아마 야영 도중이었을 거다. 며칠이나 이어진 작전에 씻지도 못했다면서, 숙영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냇가가 있다며 나를 망보기 역할로 끌고 갔었지. 그때의 그녀의 알몸은 아름다웠다. 이미 반했음에도, 다시 반할 정도로. 매끈한 피부. 살짝씩 보이는 근육의 형태. 날렵하고 굴곡 있는 몸매. 이제와서 말하자면, 그녀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안할 때마다 그 때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했다.
 "역시 알몸을 보여줘야 흥분하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현실을 바라봤다. 긴 왼팔을 뒤통수에 대고, 짧은 오른팔을 옆구리에 대며, 그녀는 팔다리가 온전했다면 섹시한 포즈였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역시나 비웃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주인님, 언제까지 저를 외롭게 두실 생각이신가요? 이렇게 벗기기도 하셨으면서. 그런 창관에 가셨다는 건, 결국 욕심은 있으셨다는 거잖아요? 게다가 첫 사랑인데. 이제 그만 사용해주셔도 좋은데요."
 "데워오긴 했지만, 좀 차가울 거야."
 아무리 달콤한 유혹이라도 매일같이 계속되면 그저 소리일 뿐이다.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타올을 미리 떠온 미지근한 물에 담근 뒤 그녀의 몸을 씻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액체의 감촉이 차가운지 몸을 움찔이던 그녀였지만, 이윽고 다시 유혹을 시작했다.
 "역시 전희는 가슴부터 시작하는 거야?"
 "존재하지 않는 것에 애무할 수는 없지."
 "너무하네. 지금까지 중에서 제일 상처받았어. 그럼 지금은? 배꼽을 문지르는 것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마니악하고."
 "마니악한 취미는 없어."
 "이런 몸뚱이를 가진 창녀를 구입하는 시점에서 충분히 마니악 하다고 생각하는데."
 "시끄러워."
 "사타구니로 손을 옮기면서 그런 말을 하면 설득력이 떨어져."
 "가끔 왜 창관에서는 널 그냥 욕조에 집어넣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물론이지.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양 다리로 내 허리를 감았다. 내 상체를 잡아당겼다. 나는 그녀를 올려봤다. 그녀는 나를 내려봤다. 거리는 코와 코가 닿을 정도의 거리였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짓도 해버리거든."
 그녀는 얼굴을 내게 가까이 했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그녀의 입이 내 입에 맞닿고, 입술이 입술을 탐하고, 혀가 내 입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이를 문 채, 그녀의 그런 유혹을 마저 거부했다. 잠시 공격을 계속하던 그녀는 입을 떼었다. 한 쪽 뿐인 광채 없는 눈으로 날 그저 바라봤다. 무감정하게. 이윽고 그녀는 말했다.
 "재미없어."
 "미안하군."
 내 대답에 그녀는 다시 얼굴을 가까이 했다. 이번에는 내 입을 향해서가 아니었다. 내 목을 향해서였다. 따끔, 하는 걸 조금 넘어선 통증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목덜미에서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나를 바라본 그녀의 입가에서는 피가 한 방울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혀가 요염하게 그걸 핥아서, 삼켰다.
 "이건 어때?"
 "곤란하군. 출근해야 하는데 말이야."
 "어차피 날 집에 들여놓은 건 너희 상관도 알 거 아냐?"
 그 말 대로였다. 그 날 바로 그녀를 사왔고, 상관은 나와 같이 창관에 찾아갔으니까. 다행히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부에 보고가 된다면 그냥 끝나지는 않겠지. 창녀를 말 그대로 '구입' 해서 같이 살고 있으니까. 그저 그는 '제안은 자기가 했지만 그 정도로 푹 빠질 줄은 몰랐다' 라든가, '나도 그렇지만 너도 취향 정말 독특하다' 식의 발언을 가끔 단 둘 뿐일 때 했을 뿐이었다.
 "상관만 있는 건 아니니까. 부하들도 있고."
 "중대장이라고 했나? 5년 사이에 많이도 승진했네."
 "전시임관 대상으로 뽑혔으니까. 종전이 된 지금도 유지되어서 다행이지."
 내 말에 그녀는 놀리듯 웃었다.
 "그런 중대장님이 집에 이런 여자를 사와서 매일같이 끼고 산다는 걸 알면, 중대원들 반응이 볼만 하겠는데?"
 "그 녀석 같은 반응을 받겠지."
 "'데드 오어 얼라이브'?"
 "가끔 아직도 왜 그 녀석이 프래깅을 안 당했는지 궁금해. 우리 부대가 그 정도로 얌전하지도 않았는데. 역시 아군은 쏘지 않는 걸까."
 "무슨 소리야. 시도는 있었다고. 단지 실패했을 뿐이지."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누가 했어?"
 "내가. 주머니에 수류탄을 넣었는데, 안전핀을 뽑는 걸 깜빡 했거든."
 "너답지 않은 실수군."
 피식거리며 서로 대화를 나눈다. 그때처럼. 잠시라도. 비록 이렇게 된 그녀라고 해도.
 그것만으로도, 그런 위험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럼 이제 아침을 먹어야겠군."
 나는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미 출근시간은 아슬아슬할 정도로 가깝다. 나 혼자라면 분명 끼니를 거를 정도로.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침대에서 내가 일어나자, 그녀는 다시 침대에 뒹굴었다.
 아침은 가볍게 준비한다. 스크램블 에그에 소세지, 빵 몇 조각, 그리고 주스. 쟁반에 담아 다시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포크를 들며 물었다.
 "뭐부터 시작할까?"
 "역시 계란부터 시작해야겠지."
 그녀의 말에 나는 포크로 스크램블 에그를 찍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입을 열고 그걸 받아 먹었다. 일부러 입술을 움직이며 혀를 뻗어 받아 먹은 것은, 분명 날 놀리기 위해서겠지.
 "다음은 소세지가 좋겠어. 하필이면 소세지를 고른 건, 역시 풋내나는 애송이 나름대로의 유사 성행위인 걸까?"
 "헛소리 하지 마."
 내 말에 그녀는 요염하게 받아먹는 것을 그만두고, 이빨로 소세지의 허리를 끊어 우물거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인가의 포크질 끝에 마지막으로 주스를 내밀었다. 액체를 먹이는 건 몇 번을 해도 쉽지 않았다. 이번에도 조금 넘친 주스가 그녀의 입가를 타고 흘렀다. 나는 냅킨을 들었지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왼팔로 입가를 훑었다.
 "붕대에 묻잖아."
 "괜찮아."
 내 말에 그녀는 혀로 튄 주스방울을 훑으며 말했다.
 "거기까지 인형 취급 할 필요는 없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였으니까. 잠에서 깨우고, 몸을 씻어주고, 밥을 먹여준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하니까. 마치 인형놀이를 하듯이. 처음에는 아무 말도 없던 그녀는, 조금씩 그런 말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잘 모르겠다. 그녀에게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어쩌면 필요하지 않은 걸까.
 그녀는 이 '인형놀이'를 즐기는 걸까, 아니면 질려가고 있는 걸까.
 "그보다 시간 다 됐어. 이대로는 정말 늦을 걸."
 "그러게."
 왼팔로 벽의 시계를 가리키는 그녀의 행동에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접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군복은 입고 있다. 접시는 돌아와서 치우도록 하지. 나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마루로 옮겨줄까? TV라도 볼 수 있게."
 "그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어."
 "...그래."
 그녀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화기는 떨어트리면 나에게 연결되게 되어있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그 정도도 알아서 할 수 있어."
 "그래."
 벌써 한 달이나 됐는데. 몇 번이나 반복한 대화인데, 집을 나설 때마다 반복하게 된다.
 "그럼, 갔다 올게."
 "다녀오세요, 주인님."
 내 말에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대답했다. 늘 그렇듯이. 이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녀는 이 집에 혼자다. 그녀가 홀로 있을 때 뭘 하는지 만큼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모르겠다. 물어본 적은 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나는 문을 닫고 집을 나섰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부대를 향했다.
 그녀는 무엇을 하는 걸까.
 나는 무엇을 하는 걸까.
 그것 역시,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알 수가 없었다.

댓글 2개:

  1. 이런 생활만이라도 이어져도 좋지 않은가!
    제발...제발 배드엔딩만은...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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