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8일 금요일

Broken Flower - (4)

 "이게 뭐야?"
 그녀의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사실, 그녀 역시 진지하게 물어본 것은 아니겠지만.
 "휠체어야."
 내 대답에도 그녀는 내 옆에 있는, 바퀴와 손잡이가 달린 그 의자를 의심스럽다는 듯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조금 더 덧붙일 필요를 느꼈다. 정확히는,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늘 집 안에만 있는 것 같아서. 여기 오고 두 달 넘게."
 그 말에 그녀는 의심스럽다는 듯한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그 시선이 다시 목을 조르는 것만 같아서 나는 헛기침을 하면서 다시 설명을 보충했다. 물론, 이번에도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네가 직접 움직일 수 있도록 전동 휠체어로 사고 싶었지만, 그렇게 돈이 많지는 않아서."
 이 부분은 돌려대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실제로 내 예금통장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탄창의 장탄이 줄어들듯.
 5년 동안 받은 봉급의 대부분은 저축하며 살았다. 전쟁 통에 몸에 익은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깃든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덕분에 무엇을 하면서 돈을 써야 할지도 모르게 되어버렸으니까. 내 명의의 집과 자가용을 산 뒤로는 딱히 살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를 '구입' 하는데는 돈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 큰 부담은 없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막대한 지출이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 뒤에도 그녀를 '유지' 하는데 역시 많은 돈이 들었다. 붕대값 정도야 처음에는 큰 부담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상처가 상처였던 덕분에 빨고 삶는 것으로도 재사용에는 한계가 있었다. 항생제 등의 치료비도 들었다. 아직 그녀를 제대로 된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한 것은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통장에도, 그녀에게도. 식비나 생활비가 2배가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그녀는 내 말에 특유의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는 그녀의 환했던 미소보다 이쪽이 그녀의 미소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날 내 의지로는 움직일 수도 없는 휠체어에 태워서는 인형놀이를 하겠다는 거네? 그것도 밖에 자랑까지 해가면서."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
 그렇게 말하는 내 목소리는 그저 평이했다. 딱히 토라지거나 상처받은 건 아니다. 그녀의 말버릇이라는 것도 이제는 이해했으니까.
 "예전에 네가 말했었잖아. 사람이 가끔은 햇볕도 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너는 언제나 방구석에 처박혀서 책이나 읽었으니까."
 나와는 반대로 그녀는 움직이는 걸 좋아했다. 어쩌면 군대는 그녀에게 천직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움직여야 했으니까. 휴식시간마다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하려 텐트 밖으로 향하는 그녀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그녀는 좋은 날씨에도 텐트 안에서 책이나 읽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오랜만에 산책이라도 가자고."
 내 말에 그녀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이건 그녀 나름대로의 항복 표시라는 건, 그때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이 말을 듣는 것이 좋았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고는 이를 살며시 드러내며 말했다.
 "퇴근길에 사온 정성은 인정하지만, 그보다 근무는 괜찮은 거야? 지난 두 달간 네가 하루도 쉬는 걸 못 봤는데."
 장교는 주말에도 바쁜 법이다. 그녀의 말도 사실이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휴가도 받았어. 2박 3일의 짧은 휴가지만."
 "어딜 갈 생각인데?"
 "어딜 가고 싶은데?"
 그녀의 질문에 나는 되받아쳤다. 그녀는 하, 하고 웃고는 말했다.
 "네가 나가자고 했으면서 왜 내게 물어보는 거야?"
 "네가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게 내 계획이었으니까."
 "나는 가고 싶은 곳 따윈 없어."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휴가 동안 하고 싶은 일은 없어?"
 "네 휴가지 내 휴가가 아니야. 난 할 일이 없거든. 겨우 구입해준 주인님은 전혀 써주지도 않고 방구석에 하루 종일 방치할 뿐이고."
 "그걸 조금이라도 채우고 싶은 건데."
 "어차피 안아주지도 않을 거잖아."
 내 대답에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물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긍정이라는 걸 모를 정도로 그녀는 멍청하지 않다. 잠시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휠체어를 바라봤다. 나는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를 들으며 그저 그런 그녀를 바라봤다. 한참이 흐르고 그녀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말했다.
 "빌어먹을."
 "정 생각이 없다면, 나름대로 생각한 건 있어."
 나는 이번에도 약간의 만족감을 느끼며 말했다. 그녀는 뚱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불만 가득한 눈빛이었다. 나는 말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휴양림이 있어. 작지만 호수도 있고, 펜션도 있고. 2박 3일을 예약하려고 했는데."
 "그딴 계획을 세워뒀으면 이딴 촌극은 안 해도 되잖아."
 그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에 따르려고 했지."
 "가고 싶은 곳 따위는 없다고 했잖아!"
 그녀는 히스테리적으로 외쳤다. 방금 들은 그 말을 계획을 짤 때에 알 리가 없다는 걸,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겠지.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나는 그저 담담히 말했다.
 "그럼 그래도 되겠지?'
 "마음대로 해."
 그녀는 씹어 뱉듯 말했다.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휠체어를 밀고 방을 나섰다.
 늘 그렇듯 밤이 지났다. 아침이 되었다. 평소처럼 나는 그녀를 깨웠다. 그녀는 역시나 짜증을 냈다.
 "이런 젠장, 휴가 받은 날 정도는 늦게 잘 수 없어?"
 "휴가를 한 순간이라도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 일어나."
 우리는 늘 그렇듯 붕대를 가느라 한바탕 씨름했다. 잠시 진정할 시간을 가진 뒤, 나는 어제와 같이 휠체어를 그녀의 방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녀는 불신과 불만으로 가득 찬 눈으로 휠체어를 바라봤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그리고 그녀는 나를 보며 말했다.
 "태워줘."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에 걸터 앉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한쪽 팔을 그녀의 무릎 밑에 집어넣어 받치고, 다른 쪽 손으로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받쳤다. 그녀는, 당연하지만 무겁지 않았다. 너무 가벼울 정도였다. 정말 인형처럼. 그녀는 발버둥치지 않았다. 내 품 안에 안긴 채 그저 나를 올려볼 뿐이었다. 나는 그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겨, 조심스럽게 그녀를 휠체어에 앉혔다.
 그녀의 옷은 내가 미리 준비해뒀던 외출복이었다.
 "이딴 촌티나는 옷이라니."
 "미안하게 됐네."
 그녀의 한숨 섞인 말에 대답하는 내 목소리에는 토라진 기색이 담겨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상처 받았으니까. 나름대로 그녀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싶었던 건데 말이지.
 그녀를 태운 휠체어를 밀고 현관문을 나섰다.
 그녀가 이 집에 들어오고, 두 달 조금 더 되는 시간만에.
 내가 사는 곳은, 조금 낡은 아파트다. 간부용으로 제공되는 숙소가 따로 있었지만, 그곳에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내 명의로 된 집을 가지고 싶었던 게 제일 큰 이유였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그 이유가 어쨌든 감사하고 있다. 간부용 아파트에서 그녀를 데리고 살기는 힘들었을 테니까.
 그녀가 탄 휠체어를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크게 무겁지는 않았다. 그녀보다는 휠체어의 쪽이 더 무거웠다. 이 낡은 아파트의 유일한 단점은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점이다. 군인이 되어 좋은 점은 체력이 붙는다는 점이다. 그녀는 내내 그저 나를 올려봤다. 계단을 내려와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 밖은 아침 해가 비추고 있었다.
 아마, 그 순간 처음으로 햇살 아래에서 그녀를 봤을 거다. 기억을 뒤져봤지만 역시 그렇다는 결론이 나왔다.
 창백한 피부. 갈색으로 그을린 상처와 흉터들. 외출복은 일부러 노출이 적은 긴 팔 옷과 청바지로 사왔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완전히 가릴 수는 없었다. 기분 탓인지, 햇볕 아래에서 그녀는 더욱 작아보였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내가 보아온 것보다 더욱.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주 얇게. 한쪽 뿐인 눈이. 그녀의 표정은 그리 만족스럽게 보이지는 않았다. 내 기대와는 다르게. 그녀가 조금은 더 기뻐할 줄 알았다. 오랜만에 보는 햇살이라든가, 낮의 광경이라든가, 그런 것에. 감동하는 그녀를 상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불만을 담아둘 뿐이었다. 그녀는 투덜대는 것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빨리 가자고. 그 빌어먹을 곳이 어디든."
 "그래."
 그래서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휠체어를 내 자가용 옆에 옮겨 댔다. 그녀는 내 차를 보고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 올 때도 생각했지만, 지프라니. 맙소사. 못 본 사이에 뼛속까지 군인이 되셨네."
 "그냥 익숙할 뿐이야. 워낙 자주 탔으니까."
 "왜? 아예 군용 트럭을 사시지? 자주 탄 걸로는 그거에 못 미칠텐데."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들어올려 조수석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채웠다. 그녀는 그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내 쪽이나 내가 하는 일에는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고. 나는 휠체어를 접어 트렁크에 넣고 운전석에 앉았다. 벨트를 매고 시동을 걸고 클러치를 밟고 차를 출발시켰다. 그녀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짧은 오른팔을 창가에 걸친 채.
 대화는 없었다. 아침이라 도로는 크게 막히지 않았다. 그녀가 뭘 보고 있는지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그리 오래 운전하지 않아 차는 휴양림에 도착했다. 비포장 도로에서 내 낡은 지프는 덜컹거렸다. 그녀가 안전벨트 밑으로 흘러내리지 않게 양 다리에 힘을 주고 있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르겠는 이번 휴가 사이의 실수에 나는 한 줄을 더 적어넣었다.
 휴양림은 아름다웠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가지와 잎이 흔들리고, 그 사이로 햇빛이 부서지며 스며나왔다. 시원했다. 나무와 바람이 연주하는 합창이 듣기 좋았다. 그녀가 탄 휠체어를 밀고 펜션으로 향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그저 부서지며 스쳐가는 햇빛에 비쳐 색을 바꿔가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울고 싶을 정도로.
 그저 그녀의 표정이 조금은 더, 내가 기대했던 대로 밝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괜찮지?"
 펜션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말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호수 바로 옆에 자리한 2층짜리 펜션. 통나무로 지어진 아득한 저택이었다. 이곳의 분위기에 너무나도 적절히 어울려, 마치 그림이나 사진에 나올 것만 같을 정도로. 제법 비싼 돈을 지불한 가치가 있다고 나는 스스로 생각했다.
 아쉽게도 그녀는 내 생각에 동의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말했다.
 "여기에서 뭘 할 생각인데?"
 "글쎄. 그냥 이런 자연환경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날씨도 좋고, 바람도 선선하고, 경치도 아름답고..."
 "설마하니 이딴 걸 보면서 심신의 안정을 찾는다느니, 그동안 받은 상처를 치료한다느니, 우수에 찬 눈으로 경치를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내가 너무 못되게 굴었지?' 같은 소리를 지껄일 거라고 생각했다면 지금 당장 저 호수에 빠져 뒈져버리길 추천하겠어."
 나는 당장 호수에 빠져 뒈져버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왼팔로 이마를 문질렀다. 지금까지 본 동작 중 가장 자연스럽고,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는 동작이었다.
 "이래서 책만 읽는 새끼들은 안 돼."
 역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짐을 풀고, 그 동안 그래도 조금의 희망을 담아 그녀의 휠체어를 호수가 보이는 창가에 세워두고, 나는 요리를 시작했다. 조리기구가 있는 펜션이란 좋은 법이다.
 어쩌면 그녀를 또다시 방치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놀림을 조금 더 빠르게 했다.
 호수 쪽에는 테라스가 있었다. 피크닉 테이블도 있었다. 다시 한 번 나는 비싼 돈을 지불한 가치가 있다고 만족했다. 그 위에 음식을 차리고, 그녀의 휠체어를 몰아갔다.
 "이것 참 대단한 서비스네."
 그녀는 늘 그렇듯 비꼬듯 말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뭘 먹고 싶어?"
 "딱히 먹고 싶은 건 없어."
 "그럼 내가 골라줘도 될까?"
 "멋대로 해."
 그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한 번도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호수로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햇빛에 반짝이는 호수를.
 처음으로 나는 여기로 그녀를 데려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호수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으니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 쪽을 보지도 않은 채 그저 입만 벌리는 그녀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것을 중단하고 고개를 돌렸다. 조금 떨어진 곳의 다른 펜션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소리는 움직이더니 호숫가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꼬마애들과 부모의 모습이 보였다.
 "주말이라 놀러왔나보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다. 설명이라도 해주듯이.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그들에게 옮겨진 채였다.
 친한 친구들끼리 가족을 데리고 놀러온 것으로 보였다. 두 쌍의 커플과, 네 명의 꼬마애. 나이는 이제 초등학생이 될 무렵으로 보였다. 두 명의 남자애와 두 명의 여자애는 호숫가에서 물을 뿌리며 즐거워했다. 튀어오른 물방울이 반짝였다. 호수에 파문이 퍼져나갔다. 부부들은 그들을 보면서 흐뭇해하고 있었다. 뛰어노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나는 다시 식사를 재개하려 했다.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을 계속 바라봤다.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어떻게 보일까?'
 "무슨 소리야?"
 "저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는 무슨 관계로 보일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짜증 같은 건 담기지 않았다. 가끔씩 꿈을 꿀 때 외에 들은 목소리 중, 가장 그녀의 원래 목소리에 가까웠다.
 어딘지 힘없고, 바람소리에 실려 사라질 것 같다는 점만 빼고.
 "글쎄."
 어렵게 나온 말은 고작 그 정도였다.
 "사고를 당한 여자와 그 남자친구?"
 그리고 그 말은, 아무렇지도 않게 한 그녀의 말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창녀와 그 주인은 아니겠지."
 그녀의 입꼬리가 조금은 움직였다. 그렇게 보였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그들이 그녀를 눈치챘다.
 우리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서로 어떤 모습인지 확인할 수 있는 거리였으니까. 처음에는 아이들이 우리 쪽을 가리키며 손가락질을 했다. 신기하다는 얼굴로. 이윽고 그들의 입이 움직이고, 부부가 우리를 눈치챘다. 그들은 잠시 우리를 바라보더니, 애들에게 다가가 눈을 가리고 손을 끌며 펜션으로 향했다.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 애들에게 보여줘서는 안 될 걸 봤다는 듯.
 속에서 뭔가가 끓어올랐다. 너무하잖아.
 "너무하잖아."
 그리고 그 말은 내 대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그녀의 입꼬리는 확실하게 움직였다.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애들에게 상처를 줬네."
 "...미안해."
 나는 사과했다. 왜 내가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 채.
 "이제 알겠어?"
 그녀는 나를 돌아봤다. 어쩌면 이 펜션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는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나 같은 괴물이 밖에 돌아다니면 어떤지."
 "그런 말 하지 마."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말했다. 지금까지는 속으로 담아두기만 하던 말이었다.
 "뭔가 오해하는 모양인데."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지금 기분은 팔만 멀쩡했다면 저 빌어먹을 펜션에 로켓탄을 쏴갈기고 살아남은 것들은 모조리 묶어다 뒷마당에 무릎 꿇려놓고 처형할 기분이야. 전쟁 중에 늘 하던 대로."
 "이해해."
 "아니, 넌 절대로 이해 못 해."
 이번에도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인간들이 뭘 느꼈는지는 내 알 바 아니야. 괴물을 봤다고 생각하든 뭐든 아무 상관 없어. 나는 그저 부러운 거야."
 나는 그녀를 그저 바라봤다. 조금 더 덧붙여 달라는 듯.
 "나는 멀쩡한 인간을 보면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어."
 그녀는 말했다. 내가 기억하던 목소리로.
 "내가 하지 못하는 걸,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걸 가지고 있는 걸 보면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날 집 밖으로 데려나오기 전에 생각했어야 할 건, 내가 웃고 떠들고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지 하는 부분이었어. 그냥 밖에 나가면 대책 없이 즐거워지겠지, 기분전환이 되겠지, 아름다운 세상을 보면서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하는 세 살 먹은 꼬맹이도 안 할 생각을 하겠지 하는 생각이 아니라."
 그녀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호수를 향해서. 불청객이 사라진 호수는 다시 바람에 흔들릴 뿐, 잠잠히 빛나고 있었다.
 "나는 좋아서 창관에 박혀 있던 거야."
 그녀는 말을 이었다. 나는 그저 그 말을 들었다.
 "물론 나가기 힘들었던 것도 있어. 하지만 적어도 그 안에서 같이 지내는 동료들은, 나 같은 처지거든. 찾아오는 손님들은 돈을 주고, 내 아픔을 잊게 해주고. 그야 가끔씩 죽여버리고 싶은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 좁은 곳 안 만이 세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았어. 그리고 네가 날 끌고 나왔고. 다시 이 세상으로. 지금까지는 방 안에 처박아뒀지만."
 마지막은 덧붙이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맞는지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네가 날 데리고 내 불행을 자랑하게 하려는 것도 싫어. 날 동정하는 것도 싫어. 내가 불쌍하고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도, 상기시키는 것도 싫어. 동정하지 마. 난 좋아서 이딴 몸뚱이가 된 게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침착했다. 마치 저 호수처럼. 그래서 더 견디기 힘들었다. 차라리 꿈속에서처럼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주길 원했다. 꼭 포기한 것 같았으니까. 그게 뭐든지간에.
 "그래도."
 잠시 침묵 후에, 그녀는 작은 한숨과 함께 나를 돌아봤다.
 그녀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일그러지지 않고. 예전처럼. 지쳤지만.
 "호수를 보는 건 좋네. 이렇게 여유로운 것도 오랜만이고."
 "...그래. 다행이야."
 겨우,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나는 호수를 돌아보며 물었다.
 "휴가 중에, 하고 싶은 거 있어?"
 "있어."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다시 그녀를 돌아봤다.
 "전쟁 중부터, 아니 입대했을 때부터 쭉 하고 싶었던 거야."
 "뭔데?"
 "늦잠 자는 거."
 나는 그녀가 쭉 하고 싶었던 대단한 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것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내 눈빛을, 아마 설명이 더 필요하다고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군인은 늘 정해진 시간에 깨야 하잖아. 전쟁 중에는 말할 것도 없었고. 그리고 창관에서도 몸단장이니 뭐니 해서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그보다는 아침에야 잠들었지만. 게다가 나를 사주신 주인님은 또 군인이라 빌어먹게도 새벽부터 날 깨워서는 난리를 치고."
 "그래."
 "그러니까, 깨어날 때까지 잠들고 싶어."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오늘만은 꿈을 꾸지 않기를 바랬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우리는 휴양림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녀는 내 팔을 베고는 잠들었다.
 깨어날 때까지, 우리는 잠들었다.

댓글 4개:

  1.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답글삭제
  2. 작가님 제발 해피엔딩으로 좀 흑흑

    답글삭제
  3. 이 글의 짤을 보고 찾아보다 여기까지 오게 된 사람입니다.항상 저 짤을 보면서 그 속의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네요^^ 정말 잘 보고 갑니다!

    답글삭제
    답글
    1. 그저 2차창작이지만요;; 재미있게 보셨다니 기쁩니다!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