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6일 토요일

은하의 선물

 "여기는 폭스트롯 파이브. 육안으로 확인되었다."
 전초기지에서의 통신에, 두 사람은 긴 대기를 끝마치고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전초기지에서 보낸, 빈 우주공간을 비추는 영상에는 희미한 점 하나가 확실히 보이고 있었다. 남자는 헤드셋 마이크를 입가로 옮기며 말했다.
 "여기는 컨트롤 센터. 확인했다. 대응에 나서라."
 "여기는 에코 식스. 수신했다. 미사일 준비중."
 "여기는 줄루 투. 2차 요격 준비중."
 그 말에 맞춰 몇 개의 기지에서 차례대로 무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자는 터치 스크린을 조작하며 말했다.
 "휴스턴, 여기는 컨트롤 센터. 예상되는 코스를 지금 송신하겠다."
 "여기는 휴스턴. 지금 수신중이다. 예정된 메뉴얼대로 대응하라."
 "알겠다 휴스턴."
 지난 수 시간 동안의 대기가 거짓말처럼 두 사람은 바쁘게 각자 맡은 바 임무를 계속했다. 각 전초기지와 요격기지간의 통신은 계속됐다.
 "여기는 에코 식스. 목표가 사정거리 내에 돌입했다."
 "여기는 컨트롤 센터. 요격 개시를 승인한다."
 "알겠다 컨트롤 센터. 미사일 발사."
 수신과 동시에, 에코 식스 시점의 모니터에서 미사일이 발사되는 것이 보였다. 미사일은 노즐에서 밝은 불꽃을 발하며 화면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 사이에도 통신과 준비는 계속되었다.
 "여기는 폭스트롯 파이브. 목표가 요격지점을 통과했다."
 "카피, 폭스트롯 파이브. 에코 식스가 알린다. 미사일 목표 지점까지 ETA 3H."
 "잠깐은 쉴 시간이 생겼군."
 "그동안 쉴 수 있으면 쉬어봐."
 무전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짧은 잡담을 끝으로, 두 사람은 다시 업무로 돌아갔다. 정확히 세 시간하고도 2분이 지났다. 폭스트롯 파이브 전초기지 시점의 모니터에 밝은 광원이 생겼다 사라졌다.
 "여기는 폭스트롯 파이브. 미사일 착탄, 1차 요격 성공."
 "수신했다. 여기는 컨트롤 센터. 현재 2차 요격 지점과 목표를 확인하고 있다. 각 기지는 대기하라."
 남자의 대답과 동시에 여자는 터치 스크린 위의 손을 분주히 움직였다. 휴스턴에서 전해지는 정보와 컨트롤 센터에서 종합하는 각종 데이터를 토대로, 파편 중 무시해도 좋은 것과 2차 요격이 필요한 것을 골라낸다. 그리고 2차가 끝나고 필요하다면 3차가, 4차가 더욱 필요할 것이다. 남자는 헤드셋 마이크를 살짝 밀어내고 여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번에는 어때?"
 "말 걸지 마. 지금 바쁘니까."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지만 여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여자는 마이크를 향해 말했다.
 "여기는 컨트롤 센터. 줄루 투, 호텔 에잇, 킬로 원은 각자 하달된 목표를 향해 2차 요격을 개시하라."
 "카피. 줄루 투, 미사일 발사한다."
 "여기는 호텔 에잇. 지금 발사한다."
 "킬로 원, 지금 발사했다."
 "다들 요격시간도 말해줬으면 좋았을텐데."
 남자는 여자를 향해 중얼거렸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다. 줄루 투, ETA 4H."
 "호텔 에잇, 2H 30min."
 "킬로 원, 3 and Half."
 "어... 미안하다. 딱히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어."
 줄줄이 들려온 응답에 남자는 머쓱하다는 듯 마이크를 향해 말했고, 여자는 그걸 보며 키득거렸다. 지루한 시간이 다시 흘러갔다. 2차 요격 과정은 1차 요격보다는 두 사람 모두 할 일에 여유가 생겼다. 2시간 30분 후, 첫 번째 미사일이 착탄했다. 3차 요격은 필요 없어보였다. 다시 한 시간 조금 못 되어 두 번째 미사일이 요격했다. 이번에도 운이 좋았다. 삼십 분 정도 흘러 세 번째 미사일이 폭발했다.
 "이번에도 운이 좋나?"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네. 지구로 향하는 게 좀 있지만, 대기권에 전부 타버릴 거야. 운이 좋다면 지상의 누가 호두알만한 운석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흠, 누군가의 머리 위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잖아?"
 "그렇다고 저만한 운석에 쏘기에는 핵미사일이 아까워. 무시해도 좋은 사이즈야. 메뉴얼에도 그렇다고 되어있다고."
 "좋아. 그렇다면야."
 남자는 여자의 대답에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여기는 컨트롤 센터. 전 표적 요격 확인. 모든 기지는 통상 대비 태세로 돌아가라.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했다 컨트롤 센터."
 줄줄이 이어지는 인사와 함께 모든 교신이 끊겼다. 남자는 이제야 일에서 해방됐다는 느낌에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켰다. 여자는 결린 뒷목에 손을 대고 목을 꺾었다.
 "이걸로 오늘의 업무도 끝이군."
 "그래. 이제 좀 쉴 수 있겠어."
 둘은 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은 조금씩 떠올랐다. 둘은 의자를 걷어차며 방을 지나 통로를 향했다. 무중력 공간에서의 이동도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졌다. 둘은 식당으로 쓰이는 방으로 들어가 보관함을 열었다. 남자는 밀봉 포장된 식량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은 뭘로 할래?"
 "파스타로."
 "그럼 나도 그럴로 할까."
 "얼마 안 남았잖아. 다른 거 먹어. 좋아하는 거라고."
 "그 불어터진 냉동 파스타를 왜 좋아하는 거야?"
 "그러는 넌 왜 그걸 먹겠다고 하는 건데?"
 "그냥 끌렸어."
 "됐네요."
 여자는 남자의 손에서 파스타 포장을 채냈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미트볼 포장을 꺼냈다. 둘은 테이블에 앉아 벨트를 채웠다. 포장을 뜯고 식사를 꺼냈다. 무중력 공간에서 부스러기가 튀지 않도록 끈적거리는 소스 범벅이 된 식사가 공중에 둥둥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신기해."
 "뭐가 말이야?"
 목을 빼 날아가는 미트볼을 먹으며 남자는 물었다. 여자는 포크로 파스타를 입으로 옮겨 우물거리며 말했다.
 "운석들 말이야."
 "이제 와서 뭐가 신기하다고."
 "아니, 좀 들어봐."
 여자는 포크를 휘두르며 말했다. 그 탓에 포크 끝에서 소스가 조금 튀었다. 방울지며 공중을 떠다니는 소스를 남자는 받아냈다.
 "아, 미안."
 "괜찮아. 그래서 뭘 들어보라고?"
 어차피 식사를 하며 할 일은 딱히 없다. 남자는 이야기 해보라는 듯 티슈로 손을 닦으며 재촉했다.
 "저 운석들은 매일같이 지구를 향하잖아? 벌써 30년이나."
 "뭐야, 역사 강의부터 시작하는 거야?"
 "듣는다고 했잖아."
 "계속하세요, 선생님."
 "30년 전에 처음 발견 됐을 때는 큰 일이 났었지. 지구에 정면으로 운석이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전 세계는 놀랐고, 학자들과 군사 관련자들이 잔뜩 모여서 미사일을 쐈어. 요격은 다행히 성공리에 끝났지."
 여자의 말에 남자는 허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열 살 때였지. 아직도 그때가 기억나. 지구가 망한다고 파티를 벌이던 사람들은 씁쓸해했고, 이게 예언에 나온 멸망이라던 사람들은 자기들 기도 덕분에 멸망이 빗겨나갔다고 정신승리를 했고, 도대체 지구가 통째로 망한다고 하는 판국인데 어디서 뭘 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재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 아, 맞다. 옆집에 살던 녀석은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총각 딱지는 떼고 싶다고 맞은 편 집의 여자애랑 잤지. 제기랄, 나도 그랬어야 하는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중에 멸망하지 않은 뒤에 얼마나 자랑하던지."
 "지금 그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아니거든?"
 "미안. 딱히 성희롱 하려던 건 아니었어. 그보다 이 정도 이야기에 흥분할 나이는 지났잖아?"
 "이야기가 끊긴 것에 짜증내는 거야. 아무튼, 네 말대로 사람들은 각자 방식대로 기뻐했고. 그런데 운석이 또 날아왔지."
 "기뻐하던 인간들은 슬퍼했고, 슬퍼하던 인간들은 기뻐했지."
 "또 요격했고, 또 성공했고, 또 날아왔지. 그리고 또, 또, 또."
 "30년 동안 쉬지 않고 계속해서."
 "자연적으로 운석이 이렇게 날아올 리는 없으니까, 분명 외계에서 온 공격이라고 학자들이 발표했고."
 "사실 그렇잖아. 매일 밤마다 어떤 놈이 창문에 돌을 던지면 그건 내게 원한이 있는 어떤 빌어먹을 놈이 하는 짓이라고."
 "그래, 그 점은 동의해. 아무튼 그래서 인류는 외계에서의 공격에서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하나가 되었고."
 "감동적이지. 물론 그냥 하는 말이야. 뭐, 한 번이라도 요격이 실패하면 전 인류가 멸망한다는데 싫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지. 강대국들도 그 부담을 자기들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고 싶지도 않았고."
 "국경이나 인종 같은 문제도 서서히 사라졌지. 뭐, 완전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 내가 흑인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여기서 그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거야?"
 "모든 흑인은 인종 이야기가 나오면 이렇게 반응해줘야 하는 법이거든."
 "웃기시네. 네가 지금 하는 그거야말로 인종 차별이야."
 "빈곤 문제도 많이 나아졌지. 전 인류가 하나로 뭉친 김에 이런 것도 해결하자고 나섰으니까."
 "말 돌리기는."
 "이렇게 우주 궤도에 기지를 만들어서 핵미사일도 보관하고 있고, 요격도 하고 있고."
 "지구에서만 쏘아올리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15년 전에 그 사건도 있었고."
 "희생자들에게 명복을."
 "덕분에 지금은 지구에 핵미사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잖아. 강대국마다 수만발씩 쌓아놨던 걸 30년 동안 매일 쏴댔으니까. 계속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전부 궤도로 올려지고 있고."
 "이제는 달 기지도 있고. 지구가 멸망할 때를 대비해서 화성 기지도 건설중이고, 아예 다른 지구형 행성으로 이주할 계획도 있고. 도대체 어떤 빌어먹을 놈들이 운석을 쏴대는지 알아보겠다면서 우리의 휴스턴에서는 30년 동안 쌓인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궤도를 계산하고 있지. 그 때 처들어가거나, 아니면 운석 공격만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을 거라면서 우주군도 만들고 있지. 함선도 개발중이고. 그 날이 오면 화성에서 우주전함들이 출동해서는 다시는 우리 집 창문에 돌맹이를 던지지 못하게 만들어주겠지. 말 그대로 '화성침공' 아냐."
 "그 부분 말인데, 화성 쪽은 완전히 민간 부분으로만 개발한다던데?"
 "아, 그래? 그건 몰랐네."
 남자는 딱히 놀란 투도 없이 마지막 미트볼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래서?"
 "뭐가?"
 "신기하다면서. 뭐가 신기한 건지 모르겠어서."
 "아, 맞아. 그 이야기 중이었지."
 여자는 식량팩에 포함된 주스팩을 빨아마시고는 말했다.
 "신기하지 않아?"
 "그러니까 뭐가."
 "30년 전만 해도 국경도 있었고, 늘 전쟁이 있었고, 기아와 빈곤이 있었고, 차별 같은 문제도 있었어. 우린 모두 같은 인간이라고 말만 했을 뿐이지, 정말 그렇다는 걸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잖아. 적어도 같은 지구라는 행성에 산다는 사실조차도."
 "제법 괜찮은 연설이야."
 "그런데 운석이 날아오기 시작하면서, 우린 그걸 깨달았어. 말 그대로 전 인류가 하나가 되어 뭉쳤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그래서?"
 "어쩌면 운석은 일종의 계시나 유도 아닐까? 적어도 선물이거나."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네가 그랬었잖아. 누군가 우리 집 창문에다 계속 돌을 던져대고 있다고. 아무리 콩가루 집안이라도 그런 일이 계속되면 그 어떤 놈을 잡아서 족치기 위해서 힘을 모으지 않겠어? 게다가 하는 일이 돌을 던지는 게 아니라 불을 질러대는 건데. 저 운석 중 하나라도 박으면 정말 지구가 멸망할 테니까 정말 불지르는 거네."
 "그래서 운석에게 감사라도 하자는 거야? 하나라도 떨어지면 지구가 통째로 박살날텐데? 아니면 운석을 보내는 놈들에게?"
 "글쎄. 적어도 은하 저편에서 매일 같이 지구로, 그것도 비슷한 사이즈의 운석만을 정확히 보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기술력의 소유자라는 뜻 아닐까?  그런 존재가 뭐하러 면식도 없는 지구를 박살내겠다고 그러고 있겠어?"
 "인류의 기원은 사실 외계인이었다! 같은 소리까지 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뭐, 인류의 진화를 도와주고 발전을 도와주는 외계인이 있다든가. 그런 건 너무 낡았잖아. 옛날 SF에서나 나올법 하다고."
 "혹시나 싶어서 말하자면, 나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 좋아해."
 "맙소사. 60년 전 영화를 좋아하다니."
 "뭐,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이유를 생각해보고 그 결과를 따져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여자는 다 먹은 식량팩을 접으며 말했다.
 "왜, 누가 운석을 우리에게 쏘아보내는지랑, 그 결과 인류가 하나로 뭉친 거 말이야."
 "흠. 인류를 멸망시킬 위기가 인류를 뭉치게 할 기회가 됐다, 라."
 팔짱을 끼며 한 애매한 남자의 대답을 무시한 채, 여자는 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쓰레기 배출구에 식량팩을 넣어 사출한 뒤 말했다.
 "그럼 나 먼저 샤워하고 잘게. 교대 시간에 깨워줘."
 "그래."
 여자는 샤워 부스로 들어가 분사되는 물로 간단한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 수면실에 들어가 침대에 몸을 묶고는 잠들었다. 몇 시간이 지나고, 교대 시간이 되어 남자가 그녀를 깨웠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와 교대하고 상황실에 앉았다.
 시간이 지나고, 남자가 다시 상황실에 도착했다. 여자는 통로를 지나 오는 남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늦었잖아."
 "어차피 2시간 남았잖아. 그 때까지는 앉아서 대기하는 게 일인데, 조금 더 잘 수도 있지."
 "아."
 여자는 남자의 투덜거림에 자신의 손목시계와 모니터를 가리켰다. 남자는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둘을 번갈아 바라보고, 자신의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이런."
 "교대까지 아직도 한 달이나 남았는데, 어떻게 하게?"
 남자는 여자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벨트를 채우고 헤드셋을 머리에 꼈다.
 "어제 네가 했던 말 있잖아."
 "뭐 말이야? 아, 운석이 왜 날아오는지랑 그게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줬는지?"
 "그래. 네가 잔 다음 나름대로 생각해봤거든."
 "그거 흥미롭네. 네 결론은 어때?"
 자신을 돌아보는 여자의 말에 남자는 의지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누가 됐든지 우주에서 6개월씩 교대임무를 맡게 한 놈들에게 감사할 수는 없어."
 "동감이야."
 피식 웃으며 여자는 끄덕였다.
 "여기는 폭스트롯 파이브. 육안으로 확인되었다."
  전초기지에서의 통신에, 두 사람은 긴 대기를 끝마치고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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