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5일 화요일

Broken Flower(가제) - (1)

 특이한 창관이 있다고 상관에게 끌려가서 안내받은 그 방에는, 잊을 수 없는, 사고로 퇴역했던 옛 전우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재회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전장에서 서로의 목숨을 맡기고, 등 뒤를 지켜주던 여자가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보기 흉하지? 이렇게 되어서."
 그 말 그대로였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역시나 사라진 팔과 다리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사지 모두가, 사라져 있었다. 붕대로 절단면을 가렸지만, 그 밑의 깊은 화상은 모두 가릴 수 없었는지 붕대 위로 드러나있었다. 왼쪽 어깨 위에도, 역시나 흉터와 보기 흉한 화상. 가슴에도 있는 것을 보면, 더럽혀진 원피스 밑에도 그런 상처가 몇 개는 더 있을 거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투명했던 갈색 눈은 하나 뿐이었다. 오른쪽 눈이 있을 자리는 흉터를 가리려 했는지 붕대로 감겨있었다. 남은 눈도, 말 그대로 죽은 눈이었다. 광채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한 때는 그 눈을 보면서 마치 보석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총롱하게, 찬란하게 빛나는 호박과도 같다고. 그 위로 흘러내린 검은 머리카락 역시 윤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을 훑어보는 내 시선에, 그녀는 일그러진 미소를 더욱 강하게 하며 키득거렸다. 어쩌면 내 표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게 지금의 일이야. 이런 몸이지만, '구멍'의 평가만은 좋다구?"
 그 말에, 내 몸이 움찔, 하고 움직였다. 마치 정신을 잃고 있다가 찬물을 맞은 것처럼. 그런 내 반응에 그녀는 놀리듯 말했다.
 "...일단 입으로 해줄까? 그 다음에는 마음대로 해. 응, 손님? 옛 인연이야. 뭐든 해도 좋구 뭐든 해줄게."
 유혹하는 듯한, 일급 창부다운 말투. 귓가에 끈적하게 달라붙을 것 같은 달콤한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옛 인연'이라는 그 말.
 그 모든 것이, 눈 앞에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일깨우는 것만 같았다. 이 여자는 분명히 그녀고, 이렇게 되어버렸다고.
 낯익은 얼굴의 본 적 없는 태도에, 나는, 나는...
 "...어떻게 된 거야?"
 그저,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짓누르는 느낌을 느꼈다. 찌릿한, 하지만 둔한 통증 역시 현실을 알리고 있었다.
 내 대답이 기대하던 대답이 아니라는 듯, 그녀는 그저 하나 뿐인 죽은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내 손님이라는 것 뿐이야. 날 사러 온 거잖아?"
 다시, 그녀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아니면, 역시 이런 몸에는 흥분되지 않아? 이렇게 찢겨지고, 불타고 짓이겨진 남은 몸뚱이에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런 게 아니야!"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외쳐버렸다. 외친 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하지만 그녀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비웃음, 이라고 느꼈다.
 "하긴 그렇겠지. 일부러 이런 창관이라고 들어서 찾아온 거잖아?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 없어. 여기에서 있었던 일은 절대로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을 테니까. 뭐든 해도 좋다구."
 메마르고, 놀리는 듯한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일그러진 비웃음도 함께.
 "괜찮아, 알고 있어. 예전부터 너, 날 그런 눈으로 봤었잖아? 설마하니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몇 번이나 네가 밤마다 날 떠올리면서 화장실에 갔던 것도 전부 알고 있다고. 그런 풋내나는 네 기대를 지금이라면 들어줄 수 있어."
 이상하게도 부끄러움은 없었다. 충격도 없었다. 그저 굳어버린 나를 향해 그녀는 말했다. 마치 노래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때 날 상상하면서 무슨 일을 하고 싶었어? 그야 그때 네가 생각했던 내 몸은 아니겠지만, 뭐든 해줄게. 기분 좋을 거라는 건 보장할게. '구멍'의 평가는 좋다니까? 입도 그렇고. 지금까지 몇 명이나 되는 손님들이 모두 만족해서 돌아갔어. 몇 번이나 찾아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너도 그렇게 될지도 모르잖아? 예전에 날 상상하며 했던 만큼이나. 아차, 이런 이야기를 하면 풋내나는 우리 애송이는 더 어려우려나? 그러면서 창관은 어떻게 찾아왔는지 몰라."
 도발하는 거라고 느꼈다. 그녀는 발목 밑으로는 없는 양 다리를 매혹적으로 꼬면서 키득거렸다. 이런 면에서는, 그 시절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 점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몸을 돌리려 했다. 이 장소를 빠져나가려.
 "이번에도 도망치는 거야?"
 그런 내 등을,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췄다.
 "역시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풋내나는 애송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네. 이렇게 대놓고 차려줘도, 뭘 해도 좋다고 허락까지 해줘도 도망치고 말이야. 그럼 뭐 때문에 여길 왔던 건데? 모르는 누군가라면 팔과 다리가 없어도 안을 수 있지만, 아는 사람인 나만큼은 안을 수 없다는 거야? 아, 그런 건가? 첫사랑이 이렇게 변해버린 걸 견딜 수 없다, 뭐 그런 거?"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첫마디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변명은 얼마든지 있었다. 상관의 제안에 어쩔 수 없이 끌려왔다든가, 특이한 창관이라는 건 들었지만 이런 곳이라는 건 몰랐다든가, 그런. 하지만 아니었다. 그저, 하필이면 그녀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거다. 아마, 다른 여자였다면 아무 생각 없이 안았겠지.
 "대답해줘."
 애써 목소리를 메마르게 하려 했다. 스스로도 내가 이렇게 감정적일 줄은 몰랐으니까. 그녀가 보기에는 여전히 '풋내나는 애송이' 일지는 모르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 처음으로 생각해버렸다. 그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그 전쟁 이후 5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손님이 아니라면 관심 없어."
 멈춰있는 내게 그녀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말했다. 놀랄 정도로 감정이 없는, 차가운 말투였다.
 "이제 와서 옛날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도 없고, 서로 젊었을 때를 회상하면서 화기애애하게 떠들고 싶지도 않아. 나는 창관의 창녀고, 그 목적으로 온 게 아니라면 다른 손님을 받게 나가줬으면 좋겠어. 내 시간을 빼앗고 있잖아."
 "이미 대금은 냈어. 뭐든 해준다고 했잖아."
 몇 초 후, 겨우 내뱉은 그 말은 내 목을 스스로 조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자책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비록 쥐어짜는 것과 같은, 숨소리에 더 가까운 소리였다고 해도, 분명히 그녀의 귀에는 들렸을 테니까.
 "...하."
 잠시간의 침묵 후, 그녀는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부서진 웃음이다, 라고, 그저 멍하니 생각했다. 메마르고, 높고, 진심으로 우습다는 듯한, 부서진 웃음이었다.
 고개를 천장을 향해 치켜든 채 웃던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마치 배가 아프다는 듯. 팔다리가 없는, 몸통 뿐인 몸이 움찔거렸다. 마치 애벌레처럼. 스스로의 상상에 혐오감을 느끼기도 전에, 그녀는 너무 웃어서 흘러나온 눈물을 닦으려는 듯 팔을 움직였다. 팔꿈치 위로 밖에 남지 않은 왼팔을 움직여, 그녀는 붕대로 하나 뿐인 왼쪽 눈을 닦아냈다.
 "아... 그래, 확실히 그렇네. 어쨌든 돈은 받았으니까, 손님이지. 그리고 뭐든 해준다고 했으니까, 대답도 그거에 포함되겠고."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표정에,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일그러진 미소가 아니라, 그녀는 진심으로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그 사실이, 슬펐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대인유탄에 당했어."
 나는 멋대로, 그녀가 내게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나를 유혹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몇 번이나 말했던 것처럼 평온하고, 당연했다.
 몇 명이나 되는 '손님'이, 들었던 걸까.
 "그때, 분명 사고로 퇴역했잖아."
 애써 그런 생각을 지우며 나는 말했다. 내가 알기로, 그녀는 훈련 중의 사고로 퇴역했다. 그녀가 잠시 타 부대로 파견을 간 사이에 발생한 일이었기에 현장에는 없었지만, 퇴역을 할 정도니 부상이 심했을 거라는 사실은 짐작했지만, 적어도 대인유탄에 당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내가 알기로' 라는 전제가 붙지만.
 "그렇게 알려졌지. 극비임무였거든."
 그녀는 자신의 팔다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허락을 구하지 않고 그녀의 옆에 앉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까부터,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느꼈던 입 안의 텁텁함을 지우고 싶었다.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였다.
 "보통 그건 일을 치르고 피우지 않나?"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그러진 미소, 는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놀리는 웃음이었다. 조금이나마, 그 때의 기억이 날 것 같았다.
 "나도 줘."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담배를 한 개비 더 꺼내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가만히 가로저었다. 아무 말 없이, 그녀는 자신의 양 팔을 벌렸다. 팔뚝부위 위로만 남아있는 오른팔, 팔꿈치 위로만 남아있는 왼팔을.
 나는 망설였다. 정확히는, 머뭇거렸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나도 하지 못한 것에. 언제나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담배를 피워왔으니까. 내 옆에서.
 "아무리 네가 풋내난다고 해도 이제 와서 간접키스니 뭐니 하는 걸 신경쓰지는 않겠지?"
 그녀는 내 머뭇거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은 다음, 그녀의 입에 내가 물고 있던 담배를 물려줬다. 그녀 역시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고마워. 오랜만이거든."
 다시 담배를 내 입으로 옮기는 사이,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오랜만, 이었다. 그녀에게 감사를 듣는 것은.
 "야간에 후방으로 침투하는 임무였어."
 멍해진 나를 남겨둔 채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도중에 어떤 멍청한 자식 때문에 임무는 실패, 어떻게든 후퇴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펑ㅡ!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다음에는 진흙탕에 처박혀있더라고. 뭐, 결과는 보고 있다시피, 이렇지."
 다시 가볍게 양 팔을 벌려 자신의 몸을 보여주듯 하고, 그녀는 조금 긴 왼팔로 자신의 입술을 톡톡, 하고 건드렸다. 그녀를 바라봐야할지 말지 고민하던 나는 그저 그녀의 입에 다시 담배를 물려줬다.
 "피를 질질 흘리면서 아, 이건 죽겠구나, 하고 생각했지. 솔직히 아픈 것 때문에 그 외에는 아무 생각도 안 났어. 팔다리는 고깃조가리가 되었지, 온 몸은 불에 그을렸지. 예전에 팔다리를 잃으면 잃어버린 걸 찾으려고 두리번거리고 한다고 들었었는데, 그런 것도 없었어. 그냥, 죽을 거라면 빨리 죽고 싶었지. 그때 놈들에게 발견됐고."
 "아군?"
 "그럴 리가. 극비임무로 후방으로 침투 중이었는데. 우리를 추적하던 놈들이었지. 살려달라는 말도 안 나오고 그저 바닥에서 벌레처럼 기고 있었는데 발견됐어. 그리고, 뭐."
 내 멍청한 질문에 대답하던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전쟁터에 있으면 그야 여자에 굶주렸겠지. 내 팔다리도 부상도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나봐. 그대로 하더라고."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게 말해주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공포, 슬픔, 절망, 그런 것은 없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아무 감정 없는 말투였다.
 "당연하지만 팔다리가 너무 아파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어. 그래도 뭐가 좋은지 계속 하더라고. 아, 딱 하나는 기억나. 날 처음 범하던 녀석이 그러더라고, 어차피 죽을 거 기분이라도 좋게 해주겠다고. 고맙기도 하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녀에게 다시 담배를 건네는 것 뿐이었다. 연기를 토해내며 그녀는 말했다.
 "뭐, 그리고 버려졌지. 어차피 피를 너무 흘려서 죽을 테니까, 가져가기도 그랬겠지. 나도 죽을 줄 알았고. 하지만 정신을 차리니까 야전병원이더라고. 어떻게 누가 찾아서 끌고 왔나봐. 그리고 당연히 부상이 이러니까 퇴역했지. 하지만 전사도 아니고 전투로 부상도 아니고 '사고'였다보니까 보상금은 쥐꼬리만했어. 할 일이라고는, 이것 뿐이었고."
 나는 이제 필터까지 타들어간 꽁초를 밟아 껐다. 잠시 후, 겨우 입을 열었다.
 "...미"
 "그딴 말 하지 마. 동정 받고 싶어서 한 이야기가 아니야."
 하지만 내 말은, 싸늘한 그녀의 말에 끊겨버렸다.
 "그저 '손님' 이 '내가 해주길 원하니까' 한 것 뿐이야. 너한테 사과받아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이, 지금의 그녀와 내 거리를 딱 자르는 것만 같아서. 우리의 관계를, 완전히 정의내리는 것 같아서.
 "자, 이제 네 취향대로 즐거운 과거 이야기도 해줬어."
 그녀는 다시 일그러진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돌아봤다.
 "이제 다음엔 뭘 하고 싶어? 아, 생각해보니 동정받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동정하는 마음에 온기를 나눠주겠다며 범하는 플레이, 싫어하지 않아. 그래, 그쪽이 취향이야? 아니면 상관과 부하? 그것도 찾는 사람이 많아. 나랑 같은 처지인 애들도 있고. 아직 시간은 조금 남았거든. 원하면 한 번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
 그녀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왼팔로 내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붕대의 거친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시간은 간다고? 아직 용기가 부족해? 그럼 다음 번에 또 찾아주세요, 손님. 그 때도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죠. 그때까지 손님이 마음의 준비만 하고 오신다면."
 그녀의 왼팔이 내 턱을 지나, 내 뺨을 간질인다. 마치 손으로 내 얼굴을 훑는 것처럼.
 알고 있다. 그녀는 완전히 망가진 거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전우였다. 모르는 걸 가르쳐주는 스승이었다. 내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식사시간에 즐겁게 떠들 수 있는 친구였고, 전사자와 부상자를 옮기는, 전투가 끝난 석양이 지는 전장에서 서로의 담뱃불을 붙여주는 사이였다. 그래, 그녀가 말한 대로 첫 사랑이기도 했다. 화장실에서 몇 번이나 그녀를 상상하며, 그녀가 내 귓가에 사랑을 속삭이는 것을 꿈꾸며 욕구를 해소했다.
 그런 그녀는 더 이상 없다. 아마 그 작전과 지금, 이 순간 사이의, 그 5년 사이의 어딘가에서 죽은 것이다. 여기 있는 것은 껍데기.
 그런데도. 알고 있는데도.
 "...손님이라면, 뭐든지 해주는 거야?"
 "물론이지. 나는 상품이니까."
 내 말에 그녀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돈만 준다면, 얼마든 팔 수 있어."
 "그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조금은 의아해하는 걸 느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내가 널 사지."
 그저, 그 말과 함께 지갑을 열었다. 뒤집었다. 털어냈다. 지폐가 팔랑거리며 쏟아졌다.
 "뭐야, 연장이야?"
 몇 장인가의 지폐가 그녀 위에 떨어졌지만, 그녀는 그저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주울 수 없는 그녀에게 지폐를 뿌려버린 것도, 거만하게 지폐를 쏟아버린 것도, 그녀에게는 아무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나 프라이드가 강하던 그녀가.
 "아니. 연장이 아니야. 말 그대로, 널 살 거야. 가격을 말해."
 "..."
 내 말에, 그녀는 나를 바라봤다. 오랜만에 보는, 그리고 그녀가 죽은 뒤 처음 보는 멍한,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그 미소는 다시 한 번 일그러졌다. 아마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날 사겠다고?"
 "그래. 아예. 내 전용으로."
 "이 따위 푼돈으로는 어림도 없어."
 "나도 전 재산을 다 들고 다니지는 않아."
 그녀가 사라지고 5년, 그 사이 나는 진급했다. 그리 높은 지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동안 작지만 내 집을 사고 돈을 모으기에는 충분했다. 그녀의 '값'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지 못할 것도 없다.
 이 특이한 창관은, 그 특이한 취향 답게 손님이 적은지 그리 비싼 가격도 아니었으니까. 분명 그녀의 '값'도 '저렴할' 것이다.
 스스로의 생각에 혐오감을 느끼는 건, 그만 뒀다.
 그녀는 그저 나를 바라봤다. 죽은 눈으로. 텅 빈, 빛이 비추지 않는 눈으로.
 "그래서 뭘 하게?"
 나도 모르겠다.
 이미 부서진 그녀를 사는 것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동정이야?"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던 여자가, 내 전우가 이런 곳에서 이런 모습으로 몸을 파는 것에 동정하는 걸지도 모른다.
 "첫사랑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잊고 살았지만, 그 사이 몇 번인가 그녀를 수소문했었다. 그 끝에 도달한 그녀와 함께 살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어째서?"
 "몰라."
 나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망가진 그녀와 함께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만의 하나, 내가 그녀를 고칠 수 있다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비슷하게라도. 조금이라도. 그럴 수 있다면.
 그런 희망을, 아마 품고 있는 것이리라.
 그녀는 손을 움직였다. 발목 밑으로는 없는 양 다리를 움직여 바닥에 내려와, 길고 짧은 양 팔을 다리와 함께 어떻게든 움직여 바닥의 지폐를 긁어모았다. 나는 그녀를 도우려 했다. 내가 흩뿌렸다는 사실도 잊고.
 "하지 마. 이제 내 돈이야."
 그리고 그 말에, 나는 멈췄다.
 돈을 다 긁어모은 그녀는 나를 보며, 다시 한 번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놀리는 것 같은, 동정하는 것 같은, 불쌍한 것을 보는 미소로.
 아마, 내가 그녀를 보며 지었을 미소로.
 "분명 후회할 거야. 그래도 좋아?"
 "몰라."
 "그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게 큰 절을 했다. 잘린 다리와 양 팔로.
 "구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인님."
 아마 그건, 마지막 복수였겠지.
 나는 후회했다. 그녀의 말대로, 빠르게도, 그리고 분명하게도.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무슨 말을 듣고 싶었던 건지 역시,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메마른 입을 어떻게든 움직여 이렇게 말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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