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4일 화요일

Juvenile Mosaic - 그녀는 디멘션 인베이더 (1)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 이라는 표현이 있다.
 요즘은 좀 뜸해졌지만 소설이나 만화를 보면 자주 나오자. 아침에 소꿉친구가 깨우러 오고, 아니면 예쁜데다가 오빠를 잘 따르는 여동생이 존재하고, 아침 등교길에 접촉사고를 냈던 전학생이 자기 반에 오고, 자기 입으로는 평범하게 생겼다고 하면서 일러스트를 보면 남자 아이돌 뺨싸대기를 맛깔나게 후려갈기게 생겼고, 당연히 그렇게 생겼으니 그러는 거겠지만 아름다운 학생회장이니 학교의 아이돌이니 하는 미소녀들이 달려들고.
 지극히 평범한 좋아하시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나야말로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 어쩌고 하면서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해서 열렬히 떠들어야 할 것 같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렇기에 나는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이 아니라는 거다.
 아침에 깨우러 오는 소꿉친구도 존재한다.
 에쁜데다가 나를 잘 따르고, 심지어는 공략대상인 피가 이어지지 않은 여동생도 있다.
 아름다운 전학생은 물론이고 모두의 동경을 받는 미소녀 선배 학생회장도 이미 공략이 끝났고, 전교의 인기인인 학교의 아이돌도 물론 공략완료 CG 컴플리트 상태다. 덧붙이자면 지금까지 구한 다른 세계는 셀 수도 없고 그 스펙트럼도 다양해서 때로는 마왕이 침략하는 전통적인 세계도 구했고, 사악한 독재자가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그 세계도 구했고, 은하를 가로지르며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셀 수도 없는 업적이 내 등 뒤에서 은하수마냥 반짝거린다.
 그렇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이 아니다. 지극히 특별한 고등학생인 것이다.

 환상 속에서는.

 아니, 그렇다고 망상 100% 풀전개는 아니다. 진짜야. 거짓말은 안 했어. 단지 내가 직접 한 게 아니라 게임 속 내 분신인 캐릭터들이 했을 뿐이지. 하지만 내가 뒤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조종했으니 내가 한 거나 다름없잖아. 안 그래?
 나는 지극히 평범하지 않다.
 일반론으로 돌아가보자고. 요즘 세상에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 어쩌고 한다면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떠들고 농담 따먹기를 하고 학원에 가고 과외를 받고 가끔 TV를 보면 예쁜 아이돌에게 반하고 노래방에서는 랩을 하고 가끔은 친구들과 공을 차고 던지며 노는 리얼충 전개가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일 거 아냐. 통계를 내본 적은 없지만 내면 그럴 거라고.
 나는 다르다.
 생긴 것도 몸매도 그냥 그렇고, 애석하게 '그래도 이 정도면 잘 생긴 거 아냐?' 하는 자신감을 가지기에는 거울 속의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성적도 평범, 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등급은 10초 카운트다운 초반에서 진전이 없다. 솔직히 딱히 머리가 좋은 것 같지도 않다. 운동? 잘 할 것 같냐 100m를 사람이 어떻게 뛰어 그러다 죽는다고. 물론 친구도 없다. 아니지. 친구는 있다. 친구는 인터넷 친구가 있어요!
 여자친구도 있긴 하다. 인터넷 여자친구... 는 아니고 화면 속 여자친구이긴 하지만. 미미, 표기로는 mm으로 표기하는 애인데 나랑 벌써 3년차 절찬리 연애 진행중이다. 뭐, 정확히 따지면 내 분신인 준지(나랑 동갑. 맨 위에서 떠든 전형적인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 의 조건을 전부 만족시킴)랑 사귀고 있기는 하지만. 가끔씩 인터넷에서 '걔가 좋아하는 건 주인공이라고! 넌 그냥 스토커처럼 둘 사이를 지켜볼 뿐이야!' 하는 팩트폭력을 당하면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가가 뜨거워진다. 닥쳐. 알고 있다고. 팩트폭력 하지 마.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다고.
 아무튼, 그렇다는 거다.
 나는 평범하지 않다. 오타쿠에, 진심으로 미미쨩을 여자친구로 생각하는 시점에서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서의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 도 아닐 뿐더러, 자칭을 하기에는 여러모로 조건 미달이다. 그야 언젠가는 나에게도 정말 미소녀가 찾아오고 숨겨진 능력이 눈을 뜨고 세계를 지키는 싸움에 나서도 뭔가 멋진 나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건 행복회로를 돌린 결과물일 뿐이지. 스스로도 평생 이 모양일 거라는 걸 납득하고 있고, 딱히 불만도 없다. 외롭지 않냐고? 친구는 인터넷 친구가 있어요! 연애? 3D 리얼 여자사람이 뭐가 좋아. 미미쨩은 절대 날 배신하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데다 화장실도 안 간다고. 각종 이벤트는 망상으로 처리할 수 있다. 학교에서 뭐 그야 노골적인 따돌림도 당하고 놀림도 비웃음도 당하지만 이젠 신경도 안 쓴다. 화면만 바라보면 매일매일 즐거운 일상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늘 즐겁게 산다. 늘 새로워! 늘 즐거워! 역시 덕질이 최고야!
 그러니까.
 "우민아?"
 어느 날, 내 자리 옆에 찾아온 3D 리얼 여자사람, 그것도 미소녀가,
 "나 너 좋아하는데, 우리 사귀지 않을래?"
 하고 고백을 해봤자, 나는 당황하지 않는다.
 "벌칙게임이지?"
 그럴 게 뻔하다.
 "아냐."
 "아직 잠이 덜 깼나. 기왕 꿈에서 고백을 받을 거라면 미미쨩이 고백해주면 좋을 텐데."
 "꿈 아냐."
 고개를 가로젓던 그녀는 내 뺨으로 손을 내밀었다. 어, 하는 생각을 떠올리기도 전에 부드럽고 간질거리는 손가락이 내 뺨을 살짝 꼬집었다. 거기 여드름 있는데. 더러운데. 감동보다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보다도 그 생각부터 해버렸다.
 "좋아한다니까, 우민아. 나랑 사귀어줘."
 그런 내 생각이나 그리 쾌적하지는 않을 촉감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그녀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내 볼을 잡고 흔들었다. 무서울 정도의 현실감이 느껴진다. 그녀와 내 눈 사이의 거리는 두 뼘 정도. 그 맑고 투명한 눈동자에 가득 비추는 게 하필이면 내 모습이라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좋아. 그런 거군. 나는 납득했다.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늘 망상해왔다. 언젠가 이런 일이 나에게도 찾아오지 않을까. 살면서 한 번쯤은 모테기(인기 폭발 기간)가 온다고 하던데, 결국 이렇게 와버렸구나. 역시 나는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 따위가 아니었어.
 그렇기에, 호흡을 가다듬었다. 내가 각오를 굳힌 걸 느꼈는지, 그녀는 입은 웃고 있지만 조금은 긴장한 기색으로 나를 마주 바라봤다. 입술이 움찔거린다. 그녀의 쪽도, 내 쪽도. 입술과 입술과의 거리도 두 뼘 정도.
 "그러니까..."
 그래서,
 당연한 수순으로.
 "죄송합니다! 제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든지 할 테니까 한 번만 봐주세요!"
 나는 공포와 두려움에 몸을 떨며, 의자를 밀어젖히며, 그녀를 향해 바닥에 큰 절을 했다.
 이건 분명 무언가의 음모다. 내가 상상도 못 할 두려운 음모일 게 틀림 없다.
 이제 와서 말하자면, 솔직히 눈물까지 매단 채 울먹이고 있었다. 하마터면 지릴 뻔 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다.

 "그래서."
 내 바로 옆 자리에 앉은 그녀, 수아는 다리를 꼰 채, 한 손으로는 뺨을 받친 채라는 참으로 고혹적인 자세로 내 옆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녹아버릴 것 같은 달콤한 목소리로.
 "사귀어줄 거야?"
 나는 그런 수아의 시선과 목소리에 곁눈질로 바라봤다.
 수아는, 글쎄, 뭐라고 해야 할까. 예쁘다. 아름답다와 예쁘다의 경계선에 있다는 느낌이다. 그게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말로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등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은 언제나 윤기가 넘쳐서 꼭 흘러내리는 것만 같고, 새하얀 피부는 티끌 하나 없는 백옥 같다. 눈가는 끝부분이 살짝 올라가서 고양이 같은 느낌이랄까, 안 그래도 큰 눈망울이 더 커보인다고 해야 할까, 어른스러운 매력이 넘친다고 해야 할까. 속눈썹도 길다. 게다가 언제나 나를 볼 때면 짓는 저 장난스러운 눈웃음과 미소도 유혹하는 것만 같다.
 불량화소 하나 없는 뺨을 받치는, 작고 맵시있는 손목시계를 찬 가녀린 팔목. 안의 잘록한 허리 라인이 살짝 비춰 보이는 하얀 교복 블라우스. 길고 매끄러운, 각선미를 대놓고 자랑하는 것만 같은 커피색 스타킹 차림의 꼬고 있는 다리. 모든 것이 무서울 정도로 현실감이 넘치면서도, 만화 속의 미소녀 캐릭터들에게도 꿀리지 않는 매력을 뿜어낸다. 캐릭터로 치자면 여유 넘치는 흑발 누님계 캐릭터 같은 느낌이랄까. 누님은 아니지만.
 "허나 거절한다."
 그리고 나는 늘 하는 대답과 함께 내 손에 있는 휴대용 게임기의 액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이우민님이 가장 좋아하는 건 '나랑 사귀자' 고 하는 3D 빗치계 캐릭터에게 'No' 라고 대답해주는 거다."
 "빗치계라니 너무하네."
 "호감도도 쌓기 전에 사귀자는 말부터 꺼내는 캐릭터는 논외야."
 내 대답에 수아는 늘 그렇듯 꼬고 있는 다리를 바꾸며, 턱을 괴던 팔로 팔짱을 끼며 불만스럽다는 듯 입술을 삐쭉 내밀며 투덜거렸지만, 그것 역시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서 이제는 삐진 것도 아니고 상처받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게 되어버렸다.
 그에 비하면 우리 아마노 미미, 애칭 미미쨩은 얼마나 알기 쉬운가. 츤데레 아가씨 캐릭터답게 "흐, 흥! 따, 딱히 널 위해서 한 건 아니니까! 이 우민아! 착각하지마!" 같은 말을 하면 그냥 반대로 알아들으면 된다. 솔직히 진행 초기라 '우민' 하고 부르는 호칭이 꼭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서 그 점도 참 좋다. 그리고 후반부에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준지군이... 좋으니까..." 같은 말을 하면 그건 그냥 그대로 알아들으면 되고. 그에 비해 리얼 여자는 얼마나 귀찮아. 한숨을 쉬면서 25번째 공략을 이어나갔다.
 수군수군. 우리 둘의 대화에 다시 반 이곳저곳에서 우리 쪽을 보면서 소리 죽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두 달이나 됐는데도 이놈의 관심은 식을 줄을 모른다. 하기야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수아는 위에 말했듯 분명 예쁘고, 반에서만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학년 단위, 학교 단위로도 관심의 대상이니까. 듣기로는 벌써 몇 번이고 고백을 받았다고도 하고. 그런 스쿨 카스트 최상위권의 존재가 스쿨 카스트 내에 포함도 안 되는 나 같은 찌질한 찐따에게 고백을 하고, 이런 식으로 계속 말을 거니까 이야기거리가 되는 거겠지. 이해가 안 되니까.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애당초 내 시점에서는 호감도를 쌓기도 전에, 서로를 알아가게 되고 조금씩 상대가 남자로 보이게 되고, 이런저런 새콤달콤한 이벤트와 몇 번의 서툴고 에두른 고백을 한 끝에야 겨우 용기를 내 고백하고 사귀게 되는 전개가 아니라 대뜸 뜬금없이 고백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지만. 그런 게임 본 적도 없다고. 내 식견이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게임 속에서 수많은 세계를 구한 보답이라 생각하기에는 내 행복회로가 거기까지 지원하지는 않는다.
 "애당초 말이야."
 나는 화면 속의 미미쨩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어차피 수아가 듣고 있는 건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왜 나 같은 거한테 고백을 하는데? 그거냐? 나는 기억 못 하지만 예전에 내가 널... 뭐랄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위기에서 구해줬다든가, 아니면 작은 친절을 베풀었다든가?"
 흔한 전개지. 헌팅을 당해 곤란해하고 있는데 내가 아는 사이인 척 끼어들어서 방해했다든가(눈 앞에서 헌팅하는 꼴을 본 적도 없지만!), 갖고 싶지만 뽑지 못하고 있던 인형을 내가 뽑아줬다든가(나는 인형뽑기 같은 쿠소게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붐비는 매점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내가 멋지게 들어가 빵을 사줬다든가(물론 나는 매점에 간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음... 뭔,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 이유로 슬퍼하며 홀로 버스 정류장에서 눈물을 닦고 있는데 내가 손수건을 건네줬다든가(물론 그딴 거 들고 다닌 역사는 없지만!). 하지만 내 말에 수아는 예의 조금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그런 걸로 반하는 쉬운 애로 보여? 금사빠로 보여?"
 금사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건 그래. 나도 늘 그런 전개를 볼 때마다 생각했다고. 고작 그딴 걸로 반하나, 하고. 하기야 그런 전개를 겪는 주인공 놈들은 전부 TV에 나오는 남자 아이돌들 일렬로 세워놓고 뺨싸대기를 줄줄히 때려줄 정도로 잘 생겼으니까 가능하겠지만. 결국 얼굴이 모든 걸 정당화했겠지.
 "그런 뭔데?"
 그 외에 생각나는 전개라면 왕도적인 전개대로 어릴 때 소꿉친구였다든가, 어릴 때는 상냥했다든가, 전생의 인연이 있다든가, 뭐 그런 것들이지만 그것들도 아닌 것 같고. 내 질문에 수아는 대답했다.
 "그냥?"
 나는 세이브를 한 뒤 게임기에서 다시 수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아는 알아보기 힘든 연한 미소를 띤 채 싱글거리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감정을 담아 말했다.
 "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빠지는 거라고 해. 그냥 좋은 건데?"
 "...아, 그래."
 솔직히 마지막 순간에 지은 싱긋, 하는 미소에 타격을 좀 받았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대꾸했다. 만약 화면 속에서 이 외모랑 목소리로 같은 대사를 했다면 제법 마음이 울렸을 것 같은데. 내 퉁명스러운 대꾸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니면 안 든 건지 수아는 여전히 그 싱글거리는 미소를 지은 채 내 쪽으로 상체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그보다 늘 궁금했는데 말이야, 그때 왜 나한테 미안하다면서 사과했던 거야? 큰 절까지 하면서. 응?"
 "갑자기 스쿨 카스트 최상위권의 미소녀가 나 같은 녀석에게 좋아한다면서 고백한다면, 분명 거기에는 무슨 음모가 숨어있을 게 뻔하잖아. 단순히 놀려먹으려고 하는 거라면 차라리 괜찮아도, 막 정조를 위협당했다고 한다든가 자기 쪽에서 유혹하고 이상한 사진을 찍어놓고선 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다면 합의금을 내놓으라고 한다든가, 위자료를 청구한다든가, 그럴 거잖아."
 그래, 그럴 리가 없다고. 지금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분명 뭔가, 나는 모르는 뭔가 거대한 음모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애당초 이런 미소녀가 나한테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게 설령 게임이나 만화 속에 나오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이런 전개로 진행되면 유저나 독자들은 전부 '편의주의적 설정이네요', '현실성이 너무 없네요', '전개 시망' 같은 반응을 보이겠지.
 "흐응."
 내 대답에 수아는 알아들었다는 듯 비음을 섞은 소리를 냈다. 그런 거야, 하는 말을 해주고 다시 게임기로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다시 꼬고 있던 다리를 바꾸고 팔꿈치를 무릎 위에 둔 채 한 손으로 턱을 받치는, 그러면서 즐기는 것 같은 미소를 짓는 수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멈춰버렸다. 수아는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진심인데."
 "윽..."
 반사적으로 몸이, 뺨이 화끈거리는 게 느껴져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어때, 이제 좀 사귀고 싶은 생각이 들어?"
 "하, 하나도 안 들거든. 내 사랑은, 내 여자친구는 미미쨩 뿐이거든! 미미쨩은 내 신부거든!"
 반 저편에서 미미쨩이랜다, 하고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이제 와서 저런 말에 상처 받거나 부끄러워하기에는 내 경륜이 너무 쌓였거든.
 그러니까 이런 행동도 포함해서 역시 놀리려고 그러는 게 뻔하잖아. 이래서 3D 리얼 여자는. 하지만 한 번 달아오른 뺨은 금세 식어주지는 않았다. 아, 안 되겠다. 더 이상 이런 여자에게 또 놀아날 수는 없어. 나는 다시 게임기 속의, 나를 향해 웃어주는 미미쨩의 스탠딩 CG로 눈을 돌렸다. 버튼을 조작했다. 미미쨩(CV. 카미야 나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역시 미미쨩이야...
 "내가 스스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손가락이 멈췄다.
 "나 같은 걸 왜 좋아하는 거야?"
 내가 이어폰을 끼고 게임을 하든 뭘 하든 신경도 안 쓰고 여전히 옆에 앉은 채 싱글거리던 수아는 내 말에 눈을 깜빡거렸다.
 "방금도 대답했잖아?"
 "그러니까..."
 신경 끄기로 했는데. 그렇지만 눈을 깜빡이며 하는 수아의 천진한 목소리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폰을 뽑고, 게임기를 내려놓고, 몸을 돌려 수아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 눈동자를 정면으로.
 "난 덕후에,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머리도 나쁘고, 말도 잘 못하고, 친구도 없고, 운동도 못하고, 몸매도 이 모양이고, 유행도 전혀 모르고, 학교에서는 따돌림 당하고 비웃음 당하는데다, 집에 돈도 없고, 너랑 맞는 구석 같은 건 단 하나도 없고... 나 같은 걸 좋아해도 좋을 건 하나도 없다고. 그보다 너랑 안 어울려. 네 평판만 나빠질 거야. 자, 봐봐."
 양 팔을 벌리며 말을 늘어놓던 나는 턱끝으로 반의 아이들을 가리켰다. 그 동작에 수아의 시선이 따라가자, 그제야 아이들은 우리 쪽을 바라보며 속닥거리던 걸 멈추고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처음 내게 고백했을 때부터, 수아를 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소문난 인기 절정의 수아가 내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고백을 했다. 게다가 내 거절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내게 다가오고, 말을 걸고, 틈만 나면 좋아한다고 한다. 인기 있는, 잘 생긴, 머리 좋은, 잘 노는, 다른 의미로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 을 넘어서는 애들이 고백해도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라며 거절한다. 물론 그건 날 의미할 테고.
 처음에는 장난이라든가 취향 독특하다며 킥킥거리던 아이들도, 그런 나날이 벌써 두 달이나 계속되자 수아 자체를 험담하기 시작했다. 남자 취향이 독특하다는 건 웃어 넘길 수 있다. 이상한 애라든가, 사실은 저런 취미를 가지고 있는 거 아니냐든가, 내게 약점을 잡힌 거 아니냐는 소문은 차라리 낫다. 쉬운 여자, 헤픈 여자, 기타 등등의 저질스러운 이야기까지 들렸다. 물론 내 귀에 직접 들린 건 아니지만! 친구가 없거든! 지나가며 엿들은 거거든!
 그러니까, 그만큼 아이들 사이에서는 널리 퍼졌다는 뜻이다.
 스쿨 카스트, 라는 건 엄격하다. 카스트 제도처럼, 불가촉천민에게 다가가면 그 사람도 같은 취급을 당하게 되어버린다.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장난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둬."
 나는 나를 바라보며 비웃음으로 킥킥대는, 혹은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아이들의 시선에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수아를 바라봤다.
 "솔직히 내 쪽에도 민폐야."
 이렇게까지 말하면, 알아듣겠지.
 하지만 수아는 그저 눈을 깜빡였다.
 "흐음."
 여전히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지은 채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런데, 우민아."
 "왜."
 "그러는 넌 왜 미미쨩 같은 애를 좋아하는 거야?"
 "...엉?"
 수아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아니, 그야 지금까지 맨날 미미쨩 미미쨩 노래를 불렀으니 수아가 모를 리도 없긴 하지만...
내가 어벙하게 입을 벌린 채 눈만 꿈뻑이고 있는 사이, 수아는 여전히 호기심 어린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2D 평면에, 모니터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디자인도 평범하고, 다른 히로인에 비해서 생긴 것도 떨어지고, 솔직히 성우 연기도 그냥 그런데다가 츤데레랍시고 성격도 나쁘고 사람 무시하고 사실은 머리도 나쁜데다 몸치고 친구도 없잖아. 캐릭터 스토리도 제일 별로인데다 CG도 작붕 뿐이고 캐릭터송도 별로야. 제작진이 안티 아닐까 싶을 정도로. 피규어도 작품에서 혼자 악성 재고라 땡처리 되잖아. 그러니까 인기투표도 히로인 중에서 최하위고. 그런 애가 뭐가 그렇게 좋은 거야?"
 나는 책상을 쾅! 하고 내려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들린 큰 소리에 반 애들이 비웃음을 멈추고 내 쪽을 돌아보는 게 느껴졌지만 지금 그딴 거 신경 쓸 때냐!
 "지금 우리 미미쨩을 모욕한 거냐! 뒈지고 싶냐?! 설령 다른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내 사랑은 오로지 미미쨩 뿐이다! 당장 사과해! 취소해!"
 있는 힘껏 외치고 헉헉대자, 잠시 반은 고요에 쌓였다. 금방 비웃는 깔깔거림과 놀림으로 가득 찼지만. 하지만 그딴 거 내 알바 아니다. 감히... 감히 3D 빗치계 주제에 우리 미미쨩을 모욕해?! 내 분노는 지금 MAX다!
 하지만 수아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미안해. 취소할게."
 오히려 연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같은 거야."
 "..."
 그리고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됐다.
 "나도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어도 좋은 거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선택한 거고.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게 나쁘네, 저게 안 좋네, 그것도 하필이면 본인이 나 같은 거네 나 따위네 하고 흉보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고. 그건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나까지 모욕하는 말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우민이를 모욕하지 말아줘."
 그렇게 말하며, 수아는 싱긋 웃었다. 묘한 압력이 느껴지는, '싱긋' 이었다.
 "네 말대로, 뒈지기 싫으면."
 "..."
 따, 딱히 그 말에 쫀 건 아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서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느새 주위의 소리 따위는 전혀 들리지 않게 됐다. 그보다, 뭐랄까, 싱글거리며 웃는 수아의 미소와 방금 한 말 때문인지, 아무 생각도 안 든달까 뭔가 몸이 떠오르는 느낌이랄까...
 "그, 그보다 네가 미미쨩을 어떻게 알아?"
 겨우 그렇게 중얼거린 게 고작이었다.
 아니, 이성으로는 알고 있다. 내가 맨날 이야기했으니 알 수 밖에 없다는 걸. 하지만 방금 수아는 분명 디자인이니 뭐니 하는 겉으로만 보이는 부분을 넘어 캐릭터송, 땡처리 피규어, 인기투표 같은 '찾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도 언급했다. 설마 얘 진짜 이쪽 취미인가?
 내 질문에 수아는 무슨 새삼스러운 소리냐는 듯 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적인 걸. 그 정도는 알아야지."
 "연적이라니..."
 나도 모르게 따라 중얼거리다, 갑자기 든 감정에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바보 취급 하고 있잖아. 할 거잖아. 게임 속 캐릭터라고. 왜 그런 걸 좋아하냐고."
 뻔하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 부모님을 포함해서. 왜 그런 걸 좋아하냐면서. 어차피 만들어진 가짜,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인데. 정신과 상담을 권했을 때는 진심으로 화가 났지. 수아도 분명 같을 거다. 비웃을 거다. 비웃음 당할 거다.
 하지만 수아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어머, 그럴 리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상대인 걸. 그걸 바보 취급 할 리가 없지."
 그 말에, 다시 수아를 돌아봤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뭘 좋아하느냐는 각자 정하는 거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상대를 그냥 캐릭터라면서 무시하면, '그딴' 걸 좋아한다고 하면, 그걸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거고,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데다 '그딴' 상대랑 경쟁해야하는 나까지 바보가 되는 건데. 그러니까 나는 무시하지 않아. 제대로 경쟁할 가치가 있는 상대로서 보고 있고, 연적으로서 내가 알아야 할 것들도 찾아보고 있어. 가까운 시일 내에 직접 만나볼 생각이기도 하고. 제대로 알아야 싸워 이길 수 있을 테니까. 뭐, 그 쪽은 내가 안중에도 없겠지만."
 마지막 부분에는 아쉽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고, 수아는 다시 내 쪽으로 상체를 가까이 하며 말했다. 눈과 눈의 거리는, 한 뼘 정도.
 "제대로 연적으로서 상대해서, 제대로 네가 그 애 쪽이 아니라 날 선택하게 만들 거야. 질 생각은 없으니까. 그 애 쪽이 더 유리한 부분도 있겠지만, 예로 들어 언제든 변하지 않는다든가, 늘 예쁘다든가, 상상 속에서 뭐든지 할 수 있다든가, 뭐 그런 점도 있지만 내가 더 유리한 부분도 많잖아? 네가 그 애랑 했으면 좋겠다~ 하고 상상만 하는 걸 나는 정말로 해줄 수 있는 걸. 데이트도 해줄 수 있고, 도시락을 싸줄 수도 있고 그 외에도 뭐든 할 수 있어. 늘 변할 수 있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무엇보다 미미쨩은 준지군을 좋아하지만 나는 제대로 우민이를 좋아하는 걸. 이건 엄청 유리한 부분이라고 생각 안 해?"
 찡긋, 하고 놀리는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윙크를 하는 수아의 행동에, 얼굴이 빨개진 걸 느낄 수 있었다. 고개를 홱 돌리고는, 내 스스로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생각 안 해. 그보다 미미쨩은 제대로 준지가 아니라 날 좋아하는 걸. 맨날 우민, 우민 하고 불러주는 걸. 2차원을 무시하지 마. 망상 속에서는 이미 혼인신고서에 서로 지장까지 찍어뒀다고."
 "그렇다면 더더욱 제대로 미미쨩이랑 싸워야겠네. 같은 상대를 좋아하는 연적이니까. 그리고 너도, 내가 2차원을 무시하지 않는 것처럼 3차원을 무시하지 말라고?"
 "..."
 그렇게 말하는 수아의 표정에는 늘 나를 의심하게 만드는 장난기가 섞여 있었지만, 그 눈빛은 진지했다. 나를 바라보는 맑고 투명한 눈동자에, 얼굴이 빨개진 채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게 빤히 보이는 못생긴 놈이 보였다. 그렇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아는 달콤한, 하지만 당당한, 오싹거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3차원을 얕보지 마."
 그 말에, 그 박력에,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다시 그때처럼 의자를 밀어내며 죄송하다고 큰 절을 할 뻔 했다.
 두려웠으니까. 예상 외였으니까. 상상하던, 생각하던 것과 너무 달랐으니까.
 틀림 없다. 이번에야말로 확신할 수 있다.
 역시 이건, 뭔가의 음모다. 무시무시한 음모다.
 난생 처음 누군가가 인정해줬기에. 그 사실이 기쁘고, 가슴이 떨렸지만, 물론 그렇다고 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두려움과 함께 몰려오는 그 감정에, 솔직히, 울먹일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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