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2일 일요일

Juvenile Mosaic(가제) - Sugar & Spice & You! (1)

1. <Juvenile Mosaic(가제)>는 옴니버스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각 소제목이 하나의 이야기이며, 기본적으로 여러 작품이 모인 글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2. 다음 편이 어떤 글이 올라올지는 순전히 내키는대로입니다. 소제목의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고 싶으시다면 기다리세요.
3. 각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별개의 이야기로, 마음에 드는 소제목만 따로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간혹 연결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겠습니다.
4. 내키는대로 쓰는 이야기이기에 각 소제목끼리 충돌하거나 설정 오류가 발생해도 역시나 그냥 그러려니 하시면 되겠습니다.
5. 각 이야기는 소재, 분위기 등이 상이합니다. 내키는 대로 써서 그렇습니다. 이 역시 그냥 그러려니 하시면 되겠습니다.


 "소녀들은 무엇으로 되어있지? 설탕과 향신료와 온갖 멋진 것들로 만들어졌지."
(What are little girls made of? Sugar and spice And all that's nice.)
- <마더 구스> "아이들은 무엇으로 되어있지?" 중에서.



 ㅡ돌이켜보면, 그녀는 정말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비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새학기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왜 나한테 시키냐고..."
 투덜거리며 나는 교사 뒤편의 창고로 옮기던 망가진 의자를 내려놓았다. 지금까지 들고 오느라 무거웠으니까.
 별 것 아닌 일이긴 했다. 의자가 낡았는지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 순간 의자는 멋질 정도로 분해됐고, 앉으려던 나는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꼬리뼈부터 타고 오르는 통증에 새된 신음을 빽 지르고, 우당탕 소리와 함께 들린 그 소리에 모두 돌아보고, 이유 없는 쪽팔림에 당황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그 의자는 버리고 창고에서 새 의자 하나 가져오라고 시켰다. 사실 내 의자가 박살났으니 나한테 시키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뭐랄까, 수업 중에 쫓겨난 느낌이랄까 괜히 귀찮달까...
 "하아."
 왠지 모를 짜증에 나는 하늘을 올려봤다. 딱히 의미는 없었다.
 펜스로 된 학교 담벼락 바로 너머에는 벚꽃나무가 몇 그루나 심어져 있었다. 그 가지가 학교 안까지 침범해, 마치 봄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하늘에서는 벚꽃잎이 하늘하늘 흩날리고 있었다. 마치 눈이 내리는 것처럼.
 이런 날에는 놀러가고 싶구만.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교사의 그림자가 드리운 푸른 하늘에는 하얀 구름. 그 사이로 흩날리는 연분홍색 벚꽃잎. 그리고 소녀도 하나.
 ...소녀도 하나?
 멍하니 생각하던 나는 그 괴상한 존재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2층 창문을 넘어, 교사 쪽으로 뻗은 벚꽃 나뭇가지로 발길을 옮기려던 그녀를.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밑에서 들린 소리에 신경이 쏠린 건지, 내 쪽을 보면서 발을 내딛고 있었다. 물론 그 발은 허공을 향하고 있었고. 나는 그저 "어" 하는 맥빠지는 소리를 내며 입을 멍하니 벌릴 뿐이었다.
 위험하지 않나ㅡ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그녀는 하늘에서 떨어졌다.
 나는 그녀를 받기 위해, 반사적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몸이 반응했다.
 그리고.
 "아야야..."
 하늘에서 떨어진 그녀가, 바로 내 눈 앞에 있었다.
 겨우 어깨에 닿을 정도로 짧게 자른 머리카락이 가린 뒷머리를 문지르며, 그녀는 작은 신음을 흘렸다. 그 리듬감 있는 손길과 봄바람에 머리카락이 흔들거렸다. 미간을 찌푸린 찡그린 얼굴이었지만, 맑고 투명한 눈동자는 커다랗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오똑한 콧날. 신음을 흘리는 일그러진 입술은 립클로즈를 바른 건지 눈이 내린 것 같은 피부와는 다르게 연분홍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살짝 열린 입술 사이로 장인이 섬세하게 하나씩 설계하여 장식한 것 같은 고른 치열이 눈에 들어왔다.
 팔랑, 하고 흩날리는 벚꽃잎 하나가 그녀의 머리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한 순간 호흡도 고통도 잊을 정도였다.
 '한 순간', 이라는 건 금방 떠올랐다는 뜻이었지만.
 "끄윽..."
 짓눌린 신음은 되찾은 호흡과 함께 뒤늦게 흘러나왔다. 내 신음소리에 뒷머리를 문지르던 그녀는 깜짝 놀랐다는 듯 눈을 깜빡이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시 한 번 신음을 내뱉은 뒤에야, 그녀는 나를 깔고 뭉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 미안! 괜찮아?"
 물론 괜찮을리가 없잖아. 말이 되냐. 머릿속에 떠오른 그 생각은 목구멍까지 올라갔지만, 배를 깔고 뭉개고 있는 그녀의 무게에 그 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미소녀라면 분명 무게도 깃털 같을 것, 같았지만 역시 그건 말도 안 되겠지. 아무리 못해도 묵직한 쌀포대 하나가 나를 깔아뭉개는 느낌이다. 그것도 내 배 위에서. 무서울 정도의 현실감이구만.
 "어, 어디 다쳤어? 괜찮아?"
 그런 질문을 하기 전에 제발 부탁이니까 내 위에서 내려와줬으면 좋겠는데. 분명 그렇게 말하려 했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끄으윽" 이 가장 가까운 소리였다. 게다가 그녀가 안절부절 못하며 몸을 뒤틀 때마다 압박은 위치를 바꾸며 내 몸을 짓눌러댔다. 결국 나는 애써 힘으로 뻗어있는 손끝으로 내 배를 가리켰다. 물론 그녀는 그저 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손짓을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조금 더 힘을 줘서 손끝을 흔들었다. 뒤늦게 그녀는 내 손가락을 바라보고, 그 손끝이 가리키는 내 배를 바라봤다. 잠시 후, 두어 번 정도 손끝과 배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그녀는 알았다는 듯 다급히 외쳤다.
 "배 아픈 거야?!"
 "내려오라고!"
 겨우 온 힘을 짜내 그렇게 외쳤다.
 잠시 후. 그녀가 내 위에서 내려오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일어날 수 있었다. 곧장 허리에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지만. 허리를 문지르며 "아이고 허리야" 같은 신음을 내자,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재잘거렸다.
 "정말 미안해! 밑에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거든. 그래서 어쩌다보니... 그래도 네가 크게 다치지는 않아서 다행이야. 그보다 그렇게 조심성 없이 다니면 위험해! 목이라도 부러졌으면... 으아아. 그럼 나 살인자야? 아, 그보다 제발 선생님에게는 말하지 말아줘! 또 걸리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구!"
 "글쎄, 어차피 수업 중에 없는 걸 보면 바로 알아차리시지 않을까."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주절거림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내 말에 그녀는 말을 멈춘 채 잠시 눈을 깜빡이다, 다시 말했다.
 "아."
 "...생각도 못 했던 거야?"
 내 질문에 그녀는 순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지금까지 한 번도 들키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나 했더니, 그렇구나... 그런 거였어..."
 나는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모르게 지끈거리는 머리를 문지르는 사이, 그녀는 턱에 손을 댄 채 심각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기지개를 한 번 켠 후 말했다.
 "그보다 밑에 사람이 있으니 더 위험한 것 이전에, 2층에서 뛰어내리면 위험해. 네 쪽이야말로 조심하라고, 사당아."
 내 말에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노골적으로 수상한 사람을 본다는 눈빛으로 변했다. 나는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래?"
 "..."
 내가 마주 바라보자 양 팔로 어째서인지 가슴을 가리며, 그녀는 주춤거리며 내게서 몇 걸음 멀어졌다. 그렇게 양 팔로 가리니까 안 그래도 빈말로도 작다고는 할 수는 없을 가슴이 역으로 더 도드라진다. 시선 두기 힘들구만.
 그녀는 말했다.
 "누, 누구세요?"
 "엉?"
 "제, 제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나는 그녀의 의심 가득한 눈을 빤히 바라보다, 이윽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 학교에 네 이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게다가 우리, 같은 반이야."
 감사당.
 ...아니, 나 스스로도 장난 같다고 생각하고,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것 같지만, 진짜 그게 이름이라는 모양이다. 감사당.
 그녀의 존재를 모두가 아는 건, 물론 그 굉장히 독특한 이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나머지 두 가지 이유가 더 크다.
 하나는, 누구에게든 시선을 끌고, 보는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외모. 소문을 들으면서, 그리고 먼 발치에서 볼 때는 그렇지도 않다고 생각했지만, 나 역시 방금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당장 어디 아이돌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순진하면서도 아름다움을 겸비한 인형 같은 외모에 몸매 역시 잘 빠졌다. 말 그대로 '인형' 같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곁에 있으면 현실감이 사라지는 느낌까지 든다. 아까 그 무거운 현실을 느끼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녀가 악명 높은 '탈주범' 이기 때문이다.
 등교하지 않는 것도 다반사. 겨우 출석했다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교실에서 사라져있다. 제대로 하교하는 모습을 봤다는 이야기는 거의 도시전설급으로 드문, 그럴 리가 있냐며 부정당할 정도. 이쯤 되니 사실 목격하는 것 자체가 희귀동물을 목격했다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거의 그런 느낌으로 취급되고 있고. 예티라든가, 네시라든가, 뭐 그런 느낌으로.
 게다가 그렇게 학교를 떠난 그녀가 어디서 뭘 하는지 아는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다. 그녀의 외모에 반해 남자도 여자도 모두 그녀에게 말을 걸고 친해지려고 하지만, 어디 만날 수가 있어야 친해지든 말든 하지. 그리고 그녀 입장에서도 딱히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도 없었다. 특별히 사람을 꺼리는 성격은 아니고 늘 웃는다고는 들었지만,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느낌으로.
 과연. 그 소문 그대로군. 조금 더 부연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랬어? 난 너 기억 안 나는데?"
 하지만 내 말에도 사당은 눈을 가늘게 뜨며 여전히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야 학교에 제대로 다녀야 기억이 나지."
 "아, 알았다!"
 내 중얼거림에 사당은 손뼉을 짝! 하고 치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다시 숨이 멎을 것 같은 미소였다. 예전에 아이돌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화면 너머가 아닌 무대에서 아이돌들이 웃는 걸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고 해서 말이 되냐고 비웃었는데, 이해가 좀 됐다. 이건 뭐 거의 사람의 미소가 아닌 수준인데.
 그녀는 그런 환한 미소를 지은 채로 나를 삿대질 하며 말했다.
 "이게 그거지? 나야 나 사기!"
 "...아냐."
 뭐라고 해야 할까, 예상하던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적응하기 힘들 정도인데.
 아름다운 외모에 늘 학교를 땡땡이 치고 사람과 사귀는 걸 싫어한다고 해서 뭐라고 할까, 쿨뷰티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불량소녀라고 해야 할까, 적어도 둘 중 하나일 줄 알고 그렇게 망상했는데 얘는 그냥 머릿속이 꽃밭인 것 같다. 아니, 이름 그대로 사탕공장이라도 차려져 있는 건 아닐까. 멍청함... 과는 좀 다른 느낌이야.
 "흐음..."
 내 대답에도 그녀는 의심이 풀리지 않았다는 듯 커다란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는 나를 살펴봤다. 팔짱까지 끼고, 덕분에 가슴이 도드라진 상태로 상체를 이리저리 흔들며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이런 동작 하나까지 만화답구만. 나는 한심함을 느끼며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일단 이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보면 아는 거냐."
 한심함을 담은 내 말에, 어째서인지 사당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이래봬도 내가 사람 보는 눈썰미가 좀 있거든."
 "어련하시겠어."
 "아, 지금 안 믿었지? 방금 했던 말 취소야. 역시 엄청 이상한 사람이었어. 나야 나 사기꾼이야."
 금방 인상을 찌푸리고는 삐졌다는 듯 말하는 사당이. 정말 만화에서 튀어나온 게 아닐까. 슬슬 내 쪽이 피곤해진다. 나는 적당히 손을 홰홰 저어줬다.
 "하아, 그래 알았다 알았어."
 "생각해보니 정말 수상하네. 수업 시간인데 왜 교사 뒤편에 나와있어?"
 하지만 대화를 적당히 끝내고 싶다는 내 마음은 모르는지, 사당이는 다시 의심스럽다는 시선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면서 자기 추리에 자기가 감탄했다는 듯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응, 맞아. 진짜 그렇네." 하고 중얼거리고 있고.
 이쯤 되면 이 인형같은 외모도 방금 호흡조차 잊고 두근거렸던 것도 전부 옛날 이야기다. 내가 왜 그랬지. 나는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 오르는 한숨을 내뱉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말하려고 했다.
 그녀가 내 양 손을 힘껏 움켜쥐기 전까지만 해도.
 "응, 알았어!"
 이런 멍청한. 바로 방금 직전까지만 해도 '내가 왜 그랬지' 같은 생각을 했으면서.
 숨쉬는 것도 잊었다.
 내 양 손을 자신의 양 손으로 꼭 움켜쥔 채, 사당이는 나를 바라보며 밝고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처음으로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았다는 듯. 그 미소는 방금 전 내 위에 올라탔을 때 보여줬던 미소보다, 알았다며 기뻐했을 때의 미소보다, 훨씬, 훨씬 밝고 아름다워서... 정말, 빛이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경험상 이럴 때마다 이 여자애가 한심한 소리를 한다는 것은 호흡과 함께 한 박자 늦게 기억났다. 또다시.
 "너도 땡땡이 치려고 온 거구나?"
 "...아냐."
 깊은 한숨이 다시 한 번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당이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말 따위는 못 들었다는 듯,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쯧쯧, 하고 혀를 차며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어댔다. 마치 어린애에게 잘난척 하는 것처럼. 우와, 짜증나.
 "하지만 어설프네. 경험이 없는 초보자 티가 확 나. 일단 준비가 부족해. 그런 의자로는 저 펜스를 넘을 수 없다구."
 "그러는 너도 제대로 나무에 올라타지도 못 했잖아."
 왜 그때 나는 부정하는 대신 그딴 식으로 맞장구를 쳐준 걸까.
 사당이는 내 지적에 움찔, 하고 몸을 떨고는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는 눈을 슬쩍 돌렸다. 정말 어떻게 얘는 이렇게 동작 하나 하나가 만화 같은 걸까. 생긴 것도 그렇고.
 "으... 그, 그건 그러니까 갑자기 누가 있으니까 긴장했달까 들켰을까 두려웠달까... 그, 그래! 전부 초보자인 네 탓이야!"
 마지막 부분에서는 자신의 변명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당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그냥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나는 땡땡이를 치러 온 게 아니야. 그냥 부서진 의자 버리고 새 의자를 가지러 왔을 뿐이지. 그리고 너, 그렇게 계속 땡땡이만 치다가는 큰일 날걸. 애당초 수업 빼먹고 뭘 하려고 나가는 건데? PC방이라도 가?"
 "아니. 그런데를 왜 가?"
 투덜거림이 섞인 내 질문에, 사당이는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고개도 살짝 기울이고. 이젠 일일히 만화 같다고 감탄하기도 질린다.
 사당이는 양 손을 하늘로 뻗으며, 하늘을 올려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이렇게 좋은 봄날에, 그런 것보다 할 일이 얼마든지 있잖아!"
 그 행동과 말에, 나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봤다.
 푸른 하늘. 흩날리는 연분홍색의 봄의 비.
 덥지도, 춥지도 않은 푸근한 날씨.
 "이런 곳에 갇혀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구. 오늘은 인생에 딱 하루 밖에 없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당이의 눈동자는, 마치 빛이 내리는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뭘 해도 좋아. 마음이 내키는 거라면. 한가하게 공원을 산책해도 좋고, 아무 버스나 올라타서 가본 적 없는 종점까지 소풍을 떠나도 좋고, 멋진 옷을 구경하며 거리에서 춤을 추는 것도 좋고! 세상에 즐거운 건 얼마든지 있으니까! 내가 모르는, 해보지 않은 새로운 것들도 얼마든지 있고! 여기에 있기는 아까워!"
 그리고, 사당이는 그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며, 하늘을 향하던 손 하나를 내밀었다. 손바닥을 연 채, 다른 손은 여전히 하늘을 향한 채, 한쪽 발을 살짝 내 쪽으로 내민 채. 그 동작은 마치 같이 춤을 추자고 권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말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같이 가자!"
 그녀는 그렇게, 내게 춤을 권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다 멈췄다.
 한 순간 그녀의 말에 혹할 뻔했다. 그녀의 말은 충분히 달콤했고,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되는 걸까.
 아무 말 없이 수업을 빠져나가도... 모두가 공부하는데 이렇게 빠져나가도... 남들에게 뒤쳐지는 건 아닐까? 혼나는 건 아닐까?
 그런 두려움에, 내 손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에잇!"
 그리고 그런 내 손을 그녀는 붙잡았다. 마치 망설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사내아이가 왜 그렇게 겁이 많아! 가자!"
 "자, 잠깐 기다려봐! 나는 애당초 땡땡이 치러 온 게..."
 "이리 와봐. 음... 그래, 딱 거기! 그대로 등 기대고 서봐. 아, 잠깐만. 어깨 좀 빌릴게..."
 "그러니까...!"
 입은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몸은 저항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끌고 가는대로 펜스로 다가가, 펜스에 등을 기대고, 양 손을 모아 받침대를 만들며 서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내 손을 밟고, 내 어깨를 밟으며 나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아까 깔렸을 때는 쌀포대 같더니, 지금은 정말 깃털처럼 채 무게를 느끼지도 못했다.
 취할 것 같은 달콤한 향기가, 머릿속을 통째로 가득 채워버렸으니까.
 바로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짧은 머리카락. 인형 같은 얼굴. 부풀어오른 가슴과 열어젖힌 블레이저, 그 밑의 블라우스. 짧은 치마. 허벅지 부근을 조이며 다리를 감싸는 하얀 스타킹. 인형 같은 외모에 어울리는 메리 제인의 둥근 콧날. 그 모든 것을 보면서도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두리번 거리는 사이, 머리 위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이젠 네 차례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펜스 위에 걸터 앉은 채로, 사당이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은 채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하얀색이었다.
 물론 말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당이는 눈치도 못 챈 모양이었고.
 망설, 여야 했을 거다. 방금 전에도 그랬지만.
 그렇지만 나는 그저 내게 내민 그 손을 붙잡았다. 사당이는 마치 공범을 발견한 꼬맹이처럼 히쭉 웃었다. 이번에는 숨이 멎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길지 않은 사이에 너무 많이 봐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 대신, 이번에는 나도 같이 웃어줬다.
 에라 모르겠다.
 사당이가 나를 힘껏 당기고, 나도 사당이를 힘껏 당겼다. 발로는 펜스를 걷어찬다. 몸이 지면을 박차고 하늘로 떠오른다.
 그렇게, 난생 처음 나는 땡땡이를 쳤다.
 돌이켜보면, 그녀는 정말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비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그런데 얘는 의자 가지러 간 게 언제인데 아직도 안 오는 거야?"
 문뜩 떠올랐다는 듯 하는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빈 자리를 바라봤다.
 늘 비어있는 자리 말고, 의자가 없는 새로운 자리를.
 "설마하니 같이 땡땡이 친 건 아니겠지?"
 중얼거리는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금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이상 시간을 쓸 생각이 없었다.
 "자, 조용. 찾으러 또 보냈다가 실종되면 곤란하니까. 반장, 나중에 애 오면 교무실로 보내라. 알았지?"
 "네."
 선생님이 살짝 끼워넣은 농담에 아이들이 키득거리는 사이에도, 반장은 그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손바닥으로 안경을 살짝 고쳐 쓰면서. 다시 수업이 재개되고, 반장은 잊지 않도록 노트 구석에 그 사실을 메모하고는 다시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반장은 그 빈 자리를 돌아봤다. 두 개의 안경알 너머로 비추는 건, 텅 빈 두 자리.
 긴 검은 머리카락이 고개를 돌리는 그 동작에 찰랑거렸다.
 푸근한 봄바람이 교실 안에 불어왔다. 반장은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너머로 넘기다, 창 밖을 바라봤다.
 연분홍색의 벚꽃 위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경치를 바라본 것도 잠시. 반장은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 칠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온통 새카만 색 뿐인 칠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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