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4일 금요일

Juvenile Mosaic(쥬브나일 모자이크) - Sugar & Spice & You! (2)

 혼날 거라고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무지막지하게 혼났다.
 어쨌든 모범생으로 통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경고로 넘어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때문인지 더 혼났다. 그래도 오후 수업은 들으러 돌아왔는데 정상참작도 안 됐고. '의자 가져오라고 보냈더니 감히 배짱도 좋게 그대로 사라졌다' 면서 선생님은 교무실에 세워놓고 그것 밖에 없는 내용을 한참동안 갈구셨다. 집에도 연락했다고 하니까 분명 집에 돌아가면 또 무지막지하게 혼나겠지. 가장 억울한 부분은 상습범인 사당이 쪽은 오히려 '니가 그러면 그렇지' 식으로 대충 넘어갔다는 점이었다.
 "이래서 사람은 평소 이미지가 중요한 거야."
 사당이가 가슴을 쭉 내밀며 뿌듯하다는 듯, 놀리듯 재는 말투로 그렇게 말했을 때는 진심으로 욱 하고 올라왔다. 한 대 쥐어박아주고 싶을 정도로.
 울컥하는 마음을 담아두고 속으로만 투덜대며 걸음을 옮기자, 내 옆을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던 사당이는 빙그레 웃었다. 몇 번이나 봤듯, 눈부신 미소로.
 "그래도 재미있었지?"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 말에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솔직히, 재미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재미있다, 는 것보다는 해방감을 느꼈다는 쪽이 훨씬 정확하겠지만.
 나는 그때, 사당이의 손을 잡고 철장을 넘었을 때를 떠올렸다.
 쿵, 하고 바닥을 내딛었다. 내 뒤를 따라 뛰어내린 사당이는 잡아준다는 내 말에도 어딘지 재는 투로 "내가 더 많이 해봤거든?" 하고 마치 초보를 보는 듯한 눈으로 나를 내려봤지만, 역시나 엉덩방아를 콩, 하고 찧고는 아야야, 하며 인상을 찌푸린 채 치마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 어설픔에 피식거리는 내 눈빛에 살짝 물기 어린 분함을 담아서.
 고작 철장 하나 넘었을 뿐인데, 뭔가가 바뀐 느낌이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을 때는, 묘한 쾌감이 느껴지는 법이다. 금지된 것을 하는 것은 뭐라 해야 할까, 룰을 무시했다는 정복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혼나지 않을까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고 느꼈다. 자포자기와는 조금 달랐다. 그래도 괜찮다, 라고 느꼈다.
 스스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나는 모범생에 가까웠다. 성적도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입학 직후 치렀던 배치고사에서도 제법 좋은 점수를 냈다. 뭐, 그래놓고 수업도 제대로 듣는 일이 없는 사당이랑 같은 반이라는 것에서 배치고사라는 게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언제나 수업을 열심히 듣고, 하지 말라는 건 절대 하지 않고, 늘 말 잘 듣고 불만을 표하지 않는, 그런 착한 아이. 언제나 선생님에게 칭찬을 듣고, 정해진 길로만 걸으며 그 길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 해야 하는 일 외에는 하지 않는 아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생각해보면, 첫 일탈이었다.
 나쁜 아이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고작 이 정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를 묶고 있던 것들에서 풀려난 느낌이 들었다. 아니, 풀어낸 느낌이 들었다.
 "어때?"
 그리고 사당이는 마치 자신의 소중한 장난감을 자랑하는 아이 같은 미소를 지은 채, 양 팔을 벌리며 선언하듯 외쳤다.
 "이게 바로 자유의 맛이야!"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데."
 "이래서 초보자는."
 쯧쯧, 하고 혀를 차며 사당이는 거만한 미소를 지은 채 손가락을 가로저었다. 얘에게 바보취급 받다니, 하는 억울함이 느껴졌지만 왠지 사당이는 이러는 게 자연스럽다고 느꼈다. 이제 만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살아있는 모든 것은 자유를 갈망하기 마련이라고. 새장 속의 새들도 틈만 나면 탈출하려고 하잖아? 그럼 사람도 마땅히 그래야지. 지금 너는 새장에서 나온 거야. 자유롭게 날고 노래할 수 있다고."
 마치 설교하듯 사당이는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들어올린 채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제법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고작 그 10분을 본 것만으로도 사당이가 이런 말을 할 애는 아니라고 느꼈다. 분명 어디서 보고 베낀 거겠지.
 "그래서, 넌 뭘 할 생각인데?"
 그렇게 물어보자, 사당이는 고민하듯 팔짱을 낀 채 "끄응" 하는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글쎄...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까 공원에서 산책해도 좋을 것 같고. 윈도우 쇼핑도 좋고. 뭘 해도 좋다는 건 이런 면에서는 곤란하단 말이지. 뭘 해도 좋으니까 그 중에서 뭘 해야 할지 고민해야하니까. 음..."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며 고민하던 사당이는, 나를 돌아보며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웃었다.
 "그래, 오늘은 마침 파릇파릇한 신참도 있으니까, 네가 원하는 대로 할까?"
 "응?"
 "너도 기왕 이렇게 땡땡이를 친 거,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거 아냐. 괜찮아, 뭐든지 이 언니가 다 해줄 테니까 부담 없이 말해주렴."
 툭툭, 하고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뿌듯함과 자부심 넘치는 표정을 짓는 사당이. 나랑 같은 신입생인데다 나는 남자니까 굳이 따지자면 '누나' 겠지. 하지만 그런 태클을 걸기에는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사당이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나는 그냥 작게 한숨만 내쉬었다.
 "그렇게 말해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 걸."
 "뭐어?"
 내 대답에 사당이는 눈을 깜빡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반은 진심이었다. 그야 나라고 해서 노는 일 없이 늘 공부만 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공부 열심히 하고 숙제 하고 예습 복습 하고 시간 나면 적당히 TV나 보고 게임이나 하는 정말 평범하게 재미없는 사람이거든. 그래서인지 입학하고 시간도 꽤 지났지만 그다지 친구도 없고. 그러다보니 '학교 땡땡이를 치면 뭘 하고 싶냐' 하고 내게 물어본다면 딱히 없다.
 "애당초 뭔가 하고 싶어서 나왔다기보다는 널 따라 나온 거니까. 게다가 네 말대로라면 아직 신참인 나는 뭘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거잖아. 숙련자인 네가 가르쳐주지?"
 뭐, 마지막 부분은 놀리자고 끼워넣은 말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라고 평생 학교에서만 살았을 리 없으니 '뭘 해야 할지' 모르진 않는다. 글쎄, 이럴 때 땡땡이를 치면 PC방을 가거나 당구장에 간다거나 한다고 하던데. 뭐 그거야 남자애들 이야기긴 하지만, 솔직히 그렇기에 여자애들은, 특히 사당이는 과연 매일 땡땡이를 치고 뭘 하고 노는 건지 궁금했다. 이런 말에 넘어간다면 말이지만.
 "으음... 듣고 보니 확실히..."
 그리고 사당이는 역시나, 내 말에 정곡을 찔렸다는 듯 한 방 먹은 표정을 짓더니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얘 바보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지만.
 "후후후...! 이거 어려운 문제군... 신참에게 자유의 맛을 알게 해줄 수 있는 일... 이라고 하면 역시 그것 밖에 없지!"
 고민하던 사당이는 번뜩 떠올랐다는 듯 과장되게 말했다. 아무래도 뭔가 떠올리긴 한 모양이었다. 나는 도대체 사당이가 무슨 답을 내놓을지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사당이는 내게 다가왔다. 코와 코가 마주할 정도로. 한 걸음 물러나며 숨을 들이쉬었다.
 가까이에서 본 사당이의 눈은 어딘지 고양이 같은 인상을 줬다. 하지만 도도한 고양이가 아니라, 장난치기 좋아하는 아직 어린 새끼 고양이 같은. 눈썹이 무지개 같은 곡선을 그리고, 눈매 끝이 살짝 올라간 눈이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반짝인다. 매끄러운, 촉촉하게 젖어있는 입술이 뭔가를 원하듯 보였다.
 덥썩. 그리고 사당이는 내 손을 붙잡았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쿵쿵 울려대던 가슴이 크게 두근! 하고 울렸다. 사당이는 내 손을 맞잡은 채, 마치 춤추는 것처럼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를 잡아끌며 활기차게 외쳤다.
 "우선, 움직여보는 거야!"
 그거 퍽이나 대단한 결론이네. 그렇게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은 아무 말 하지 말라고 그런 나를 막았다. 나는 그렇게, 나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는 사당이에게 이끌려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솔직히, 뭔가 대단한 걸 한 건 아니었다.
 그저 동네를 쏘아 다니며 여기저기 구경하고 다녔을 뿐.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고,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벤치에 앉아 즐겁게 떠드는 사당이의 이야기를 적당히 맞장구 치면서 들어주고, 이른 시간이라 동네 꼬맹이들도 없는 텅 빈 놀이터에서 사당이가 깔깔거리며 그네를 타고 철봉에 매달리는 걸 '얘는 역시 정신연령이 초등학생 수준 아닐까' 의심하며 구경하고, 점심시간이 되어서는 상점가에 가서 옷가게를 구경하는 사당이를 따라다니고, 분식집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뭐 그런 식으로.
 "빨리 와!"
 어느새 내 앞을 폴짝폴짝 뛰어가다 입에 손까지 댄 채 나를 돌아보며 외치는 사당이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생각했다.
 얘는 정말 뭐든지 재미있어하는구나. 뭐든지 즐기는구나.
 그것만은 알 수 있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까지 재미있구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평소에는 하지 않는, 할 생각도 하지 않는 일들을 사당이에게 이끌려 했을 뿐. 특별한 거라고는 남들은 전부 학교에 있을 시간에 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여기저기 쏘아다니며 사당이가 하나 하나 사소한 것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열심히 설명해도 흥미는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당이를 바라보는 건 재미있었다.
 재미있어하고 즐기며, 무엇을 봐도, 너무나도 당연하고 흔한 것들뿐인데. 사당이 본인도 분명 늘 봐왔던 것일 텐데도 눈을 반짝거리며 행복해하는 사당이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게, 재미있었다. 열심히, 자신이 얼마나 그것들에서 재미를 느꼈고, 그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들인지 열심히 설명하는 사당이에게 흥미가 갔다.
 마치 데이트 같네. 피식거리며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가, 스스로의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어느새 인도 가운데의, 일렬로 늘어선 노란색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을 양 팔을 벌린 채 마치 평행봉이라도 하듯 뒤뚱거리고 있는 사당이의 등을 바라봤다.
 이제까지 살면서 데이트 같은 걸 해본 기억은 없었다. 중학교 시절 아이들이 전부 거기에 환상을 가지는 걸 보면서도 '그런 쓸데없는' 하고 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아마 그래서겠지. 해본 적 없는 환상을 나도 그 탓에 가지게 됐고, 듣던 거랑 비슷하다는 것에 착각한 것뿐이다.
 그렇지만...
 즐거운 표정으로 웃는 사당이의 옆얼굴을 보며 약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살며시 내리 눌렀다.
 분명 바보 같고 같이 있으면 한숨만 나오는 애이긴 하지만, 그런 사당이와 함께 있는 것은 이상하게도 짜증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외모 때문일까. 확실히 사당이는, 아까도 느꼈지만, 한 순간 호흡을 잊을 정도로 예쁘다. 귀여운 것에 가까운 것 같지만. 제법 예쁜 애들이 많은 우리 학교에서도 독보적이다. 그런 탓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누구든 에쁜 사람에게는 호감이 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자유로움을 동경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새장 속에 사는 걸 당연히 생각하는 나니까. 그런 내게 새장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밖으로 나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사당이는 눈이 부셨다. 평생을 나가본 적 없는 집고양이 같은 나와는 다르게 모든 것을 즐기며 속박되는 것 없이 세상을 돌아다니는 들고양이로 보였다.
 지금까지 새장 속에 갇혀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던 내게, 사당이는 그 사실을 알려줬다. 뭐... 그렇다고 해서 얘처럼 매일같이 학교를 빠져나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래도 좋지 않을까, 얘랑 같이 나가면 오늘처럼 즐겁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한참동안 선생님에게 먼지도 안 나올 정도로 털린 끝에 돌아온 교실은 이미 청소도 끝나고 아무도 없었다. 내 자리와 사당이 자리에 가방이 하나씩 있었을 뿐. 창밖으로 봄의 늦은 석양이 천천히 저물고 있었다.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종종걸음으로 자신의 자리에 가 가방을 낚아챈 사당이는, 나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고는 환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오늘 너랑 같이 놀아서 즐거웠어! 그럼 내일 또 보자!"
 그 말에 내 가슴이 다시 한 번 둔하게 두근거렸다는 걸, 사당이는 분명 모르겠지. 저쪽은 신경도 안 쓸 테니까. 그리고 나 자신도 아직 잘 모르겠다. 이 두근거림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당이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오작동인지, 아니면 내 안에서 뭔가가 싹을 트는 건지.
 그러고 보면 사당이가 누군가와 함께 땡땡이를 친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당이는 교내에서는 '전설의 탈주범', '도시전설'으로 통하는, 거의 예티나 네스 수준으로 드문 존재다. 사당이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조차 들어본 기억이 딱히 없었다. 그런 사당이가 나와 함께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다. 데이트로 착각할 정도로.
 사당이가 이러는 건 나 뿐이다ㅡ그 생각에 가슴이 다시 울렸다.
 하지만 아니다. 그럴 리가 없지. 상대는 그 사당이다. 나 같은 것에게 그럴 리가 없다. 사춘기 남학생 특유의 과대망상일 뿐이다.
 그렇지만... 사당이의 이런 면을 아는 것도, 나 뿐이겠지. 교내에서 사당이는 그저 미스테리한 존재일 뿐이니까.
 그저 우연이었겠지만, 그래도, 처음 만났다고 같이 땡땡이를 치자고 권유하고, 같이 돌아다녔다는 건...
 어쩌면 나는 특별하다는 것 아닐까?
 "...그래, 내일 보자."
 나는 사당이가 폴짝거리며 교실을 나간 뒤에야,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일 학교에 오는 것이 기대되는 건 오랜만이었다.

 "안녕."
 그리고 다음날. 현관에서 마주친 사당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자, 사당이는 나를 돌아봤다. 사당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 덕이려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양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누구세요?"
 "너는 조류냐."
 기억력의 유효시간이 하루 밖에 안 되다니. 그때 새장 운운 하더니 머리가 딱 새 수준이다. 특별 좋아하시네. 밤새 고민하며 그럴 리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았으면 타격이 꽤 클 뻔 했다. 그럼 그렇지.
 내 지적에 사당이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듯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턱에 손을 대고 과장스럽게 고민하는 척을 하더니, 마침내 기억났다는 듯 손뼉을 짝! 하고 치며 말했다. 변함없이 행동 하나하나가 만화 같다.
 "아! 신참이구나!"
 "그걸로 기억하기냐."
 누가 신참이야.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내 대꾸는 신경도 안 쓰고, 사당이는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반갑다는 듯 내 양 손을 맞잡고 붕붕 흔들어댔다. 진심으로 환하게 웃는 미소가 역시 눈부시다. 사당이는 내 팔을 놔주고 물었다.
 "집에 들어가서 혼날 거라고 걱정하더니, 많이 혼났어?"
 "뭐, 그야 그렇지."
 그렇게 화내시는 어머니는 정말 오랜만에 봤다. 이제 고등학생이라 그런지 손을 대시진 않았지만 어릴 때처럼 회초리로 때리실 것만 같은 분위기였고. 하지만 거기까지 이야기 할 필요는 없겠지. 솔직히 좀 부끄럽기도 하고. 몸을 돌려 교실로 걸어가자, 사당이도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사당이는 나를 올려보며 물었다.
 "오늘도 같이 갈 거야?"
 "너 어제 혼나고 오늘도 땡땡이치게?"
 그야 얘가 그럼 그렇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단하네. 놀람보다는 감탄을 담아 바라보자, 사당이는 '흐흥' 하는 콧소리를 내며 가슴을 내밀었다. 뿌듯하다는 듯. 칭찬하는 거 아니거든.
 "자유란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니야. 자신의 손으로 쟁취하는 것이지!"
 "그거 참 좋은 말이네."
 "그치, 그치? 그러니까 나는 오늘도 이 손으로 내 자유를 쟁취하고 말 거야! 그러니까..."
 "그건 안 되겠는데."
 그 순간 들린 목소리에 서로를 바라보던 우리는 동시에 정면을 바라봤다. 이상한 목소리가 대화에 끼어들었으니까. 그녀는 마치 우리를 가로막겠다는 듯, 팔짱을 낀 채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 당당하게 서있었다.
 우리 반 반장이었다.
 박하향.
 자연스럽게 풀어둔 긴 생머리. 나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훤칠한 키에 어울리는 어른스러운 몸매. 이지적인 기색을 더욱 강하게 하는 안경과 그 밑의 날카로운 안광. 성격이 외모로도 드러나는 건지 날이 서있는 느낌이랄까, 날카로운 인상을 준다. 차가운 인상 덕분에 반에서도 '미녀' 로는 뽑을지언정 '사귀고 싶다' 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어본 적은 없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손끝으로 귀 앞에서 안경을 추켜올리며 하는 하향이의 말에 움찔, 하고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표정에서 너무 드러났나.
 성적은 지극히 우수. 신입생 배치고사 만점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품행은 물론 단정. 중학생 때는 학생회와 선도부원으로 3년 내내 활동했다고 들었다. 선생님들의 부탁이나 말을 어기는 일도 전혀 없는, 말 그대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우등생이자 모범생. 나 역시 그런 걸 자처하고 있지만 하향이에 비교할 수는 없다.
 하향이는 움츠러든 나는 무시하고 사당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날카로운 안광 때문인지 사당이가 움찔, 하면서 내게 팔짱을 꼈다. 그 탓에 나 역시 다시 움찔, 하고 몸을 떨었고. 볼이 빨개지지는 않았을지 모르겠는데. 얘는 관심도 없다는 듯 까먹었으면서 왜 또 이런 착각을 하게 만드는 거야.
 "감사당. 어제도 땡땡이를 쳤으면서 오늘도 치겠다고?"
 하향이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차가움 탓인지 날카로움 탓인지 으르렁 거리는 것 같았다. 마치 도베르만이나 날카로운 인상의 사냥개처럼. 그리고 내 뒤로 몸을 숨기려는 듯 쭈뼛거리는 사당이는 개에게 쫓기는 고양이 같았다.
 "그, 자, 자유는 인간이 누려야 할..."
 "학교를 멋대로 나가는 건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야."
 찌릿, 하는 안광에 내게 하던 것처럼 궤변을 늘어놓으려던 사당이는 즉시 입을 닫았다.
 이렇게 나란히 놓고 보니, 가운데 끼어서 생각해보니, 생긴 것도 태도도 정 반대구만.
 단발의 사당이. 장발의 하향이. 어딘지 바보같지만 편안한 분위기의 사당이와 어른스럽고 냉철한, 그래서 날카로운 느낌의 하향이. 수업 빠지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유로운 영혼의 사당이와 선생님의 말을 법으로 여기며 규율에 충실한 하향이. 이 정도로 상극이다보니 오히려 재미있을 정도다.
 하향이는 나랑 사당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단호한 자신의 태도를 보여준다는 듯 힘있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반장으로서, 나는 선생님에게 너희 둘이 다시는 수업을 빠지지 못하도록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어. 상습범인 사당이는 물론이고, 얘에게 물들어가는 다호 너도. 앞으로는 내가 너희 둘을 계속 따라다니면서 지켜볼 거야."
 "누, 누구 맘대로..."
 "선생님 말씀이야."
 기어들어가듯 반론하려던 사당이의 말은 다시금 하향이의 선포에 가로막혔다. 하향이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
 "이 내가 지켜보는 이상, 너희들에게 더 이상 자유란 없어!"
 왜일까.
 내 본성 역시 그쪽이겠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이유 없이 울컥함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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