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0일 토요일

화이트데이의 백설.

원본 : http://lightnovel.kr/freewrite/381570
작성 : 2012년 3월 14일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완전히 굳어있었다.
백설이가 나에게 사탕을 주는 건 굳이 놀랄 필요도 없다. 오늘은 화이트데이, 백설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나랑 같이 놀았던 옆집의 소꿉친구, 지금도 매년 의리삼아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에는 서로 ‘어차피 아무한테도 못 받았지? 받아.’ 하면서 주고받는 사이다. 그러니까 그 정도에 놀랄 일은 없다.
놀란 건 백설이가 사탕을 건네주면서, 예상치도 못한 행동을 했다는 거다.
키스, 였다. 뽀뽀랑은 다르다. 뽀뽀랑은. 그건 정말 키스였다. 연인들의 키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첫 키스를 빼앗긴 것 때문에 굳은 게 첫 번째 이유다.
하지만 완전히 굳어버린 건, 키스 때문인지 입 속에서 느껴지는 단 맛과 박하향 때문만이 아니라, 그 뒤에 백설이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내 열쇠, 너한테 줄게.”
“……뭐?”
겨우 거기까지는 말할 수 있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백설이가 나에게 건넨 열쇠를 바라봤다. 집 열쇠는 아니다. 그런 건 비상시를 대비해서 예비키를 미리 주고받았으니까.
글쎄, 뭐라고 해야 하지, 열쇠의 생김새를 묘사하는 건 잘 못하겠으니까 느낌으로 간단히 말하면…….
첩보영화나 SF영화 같은 데에 나오는, 굉장히 사이버틱하고 앨레강스하며 디지털적인, 그런 열쇠였다.
백설이는 내 표정을 보고는 아, 하는 느낌으로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그래, 이걸 말해줘야겠구나.”
웃으면서, 말했다.
“나, 사실은 안드로이드야.”
 
 
“……뭐?”
순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당연하지 않아? 옆집에 사는, 지금까지 매일 얼굴을 마주보고 자란 소꿉친구 여자애가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내 열쇠, 너한테 줄게. 나, 사실은 안드로이드야.’ 라고 말했는데 ‘아, 그래?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놈이 있으면 뇌를 좀 열어보고 싶다.
“그, 부끄럽네……. 헤헤헤. 고백할 때는 꼭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말했는데…….”
백설이는 내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발굽으로 땅을 비비며 몸을 꼬았다.
“잠깐, 잠깐. 고백? 내 열쇠? 안드로이드?”
제정신을 차리고 그렇게 물어보는 것조차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겨우 물어본 내 말에, 백설이는 볼을 빨갛게 물들이면서도 말했다.
“응……. 맞아. 고백, 이야.”
우와, 좀 귀엽다. 아니 꽤나 귀엽다.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사실 백설이는 꽤나 남자들을 두근거리게 할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거든. 무슨 만화영화의 여자 주인공이 그대로 모니터를 빠져나와 현실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진짜?”
그래서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사실 나는 꽤나 여자들을 실망시킬 만 한 그저 그런 외모를 가지고 있거든. 졸업 앨범을 꺼내고 눈 감고 대충 찍으면 그게 내 얼굴 정도다. 좋게 말하면 평범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그냥 그렇다.
그러니까 반 최고, 아니 학교 최고, 아니 동네 최고의 미소녀 소꿉친구께서 갑자기 무슨 약을 하셨는지 나에게 고백을 하면 믿을 수가 없단 말이죠. 우리가 같이 다니기만 해도 주위에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봤다는 표정을 짓는데.
“응. 진짜. 예전부터 꼭 말하고 싶었지만, 허가나 그런 게 필요해서.”
백설이는 배시시 웃었다. 너무나도 해맑은 미소였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줬다.
“……뭐, 가지고 싶은 옷이라도 있어?” “응?”
“어? 여자 친구 됐으니까 선물해줘, 뭐 그런 거 아니야?”
“아, 아냐!”
“아니긴 뭘 아니야. 너 지금까지 ‘사실은 나 너랑 배다른 남매야. 그러니까 우리의 관계를 증명하게 커플룩 사줘♡’ 라든가, ‘사실은 난 미래에서 널 구하기 위해 찾아왔어! 그러니까 널 구할 수 있도록 밥 사줘♡’ 라든가, ‘지난번에 손잡고 잤을 때 애가 생긴 것 같아. 그러니까 애한테 들려줄 음악 CD 사줘♡’ 하는 식으로 나를 낚은 적이 몇 번인 줄 알아?”
참고로 지금까지 전부 속아왔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긴 한데, 애니메이션 등등을 사랑하고 평범한 일상을 거부하는 준수한 오타쿠인 나님께서는 옆집에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소꿉친구가 같이 산다는 건 꽤나 행복한 일이거든요. 거기다 그 소꿉친구에게 이런 저런 숨겨진 설정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는 늘 두근두근 거리게 된다. 무심코 믿어버릴 정도로.
하지만 이번에는 속지 않아!
“이, 이번에는 진짜 아니라니까!”
“그래, 진짜 아니겠지. 나 참, 한 타만 때렸으면 모르겠는데 두 번 연속은 좀 아니었다. 안드로이드라고만 했으면 이번에도 믿었을 텐데.”
“진짜야…….”
“이 열쇠는 어디서 난 거냐? 장난 치고는 공들여 만들었네. 그래서 어느 쪽이 진짜고 어느 쪽이 보조냐? 열쇠 준비한 걸 보니 역시 고백 쪽이 보조냐?”
“진짜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첫 키스를 뺏어가는 건 너무하지 않냐? 아니, 그보다 너 괜찮아? 그런 건 소중하게 해야지. 뭐 이번 건 노카운트로 칠 테니까, 다음부터는…….”
“진짜라니까!”
“꾸엑!”
말하던 도중 목을 치면 굉장히 위험하거든! 자칫 잘못하면 기절할 수도 있거든! 콜록거리며 고개를 들자, 눈물을 글썽거리는 백설이의 얼굴이 보였다.
“이, 이번에는 진짜라고! 진짜 고백이란 말이야! 나도 용기를 낸 건데, 그 정도는 알아차려! 바보야!”
“……그래, 미안하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울기 시작할 것 같은 백설이를 끌어안아줬다.
“자, 잠깐만…….”
“솔직히 믿어지지 않아서 그랬어.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지금까지 17년 동안 알고 지내온 소꿉친구에게 그런 말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 그 말은 역시 너도……!”
하지만 나는 기대감에 이번에는 눈을 반짝거리는 백설이의 얼굴을 보며, 양 어깨를 잡은 채로 말했다.
“하지만 미안. 역시 나는 특별한 설정이 붙어있는 쪽이 좋아. 평범한 인간에게는 관심 없거든.”
“……어?”
솔직히 나도 참 슬픈 일이다. 동네 최고의 미소녀 소꿉친구가 고백을 해왔는데 이런 대답을 하기는. 이 녀석이 얼마나 용기를 내서 한 말일 줄은 아는데.
하지만 남자라면 꿈을 꾸며 살아가야 하는 법, 용서해라. 넌 분명 예뻐. 성격도 좋고. 분명 좋은 남자가 생길거야. 소꿉친구 설정만으로 만족할까 순간 고민하긴 했는데, 그 걸로는 부족하다.
“그, 그럼 마침 잘 됐잖아! 나 안드로이드라니까?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그래. 네가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그런 속성까지 스스로에게 붙여가면서 고백해준 건 정말 고마워. 그러니까 스스로를 속일 필요는 없어.”
“지금까지는 잘 속았으면서 왜 이번에는 안 믿는데?! 그럼 그 열쇠는 뭐라고 생각해!”
“이거? 과학자인 너희 아버지 연구소에서 슬쩍 해온 거 아니야? 그러면 안 돼.”
“아 진짜! 평소에는 이상한 거에도 퍽퍽 속아나가면서 왜 진짜라고 하면 안 믿냐고!”
“왜 안 믿는지는 네가 속여 온 횟수에 비례하지. 솔직히 안드로이드는 좀 무리수 아냐?”
“으으으!”
백설이는 내가 안 속는다는 사실이 화가 나는지 이를 악 물면서 물러나 외쳤다.
“알았어! 증거를 보여주면 될 거 아니야! 뭘 보여주면 되겠어?!”
“증거고 뭐고…….”
“말해봐!”
너무나도 당당하게 외쳐서, 나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오늘따라 이상한 허세를 부리네, 이 녀석.
“그럼 로케트 펀치 날려봐.”
“그 정도야 간단하지!”
그리고 백설이는 내 말에 당당하게 외치고, 오른손을 들어서 내 뒤의 전봇대를 겨냥했다.
그리고 진짜로 손을 날렸다.
“…….”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로켓 추진이 된 주먹이 쏜살같이 날아가 전봇대에 박혔다. 팔과 주먹 사이에 매어진 와이어가 팽팽하게 이어져있다.
“어때! 봤지!”
“너 마술도 할 줄 아냐? 아니지, 너희 아버지 시험품이구나? 멋대로 가져 나오면 안 된다니까.”
“이게 마술로 보여?! 너 사실 눈에 문제 있었어?!”
백설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외쳤다. 뭘 이 정도 가지고. 로케트 펀치 까짓것 누구나 맘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백설이 아버지 물건만 있다면.
“그럼 날아봐.”
“알았어! 똑똑히 잘 봐!”
그리고 백설이는 진짜로 날았다. 신발 밑에서 불꽃이 나옴과 동시에 ‘쿠과과과과’ 하는 괴상한 추진음이 나면서, 백설이는 지면에서 대충 1m 정도 떠올랐다.
“어때! 이번에는 믿어주겠지?!”
“……아버지 시험품 들고 나오지 말라니까. 그런데 그 신발 신기하다. 너희 아버지에게 달라고 하면 하나 주실까?”
“으아아아아아! 미치겠네! 평소에는 그렇게 잘 믿더니 왜 증거를 보여줘도 안 믿어!”
다시 바닥에 내려와 로케트 펀치까지 회수한 백설이는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분한 듯 외쳤다. 아니, 지금까지 믿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좋아, 이 녀석의 속임수를 파쇄 하는 데는 이 이상 가는 방법이 없겠지.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이거 해내면 진짜로 믿어줄게.”
“뭔데?!”
“자폭해봐.”
그래, 안드로이드라면 자폭 기능 정도는 있겠지! 하지만 이 녀석은 인간! 다른 건 몰라도 자폭기능 같은 걸 얘네 아버지가 개발할 리는 없으니까 이건 못 하겠지! 어떠냐, 백설! 이번에야말로 내가 이겼다고!
그 순간 백설이의 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무감정한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자폭모드를 시작합니다.”
“……어?”
“본 기체는 본 기체의 판단으로 30초 후 자폭합니다. 피해범위는 반경 500m에 이르므로 신속히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잠깐, 야, 백설. 아무리 그래도 그건…….”
“폭발까지 20초.”
“아니, 백설아. 몸에서 이상한 소리 나는데?”
“폭발까지 15초.”
“뭔가 진짜로 폭발할 것 같은 소리 나잖아. SF영화나 그런 데에서 나는 것 같은 소리가…….”
“폭발까지 10초.”
“……백설아? 백설?”
“지금 이 메시지를 듣고 있다는 건 탈출은 글렀다는 소리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폭발까지 5초.”
“…….”
“4초.”
“잠깐,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해!”
“3초.”
“야, 백설!”
“2초.”
“알았어! 알았다니까!”
“1초.”
“너 안드로이드라는 거 믿겠다고!”
푸슈우우웅. 뭔가 엔진 같은 게 멈추는 소리.
“……진짜지? 믿어주는 거지?”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한 백설이는, 드디어 믿어줬다는 뿌듯함이 섞여있는, 내가 믿어줄 때마다 보여준 환한 미소를 보여줬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자폭 같은 건 하지 말라고!”
“알았어.”
진짜로 기쁜 미소를 짓고 있으면 이 이상 안 믿어줄 수도 없다.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나는 겨우 물어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럼 뭐 어떻게 된 거야? 너 어렸을 때부터 나랑 큰 건 다 봤다고. 안드로이드가 어떻게 커!”
“그게, 사정이 좀 복잡한데……. 으으, 이거 말하면 그거까지 말해야하는데…….”
백설이는 내 말에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결심한 듯 교복 와이셔츠 상의를 풀기 시작했다.
“자, 잠깐! 뭐 하는 거야!”
“기다려봐. 내가 어떤 몸인지, 확실하게 보여줄게.”
“아니, 보여주는 건 정말 기쁜데 여긴 길거리거든?! 스트립쇼 하면 잡혀가거든?!”
말하는 사이에 이미 백설이는 와이셔츠를 다 풀은 상태였다. 윽! 재빨리 고개를 돌리는 내 머리를, 백설이의 손이 제지한다.
“잘 봐봐.”
“그, 그런 건 벌써 야동으로 다 봤거든! 아니 네 껀 어렸을 때 다 봤거든! 반찬으로 안 쓰거든! 그러니까 볼 필요 없거든!”
“……?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잘 봐봐.”
그 말에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아니, 보고 싶은 건 아니지만 보라고 하잖아.
“……뭐야 이건. 문신?”
“음, 문신이라면 문신, 인가?”
등, 정확히는 목 아래 부분 살 위에 써진 영어.
 
Project 'Snow-White‘
Ver. 1.7
 
“지금 내 신체는 버전 1.7이거든.”
“버전 1.7?”
“응. 그러니까, 17번째 버전.”
 
백설이의 아버지는 유명한 천재 과학자다. 젊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서는 지금은 어디 인공지능과 기계공학 연구소에서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몇 년 전에, 그러니까 17년 전에, 연구소에서 안드로이드를 개발하기로 했어.”
하지만 안드로이드 개발이 쉬울 리는 없다. 인공지능도 개발해야하고, 보행 등등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는 신체도 개발해야한다.
“그때 우리 아빠가 아이디어를 냈어.”
ㅡ인간이 성장하듯, 안드로이드를 성장시키자.
태어난 단계의 아이 같은 인공지능을 교육시키고, 사람들과 만나게 하면서 각종 데이터를 축적시키고 발전시킨다. 그리고 아이가 기기 시작하고, 걸음마를 시작하고, 뛰기 시작하게 되는 것처럼 신체도 발전시킨다. 경험시킨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졌어.”
그리고 아이처럼 성장시키려면, 단순히 연구소에서 개발하는 것 보다는 진짜 사람을 성장시키듯 하는 게 낫지 않겠냐, 백설이의 아버지는 그렇게 주장했다. 그래서 아이를 입양하듯 백설이를 데려다 키웠다. 그리고 이웃집에 살던 나와 친해지게 되었다.
“내가 나이를 먹을 때마다 그에 맞춰서 신체를 개조하고, 인공지능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발전했어. 이제는 사람하고 똑같을 정도야.”
백설이는 자랑하듯 말했다.
나? 나는 설명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입을 멍하니 벌린 채 백설이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음……. 여기부터는 좀, 창피한데…….”
백설이는 부끄럽다는 듯 볼을 붉히며 말했다.
어릴 때부터 백설이는 나와 붙어 있었다. 늘 같이 놀았고, 같은 유치원을 나와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 그리고 이제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나에게는 그냥 소꿉친구였지만, 백설이에게는 나는 선생님 중 하나였다.
인공지능이 어리던 시절에는 인간의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 유치원 단계로 성장해서는 가장 친한 개채, 초등학교 단계에서는 언제나 붙어 있는 친구, 중학교 단계에서는…….
“……매력적인 이성으로.”
음, 이건 창피하겠구만. 나도 볼이 붉어진다.
“그,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안드로이드가 이런 마음을 갖는 건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됐어. 어느 순간부터 너에 대한 걸 생각하고 고민했어. 신체를 꺼놓고 인공지능도 중지하는, 그러니까, 인간으로 치면 잠을 잘 때도, 회로 어딘가 에서는 너에 대한 기억을 돌리면서 꿈을 꿨어. 그러다 알았어. 이게 ‘사랑’이라는 걸.”
“……어, 응, 그래.”
“나, 나도 부끄럽단 말이야!”
내 담담한 대답에 백설이는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 아무튼, 그래서 아버지랑 연구소 분들한테 상담을 요청했더니…….”
“잠깐, 너 다 불고 다녔냐?!”
“다, 다 불고 다닌 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연구소 소속이고, 내가 보고 느낀 건 어차피 다들 보게 되는데다가, 그, 뭐든 사소한 거라도 이야기해야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
“내가 그런 걸 말한 날에, 연구소에서 난리가 났어. 파티가 열리고 그랬어. 잘 됐다, 행복해지길 바란다, 관계부처에 연애 허가를 요청한다, 등등등…….”
백설이는 부끄러운 듯 행복한 듯 애매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그, 복잡한 이유가 있어서 허가 받는 데에는 시간이 들었지만, 딱 오늘 허가가 내려졌거든. 사귀어도 좋다고. 그래서 나도 용기를 낸 건데…….”
“…….”
“시, 싫어? 역시 특별한 속성이 붙어있다고 해도, 안드로이드, 기계를 상대로 그런 건 좀 그렇지……?”
“…….”
백설이의 표정은 내 침묵에 점점 굳어갔다. 눈가도 조금씩 글썽거리기 시작하고.
“그, 그렇겠지? 사실 그래서 말하지 말까, 그냥 고백만 할까 했지만, 사귀기 시작했는데 그런 걸 숨기기는 싫어서, 그래서 나도 모르게……. 시, 싫다면 그렇다고 말해줘. 안드로이드라는 사실만 말하지 않으면, 아마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나, 나는, 뭐, 안드로이드니까……. 기계니까……. 이해할 테니까…….”
“백설.”
나는 울기 시작한 백설이에게 말했다. 눈가를 비비는 백설이는 내 쪽을 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억지로 백설이의 양 어깨를 잡고 눈물을 흘리는 백설이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사랑한다.”
“어?”
“사랑한다고.”
“……에? 어? 뭐? 응? 아, 음, 어? 어어?”
“몇 번이나 말하게 하지 마! 사랑한다고! 너 최고야 최고!”
“지, 진짜……?”
“당연하지! 소꿉친구! 안드로이드! 오오! 내 로망이란 로망은 전부 충족하고 있잖아! 미리 말하지 그랬어!”
“지, 진짜 괜찮은 거야?” “괜찮고말고! 너 내가 안드로이드 패티쉬(fetish) 있는 거 몰랐어?”
구체적으로는 마호로씨라든지 유메미라든지 뭐 기타 등등.
“다, 다행이다……. 나는, 네가 싫어하면 어쩌나 하고…….”
백설이는 눈물을 닦으며 웃었다. 내 말에 어지간히 기뻤던 모양이다. 나도 기쁘다. 진짜로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경험이 나에게 오다니!
“하지만……. 나는 메이드 속성인 줄 알았는데…….”
“응?”
백설이는 어딘지 아쉽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니, 예전부터 메이드 메이드 노래를 부르기에 메이드 속성인줄 알았거든. 그래서 너희 집에서 메이드 생활을 하겠다고 열쇠도 준 거고, 혹시나 싶어서 프로그램도 인식해뒀는데…….”
“……어떻게 알았어?”
솔직히 가슴이 철렁했거든? “지난번에 너희 집 컴퓨터 해킹했을 때, 야동이나 동인지나 그런 거에 그런 게 많았어서…….”
“…….”
“느, 늘 해킹하는 건 아니야! 그냥, 모처럼 서버에 접속해있는데 열려있어서……. 그, 그리고 야한 건 보면 안 돼! 그런 걸 보면 안 돼!”
“……야, 백설아.”
“응?”
난 진지하게 말했다.
“자폭해주라. 우리 집이고 나고 뭐고 다 날려서 증거를 없애줘.”
“싫어.”
“왜?! 방금은 좋다고 하더니! 나 죽고 싶은 심정이거든?!”
“안 돼. 지금은 너랑 사귀게 됐으니까 자폭 같은 거 하고 싶지 않거든.”
“으으…….”
이 녀석, 해맑은 얼굴로 그런 걸 봤다고 하다니……. 그럼 내 컴퓨터 안의 그렇고 그런 걸 전부 알고 있다는 소리 아니야? 으악! 진짜로 죽고 싶다! 부모님에게 들키는 것 보다 더 싫어! 옆집 동갑 소꿉친구가 내 검고 음흉한 내면을 다 알고 있다니!
“그, 기, 기운 내.”
백설이는 좌절해 쓰러진 내 어깨를 잡으며 웃으며 말했다.
“연구소 분들에게 부탁해서 네코미미나 고양이 꼬리 같은 것도 모듈로 붙일 수 있게 했으니까, 원하면 달아줄게.”
“잘못했습니다. 제가 전부 잘못했습니다. 제발 죽여주세요…….”
내 말에 백설이는 왠지 즐거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뭐, 이렇게 해서 나랑 백설이는 사귀는 사이가 되었지만, 나는 이때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평범하게 안드로이드를 만들려고 한다면, 왜 로케트 펀치나 제트 추진 기능, 자폭 기능 같은 게 붙어있는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거든.
백설이는 그 외에도 무시무시한 기능들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 레일건 발사 기능, 플라즈마포 발사 기능, 보호막 기능,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그것들이 왜 백설이에게 달려있는지, 그리고 왜 나랑 사귀는 데에는 ‘허가’가 필요했는지, 그런 것들을 알게 된 건 몇 가지 사건이 더 터진 후였고, 그 사건에 휘말리면서 내가 백설이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평범한 생활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기타 등등 여러 가지를 알아차리는 일이 생기고…….
‘백설’이라는 이름에 맞게, 백마탄 왕자님이 되어서 입맞춤으로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뭐 길고 긴 이야기가 뒤에 있기는 하지만…….
그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때 이야기 하도록 하자.

댓글 1개:

  1. 대체 왜 이름이 백설일까 기대했으나 맥거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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