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9일 금요일

[라한대]전차 앞으로!

원본 : http://lightnovel.kr/one/372788
작성 : 2011년 11월 29일


“에, 엘비라 누님, 이것 좀 치워주시면 안 될까요…….”
“안~돼. 무겁단 말이야.”
주위에 지나다니는 병사들이 부럽다는 눈치로 자신을 보고 갔지만, 소위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분명 자신은 소위일 것이다. 장교일 것이다. 비록 나이로는 아직 고등학생 정도에 불과하고, 심지어 겉보기에는 중학생 같겠지만, 분명히 장교란 말이다.
장교는 위엄이 있어야한다. 부대원들을 이끌고 지휘하며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릴 적부터 들어온 말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수박만한 가슴 두 개를 머리 위에 얹어둔 자신은, 과연 위엄이 있는가. 신뢰감을 줄 수 있는가.
소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라, 왜 그래, 소위군? 역시 너무 무거웠나?”
머리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 머리 위에서 느껴지던, 약간 목이 뻐근할 정도의 무게가 사라진다. 대신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바로 옆에 누군가가 앉는다.
군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여성. 그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외모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놀랍다. 그리고 그 외모, 풍만한 가슴과 금발이 전차병용 검은 군복과 어우러져 눈부시게 빛난다. 이름은 엘비라. 소위가 맡은 전차의 단 하나뿐인 승무원이자 부하ㅡ일 터이지만, 실제로 둘의 관계는 오히려 누나와 동생에 가까웠다.
엘비라는 소위의 볼을 콕콕 찌르며 말했다.
“뭐야, 혹시 삐진 거야?”
소위는 귀찮다는 듯 그 손을 쳐내고는 말했다.
“몇 번이나 말했다시피, 저는 장교입니다. 그에 따른 예우를 좀 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찌릿, 하고 노려보는 소위의 시선에 엘비라는 살며시 웃었다.
“에이, 하지만 소위군 귀엽고, 아직 학생이고. 그리고 낮에 그런 일도 있었고. 이 누님의 매력으로 기쁘게 해주려고 했던 건데, 어때? 좀 기운이 나?”
소위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부대 첫 배치 때부터 장교로서 위엄을 세우고 싶었지만,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 마치 가지고 싶었던 동생이나 강아지가 생겼다는 느낌으로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전쟁터 한 복판에서, 그것도 장교를 맡고 있는 이상 소위는 그런 엘비라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튼, 앞으로는 좀 상관으로서 대우를 해주세요!”
“그러는 소위군도 나한테 존댓말 쓰잖아. 다른 병사들에게도 그렇고.”
“윽…….”
엘비라가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소위는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병사들도 그 말에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소위는 벌떡 일어나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뭐, 뭘 엿듣고들 있는 겁니까! 당장 위치로 돌아가세요!”
“예이, 알겠습니다. 소위님!”
킥킥거리면서 병사들이 다시 위치로 돌아가는 걸 보며, 소위는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 뒤에 다가온 엘비라가 다시 소위의 머리 위에 가슴을 올려두며 말했다.
“봐봐, 소위군 인기 만빵이라니까? 다들 아저씨들뿐이지만…….”
“그만 좀 하라니…….”
막 화가 치밀은 소위가 오늘만 해도 2번째로 소리를 지르는 것을 즐겁게 구경하려던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폭음에 빠르게 대처했다.
“공습, 공습이다!”
“하루에 두 번이라니!”
재빨리 참호로 뛰어 들어가는 병사들. 소위도 재빨리 엘비라와 함께 그 중 하나로 뛰어 들어갔다. 몇 분인가의 포격이 끝나자, 이번에는 우렁찬 엔진소리가 언덕 너머에서 들려왔다.
“전차!”
“제기랄, 저것도 두 번째네!”
병사들의 욕설을 들으며, 소위는 머리만 살짝 내밀고는 재빨리 가슴에 매달고 있던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댔다. 그 옆에서 엘비라도 한 손을 눈 위에 가져다 대며 고개를 내밀었다.
“T-34……. 3대. 아니, 4대……. 그럼 최소 중대단위 라는 건데…….”
소위는 저 언덕 너머에서 넘어오는 전차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소련 병사들과 함께 전차는 소위와 병사들이 있는 참호 쪽으로 달려오다,
펑.
하고 주포를 갈겼다. 고폭탄 한 발이 참호 약간 뒤쪽에 부딪치며 격발해, 충격파가 몸을 흔들었다.
“소위군, 하게 해줘.”
매캐한 모래연기를 들이마셔 기침을 하는 소위를 보며, 엘비라가 말했다.
“괜찮겠어요? 아침에도 한 번 해서…….”
엘비라는 고개를 저었다.
“이러기 위해서 내가 있는 거니까.”
소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목에 매달고 있던 열쇠를 꺼내어, 엘비라의 목걸이에 넣고 돌렸다.
기묘한 소리와 함께, 엘비라의 손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도저히 들 수 있을 리가 없는 포를 한 손에 들고, 엘비라는 무겁지도 않다는 듯 휘둘러댔다.
다리에는 캐터필러가 달린 갑각(鉀脚)이 나타나고, 왼손에는 방패가 나타난다. 가슴이나 몸 이곳저곳에서도 금속판이 나타나, 검은 군복만 입었던 엘비라의 몸을 가린다.
소위는 전차장이다. 그리고 전차는, 못해도 세 명, 많게는 다섯 명이나 되는 승무원이 탑승한다. 하지만 소위의 부하는 엘비라 한 명 뿐이다.
현대 과학력으로는 증명되지 않은 미지의 힘을 가진 그녀는, 말 그대로 일인전차(一人戰車), 그리고 그런 그녀를 서포트 해서 지휘하는 게, 전차장인 소위의 사명.
소위는 휴대용 무전기의 이어폰과 마이크를 머리에 끼고, 망원경으로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전차 전진, 미속! 팬저 포!”
“엘비라 티거, 출진합니다!”
엘비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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