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0일 토요일

인류의 조건

원본 : http://fangal.org/freenovel/468804
작성 : 2012년 6월 3일




“제군들, 알다시피 인류는 멸망하기 직전이다.”

사령관의 말에는 비장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모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그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문뜩 떠올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처입고, 부상당한 모두들. 붕대를 감고 피를 흘리고 있는 대원이 멀쩡한 대원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친 얼굴, 고참의 얼굴, 절망한 얼굴, 어리버리한 오퍼레이터 출신 대원의 얼굴 등등. 표정과 상처는 각양각색이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그 누구의 얼굴에도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전 세계의 모든 군대가 현재 손을 잡고 전투에 나서고 있지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적의 전력은 압도적이고, 인류는 현재 위기에 처해있다. 아니, 위기가 아니지. 인류는 멸종 위기이다.”

사령관의 등 뒤에 켜진 패널에 띄워진 세계지도에는 빨간색이 가득했다. 지구를 덮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적. 그 사이에 떠오른 파란색 점들, 아직 투쟁을 포기하지 않은 인간을 상징하는 점들은 너무나도 적고, 그나마도 하나 둘 씩 사라지고 있었다.

“이미 위원회는 클래스 X 작전을 준비 중이다.”

그 말에 모두의 얼굴에서 절망이 더욱 강해진다.

“클래스 X 작전. 모두가 알고 있다 시피, 인류가 가진 모든 핵무기, 생화학병기, 기타 무기를 총동원해서 지구의 모든 적을 섬멸하는 작전이다. 최후의 공격, 아니 발악이지.”

물론 그 작전이 시행되면, 인간도 멀쩡할 리는 없다. 비상쉘터로 대피한 채 한 줌도 안 되는 인간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도 수 십 년, 수 백 년을 지하에서 살아가야겠지.

인류가 모두 저 외계인의 손에 전멸하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지만.

“클래스 X 작전의 시행은 지금부터 정확히 5시간 후다. 이미 세계 각국의 부대들은 전투를 포기하고 후퇴를 시작했다. 그를 기점으로 우리 지구방위대 역시 모든 임무를 포기하고, 해산한다. 살아있는 사람도 우리뿐이지만.”

사령관의 말에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나 역시 이를 악 물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외계인. 적대적인 그들 앞에 인류는 힘을 모아 싸움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인류의 무기는 외계인의 앞에서도 힘을 발휘했으니까. SF 영화에나 나올 거대괴수나 모함을 몇 마리나 쓰러트리고, 몇 척이나 격침시켰다.

그 선두에는 우리, 지구방위대가 있었다.

언젠가 외계에서 찾아올 위협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지구방위대. 그 목적에 맞게, 우리는 외계인의 기술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개발하여 최선을 다했다. 언제나 선두에서 싸웠다.

하지만 희망은 사라졌다.

한 척을 격침시키면 모함은 세 척이 나타났다. 거대괴수 한 마리를 쓰러트리면 다섯 마리가 나타났다. 군대는 소모되어가고, 인간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종지부를 찍으려고 하듯, 하늘을 가려버릴 정도의 거대한 모함이 나타났다. 외계인의 사령선(司令船)이었다.

앞길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수며 나아가는 초거대모함과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적에, 결국 이런 결말에 도달했다.

이제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

여기가 최종지점이다.

“하지만 제군들, 살아있다는 것은 싸워야한다는 의미이다.”

사령관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아직 5시간이나 남아있다. 우리가 마지막 발버둥을 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사령관의 모습도 말이 아니었다. 지난 수개월동안 지구방위대의 사령관으로서 밤잠도 설치고 지휘에 나섰던 사령관이다. 안색은 창백하고, 눈가는 깊게 들어가 퀭하다. 어깨도 줄어들었다. 늙은 사령관의 모습은 마치 멸망하려는 인류와도 닮아있었다.

그러나 그 눈빛은 절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 허리는, 절대 굽혀지지 않았다.

“언젠가, 우리의 후손들이 이 마지막 5시간동안 우리의 선조는 무엇을 했는가를 물어볼 것이다. 그때 나는 후손들에게 ‘우리는 5시간동안 바보같이 멸망을 기다리면서 기도나 했단다.’ 라고 대답하고 싶지 않다. 나는 차라리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우리는 그 5시간동안 멋진 발버둥을 쳤다. 너무나도 멋진 발버둥이라서 지금 너희들이 이렇게 물어보고 있단다.’ 제군들은 뭐라고 대답하고 싶은가!”

우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의미는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나는 자녀들과 약속했다. 이 싸움이 끝나면 같이 소풍을 가자고 말이다. 집 앞의 샌드위치 집은 인기가 좋지만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 집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소풍을 갈 생각이다. 바쁜 내 일정에 질려서 옆집의 빌어먹을 의사 놈이랑 바람을 피우고 있는 아내를 위해서 다이아몬드 목걸이도 선물해줄 생각이다. 이제는 말도 안 들어쳐먹는 망할 놈의 아들놈과 딸년을 위해 약속했던 컴퓨터를 사주고 성형수술도 해줄 생각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나는 제군들의 월급을 횡령할 생각이다!”

“우우우!”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사령관은 당당하게 말했다.

“제군들도 마찬가지일 테다. 말하면 죽는다는 소문이 무서워서 이 전쟁이 끝나면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말도 못하는 자네도,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자네도, 모두 아직 하고 싶은 일과 계획이 남아있을 거다! 그런데 봐라! 저 놈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우우우!”

어느새 모두들은 발을 구르고 있었다. 쿵쿵쿵. 브리핑 실이 울릴 듯이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자네가 싸움이 끝나고 먹을 예정인 슈와마 집을 저 개자식들이 박살내고 있다! 술을 마시려고 한 그 술집도 놈들이 박살냈다! 술집에서 서빙을 하는 큰 가슴과 엉덩이가 매력적인, 제군들이 떡치려고 벼르고 있는 그 여성도 놈들이 촉수로 대신 떡을 치려고 하고 있단 말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이자! 죽이자! 죽이자!”

“그 슈와마 집에는 우리의 가족이 있다! 술집에는 우리의 친구가 있다! 떡치려는 그 여자는 애인이 될 지도 모른다! 우리가 여기서 포기해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키자! 지키자! 지키자!”

사령관은 배후의 패널을 강하게 후려치며 외쳤다.

“좋든 싫든, 이것이 마지막 싸움이다! 제군들은 지구방위대다! 지구를 지키는 방위대다! 그렇다면 마지막 숨통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지키며 싸우는 거다!”

“싸우자! 싸우자! 싸우자!”

더 이상 우리의 표정에는 절망 같은 건 없었다. 있는 것은 분노 뿐. 사령관은 우리의 얼굴을 훑어보더니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작전을 설명하겠다.”





“나 참. 사령관님도 ‘떡칠’ 이라니, 그게 뭐야. 여자도 있는데.”

툴툴거리는 에코-2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내 반응에 에코-2는 눈을 흘긴다. 남자처럼 짧은 머리가 찰랑거리고, 날카로운 눈매가 찌를 듯이 날아온다.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뭐야. 설마 너도 그런 생각 한 건 아니겠지?”

“아, 아냐. 그럴 리가 있나.”

“흐ㅡ음……. 뭐 그렇다면 됐지만.”

“그럼요. 대장님은 제 몸매 정도가 딱 좋다고 말씀하셨던 걸요.”

“뭐라고?!”

“잠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총구 내려!”

조준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장갑복의 비프 음이 시끄럽게 울린다. 에코-4는 에코-2의 그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킥킥거리며 웃었다. 하여간……. 뭐 저 정도 가슴과 엉덩이가 제일 매력적이긴 하지.

“기총 세이프티 오프.”

“쏘지 말라고! 총구는 적을 향해 총알도 적을 향해!”

비프 음의 주기가 더욱 빨라져서 다급히 외쳤다. 진짜로 쏠 생각이었다.

“좀 진지해지세요.”

소란스러움이 짜증났는지 에코-5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행동에 우리의 시선이 집중된다.

“정말로 이게 끝일지도 모르니까요.”

“…….”

그 말에, 에코-2도 에코-4도 입을 다물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수송기 안의 빈자리를 바라봤다.

에코-3. 외계인의 소화액이 빗발치는 사이에서도 농담을 하던 넉살 좋던 녀석이었다. 언제나 위기 상황에는 오퍼레이터들과 잤던 이야기를 하면서 기운을 복돋아줬었다. ‘이 일도 못해먹겠네요. 월급 빠방하게 나오고 전 세계 돌아다니면서 여자들과 자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외계인이 올 줄이야.’ 라고 말하며, 제대하고 음악이나 하겠다고 했었지.

마지막 유언은 ‘초콜릿이 먹고 싶어요.’ 였었다. 소화액에 몸이 다 녹아내리고 있었지만, 나는 포장지를 까서 녀석의 입에 초콜릿을 물려줬다. 핏기가 가신 하얀 얼굴로 웃으려고 애쓰면서 녀석은 죽었다.

에코-6. 오퍼레이터를 하고 있었지만, 전투원이 부족해서 전근해온 애였지. 아직 젊은 여자애라서인지 포화가 빗발치면 언제나 죽을 거라면서 징징거렸었다. 부상병이나 전사자의 시체를 보면 토하기 일쑤였지. 하지만 귀엽고 애교 많은 애였다.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다른 부대의 부상병을 후방으로 끌고 가려고 하다가, 거대괴수에게 한 입에 먹혀버렸다. 도망치지도 못하고 울면서 그 자리에서 그대로 먹혀버렸다. 소화액에 이미 녹아버린 뒤라서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했다.

에코-7. 정말 군인 같은 사내였다. 어디 특수부대 소속으로 현장에서 은퇴할 정도로 전장에 서고, 지구방위대의 요원훈련 교관으로 왔었다. 나도 신세를 졌었지. 자기가 가르친 남자가 지휘관을 맡는 일에도 아무 부담 없이 나에게 경례를 올리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말해줬었다.

외계인의 모선에 잡혀 들어가 소화가 되려는 그 순간에도, 마지막까지 군인으로서 가지고 있던 폭탄과 장갑복의 엔진을 유폭시켜서 모선을 날려버렸다. 무선으로 들려온 마지막 말은 ‘나타샤’ 였다. 아내의 이름인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에코-8. 지구방위대에서 시험 삼아 투입한 전투용 안드로이드였다. 처음에는 기계적이고 인간 같은 부분은 전혀 없는, 말 그대로 안드로이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 같은 부분을 보였었다. 아니 인간이었다. 싸움이 끝나면 시민권을 준다는 말에 ‘그럼 저도 연애를 해볼 수 있겠군요.’ 라고 무표정하게 말했었지. 하지만 그 무표정은 수줍은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였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사선으로 뛰어 들어왔었지. 임무를 최우선으로 하는 전투용 안드로이드로서 실격인 행동이었다. 레이져에 몸이 녹아가면서도 ‘기쁘군요.’ 라는 말을 남겼다.

모두 죽었다. 이 싸움의 도중에.

그리고 우리도 아마도.

작전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사령선의 진로에 뛰어들어, 적의 포화를 돌파해서 어떻게 해서든 사령선을 격침시킨다. 그게 끝이었다. 자살행위다. 말 그대로 발버둥, 발악.

하지만 해내야한다. 그러기 위해 모두들 죽어간 것이니까.

“마더 구스 1에서 각기에. 지옥으로 진입한다. 다들 준비해두라고.”

최전방 패스파인더 기체에서 들려온 말에, 우리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헬멧을 장착했다.

XHES-10E. 지구방위대의 최신예 장갑복. 외계인의 기술과 인류의 기술을 접합시켜 만든 갑옷이자 방패이자 검. 외계인의 공격에도 잠깐은 버틸 수 있고, 장비된 각종 무기는 어떠한 상황과 적에 대해서도 대응할 수 있다. 인간의 군대가 적이라면 이것 한 벌로 신병도 한 개 중대 정도는 상대할 수 있다. 제작비는 평범한 민간인 100명이 평생 벌어도 살 수 있을 지모를 정도의, 인류의 모든 기술의 집합체다.

하지만 이것조차 외계인의 앞에서는 그저 소모품일 뿐이다. 강철의 관이라고도 불린다.

“여기는 미 공군 104 항공대 소속 F-22. 우리가 길을 뚫는다. 행운을 빈다.”

무전이 들려옴과 동시에 수송기가 흔들린다. 외계인의 비행종이 우리를 노리고 달려들고, 전투기들이 우리를 지키러 맞서 싸운다. 나는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수송기 외부 카메라로 화면을 돌렸다.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사령선이 하늘을 모두 메우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남은 모든 부분이 적이다.

해일처럼 몰려드는 적을 향해 한 줌도 안 되는, 하지만 지금 인류가 쥐어짤 수 있는 최대한의 전력이 맞서 싸운다. 미사일이 하늘을 가르고, 기관총이 불을 뿜는다.

“바이퍼-1! 당했다! 행운을 빈다!”

“오토-2! 6시 방향에 적! 탈……. 제기랄, 이제 와서 탈출해봤자! 으아아아아!”

“어떻게 해서든 지구방위대는 지켜! 날아오는 사격은 기체로 막아라!”

“마더 구스 4! 엔진에 직격! 대원들은 탈출하라! 비상사출! 비상사출!”

“개자식들! 날개를 당했다! 충돌해서라도 한 녀석이라도 더……!”

“여기까지다! 행운을 빈다! 아아아악!”

무선을 가득히 매우는 비명소리. 화면을 가득히 매우는 폭염. 압도적인 전력 앞에서 하나 둘 씩 먼저 사라진다.

그 순간 수송기가 강하게 흔들린다. 실내등이 빨갛게 물들고, 순간 온 몸이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 든다.

“마더 구스 5 추락한다! 에코팀! 빨리 탈출해!”

“에코-1! 탈출한다! 너희들도 빨리 탈출해!”

내 외침에 파일럿은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우리가 탈출할 수는 없어. 마지막까지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날아보겠다. 무운을 빈다!”

“하지만……!”

에코-4가 중얼거리는 순간, 에코-2가 그녀의 장갑복 팔을 잡아당기며 외쳤다.

“탈출해! 이게 저들의 임무야! 우리를 조금이라도 가깝게 내려주는 것!”

“해치 열립니다.”

에코-5의 목소리와 함께 수송기 후방 해치가 열린다. 공중을 매우다 시피 하는 적기와, 그 사이로 터져나가는 전투기들이 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지면은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상형 외계인의 물결이다.

“가자!”

“그렇지만……!”

에코-2와 에코-4가 먼저 수송기 해치로 뛰어내린다. 그 뒤를 이어 에코-5가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해치 앞에 선 나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뒤는 맡겨.”

“듬직하구만. 가라!”

조종사의 대답을 들음과 동시에 나도 지면을 향해 뛰어내렸다.

고도계의 숫자가 미친 듯이 내려간다. 사지에 장비된 자세제어 노즐이 연료를 뿜어내며 자세를 안정적으로 바꾼다. 그 빈틈을 노리고 비행형 중 몇 마리가 나에게 달려든다. 오른손에 달린 기관총의 세이프티를 풀고 조준하는 순간, 나를 노리던 적들이 터져나간다. 바로 눈앞을 전투기가 스쳐간다.

“여기는 호텔-4! 탄환을 아껴! 길은 우리가 뚫는다!”

나를 스친 F-22가 다시 선회한다. 나를 노리고 달려드는 다음 무리. F-22의 수납부가 열리며 미사일이 발사되고, 그 폭발에 몇 마리가 날아간다. 남아있는 녀석들을 향해 기관총이 날아든다.

“이 쪽은 신경 쓰지 말고 지면에 신경 써!”

“알겠다! 호의에 감사한다!”

그 말에 나도 더 이상 공중을 신경 쓰지 않는다. 믿는 수밖에 없다. 모두가 각자 가능한 최선의 일을 해줄 것을.

화면에 적정고도라는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반중력 장치가 장갑복을 감싼다. 제대로 된 장치가 아닌지라 완벽하게 공중을 날게 해줄 수는 없지만, 속도를 늦춰 지면에 부딪히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속도가 느려짐과 동시에 나는 지면을 바라보고 무기를 발사한다. 미사일의 비가 발 바로 밑을 향해 쇄도하고, 폭발과 동시에 지면의 해일 사이로 약간의 틈이 생긴다.

“으아아아악!”

무선 회선을 통해 들려오는 비명소리. 눈은 감지 않았다. 대신 지면을 향해 몸을 돌리며 등 뒤에 장비된 플라즈마 캐논을 전개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지면에 푸른 불꽃이 작렬하고, 해일의 틈이 더욱 커진다. 나는 즉시 반중력 장치를 끄고 자유낙하를 개시했다. 빨라진 속도 덕에 나를 노리고 날아오던 비행형의 포화가 지면의 적들을 날려버린다.

쿵. 장갑복의 충격대비 장치로도 다 지우지 못한 강한 충격. 웅크린 자세가 돌아옴과 동시에 나를 향해 달려드는 지상형의 해일을 향해 오른손의 체인건을 난사한다. 탄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탄환은 폭풍우가 되어 해일을 밀어낸다. 가까이 오는 적을 왼손의 플라즈마 커터로 잘라내고, 이미 전개된 플라즈마 캐논을 난사하고, 화염방사기로 적을 구워버린다.

“에코-2! 에코-4! 5! 응답하라!”

“여기는 에코-2! 그쪽에서 500m 거리! 지금 그 쪽으로 갑니다!”

“에코-4! 에코-2랑 같이 있어요! 함께 가겠습니다!”

“에코-5! 300m 거리에 있습니다! 뚫고 나갑니다!”

“전원이 모임과 동시에 사령선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다!”

해일을 뚫고 먼저 에코-5가 나타났다. 나와 마찬가지로 표준형 장비다. 바로 옆에 서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이 지상형의 해일에 맞선다.

“늦었습니다!”

에코-2와 4도 금방 뒤따라 나타난다. 둥글게 원형을 만들며 셋은 사방을 향해 사격을 난사한다. 나는 셋이 만드는 원 사이로 들어가, 다리를 땅에 고정한다.

“사령부다. 지구방위대 전력은 현재 65%! 살아남은 대원은 사령선에 화력을 집중하라!”

“공군전력 전멸! 비행형에 주의해주십시오!”

“들었지 모두들!”

“에코-4, 대공을 맡겠습니다!”

날아오는 비행형의 무리를 향해, 에코-4가 하전입자포를 발사한다. 일렬로 터져나가는 무리들. 하지만 채 충전시간이 되기도 전에 다음 무리가 나타난다.

“전력이 부족해!”

“여기는 이글팀! 대공은 우리가 맡겠다! 에코팀은 앞으로 나가!”

사격을 중지하지 않으며 고개를 돌린다. 해일 저편에서 날아가는 지상형들. 다른 지구방위대 팀이 이쪽을 향해 오는 모양이었다.

“사령부에서 각 대원에게! 적 사령선의 약점은 중심부분인 것 같습니다! 바로 밑에서 공격해야 약점부분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나가주세요!”

“하지만 적이 너무 많아요!”

에코-4의 비명에 나는 그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하지만으로 넘겨버릴 상황이 아니잖아! 에코팀 전진! 이글팀에게 후방을 맡긴다! 괜찮겠지?”

“이야기는 들었다. 나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리의 고정을 다시 풀었다. 동시에 사령부에게 외쳤다.

“에코-1! 사령선의 중심부분까지의 거리는?!”

“거기서 20km! 앞으로 1시간이면 클래스 X 작전이 시행됩니다!”

“시간이 없다! 전원 풀 부스트로!”

“라져!”

모두의 대답과 동시에 백팩과 각부에서 부스트를 최대로 전개하고, 해일 사이로 몸을 던진다. 최선두에 에코-2가 서서 미사일과 체인건을 연사하고, 그 틈을 에코-4와 에코-5가 벌린다. 그 사이에도 무선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끄아아악! 당했다! 한 놈이라도 더 끌고 가겠다! 자폭한다!”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여기는 미라클-4! 어떻게 해서든 앞으로 나아가! 어차피 여기가 끝이다!”

“찰리팀 전멸! 남은 건 저 뿐입니다. 마지막까지 길을 열겠습니다!”

“사령관이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마라! 어떻게 해서든 에코팀을 앞으로 보내라!”

“에코-4! 우측에 거대괴수 발견! 이쪽을 향해 오고 있어요!”

그 말에 고개를 돌린다. 100m도 넘어 보이는 거대괴수가 이쪽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벌린 입에 고이는 것은 푸른 빛. 하전입자포를 충전중이다.

“모두 멈춰!”

“아니, 계속 나가라, 지구방위대!”

그 순간 무선에 들려온 목소리와 동시에, 거대괴수의 몸에 폭염이 피어오른다. 강력한 공격에 거대괴수는 휘청대고, 우리를 향해 날아오려던 하전입자포는 지면을 긁으며 지상형을 대신 지워버린다.

“이건……. 세계 각지의 군대, 철수를 포기했습니다! 공격을 재개합니다!”

오퍼레이터의 놀란 목소리. 사령관이 다급히 외친다.

“뭐라고?! 이제 곧 클래스 X 작전이 시작될 텐데?!”

“여기는 러시아 561 항공대. 너희들만 싸우게 할 수는 없지. 예비전력을 쥐어짜서 어머니 조국에서 달려왔다! 지원에 나선다!”

머리 위를 스쳐지나가는 전투기. 폭염이 다시 피어오르고, 우리 앞의 해일을 지워나간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건 모두나 똑같다!”

“세계 각지에서 양동작전 진행 중! 무전이 들어옵니다……. ‘행운을 빈다.’”

“혼자 싸우는 게 아니었나…….”

사령관의 탄식과도 같은 말. 하늘을 세계 각국의 전투기들이 수놓고, 또한 터져나간다.

“……마저 뚫고 나간다!”

부스터의 속도를 더욱 높인다. 헬멧에 투영되는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목표지점까지의 숫자는 점점 더 줄어든다. 앞으로 10km……. 8km……."

"지하에서 고열원반응!“

“대열 해체!”

에코-5의 보고에 대한 내 대답에 모두가 헤치며 거리를 벌린다. 우리가 향할 자리 바로 밑에서 하늘을 향해 거대한 빛줄기가 올라간다. 나아가는 자리에 있던 비행형과 전투기들이 그 빛에 순식간에 소멸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뚫고, 거대괴수가 나타난다.

“150m급! 큽니다!”

“다시 쏩니다!”

“난수회피(亂數回避)!”

외침과 동시에 각기가 자세제어 부스트와 반중력 장치를 이용해 급격한 기동을 펼친다. 거대괴수의 입에서 나온 빛줄기가 이번에는 지면을 훑고, 지상형 외계인의 무리가 사라진다.

“이대로면 나갈 수 없어요!”

에코-4의 비명. 여기서 시간을 더 소요하면 안 된다. 하지만 이 녀석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에코-5. 제가 여기는 맡겠습니다. 모두들 앞으로 나가주세요.”

“잠깐?! 너!”

에코-5의 말에 에코-2가 비명을 지른다. 에코-5는 부스트를 끄고, 지상형이 사라져 빈, 지면이 끓어오르는 그 공터에 멈춰 선다.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려던 거대괴수는 에코-2의 플라즈마 캐논에 강타 당하자 고개를 돌렸다.

“거기 있으면 죽어요!”

에코-4의 외침에, 에코-5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살려고 온 거야. 누군가는 길을 뚫어야 해.”

“……후회하지 않겠어? 에코-5.”

내 나지막한 목소리에 에코-5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에코팀, 전진한다.”

“잠깐만요, 대장님! 그러면…….”

“명령에 따라, 에코-4!”

에코-2가 외치자 에코-4는 그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에코-5는 우리를 노릴까 자신을 노릴까 고민하는 듯한 거대괴수에게 다시 한 번 공격을 날렸다.

“이 쪽이라고! 네 상대는 나야!”

나는 거기까지만 듣고 에코-5와의 무전을 꺼버렸다. 전원에게 통하는 무선 모두를. 그리고 다시 앞을 보고 해일을 뚫고 나아갔다. 작은 목소리로 에코-4가 울먹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그 이상 알 수가 없었다.

“에코팀이 5km 이내로 접근!”

“사령선, 에코팀을 인식했습니다! 화력이 집중됩니다!”

“모든 부대, 에코팀에게서 눈을 돌리게 해라!”

“계속해서 난수회피하면서 전진! 사령선에 대한 사격 개시!”

사령선의 각부에서 우리를 노리고 소화액과 레이져가 날아온다. 우리는 사령선이 패턴을 읽을 수 없도록 무작위로 회피기동을 하면서 나아간다. 아군이 날아가는 것에는 신경 쓰지도 않는 듯 화망은 더더욱 거세져간다.

외계인은 생체구조다. 땅을 메울 듯 가득찬 지상형이나 하늘을 뒤덮은 비행형도, 거대괴수도, 모함도, 저 사령선도, 모두 하나의 생명체다. 말하자면 괴수 대집합이다.

지구방위대의 연구부에서 조사한 결과로는, 지성이 있는 것은 거대괴수나 모함 정도고, 지상형이나 비행형은 자기들 내부에서도 생명체 취급도 못 받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들을 거대괴수나 모함이 지휘하고, 아마 저 사령선이 모든 외계인을 지휘할 것이다.

즉, 저 사령선을 격침시키면 인류에게도 희망이 있다.

“지구방위대 전멸 직전! 남은 전력 10% 미만!”

“세계 각국 군대도 폐퇴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아직 전투중인 부대는?!”

“에코팀, 아직 전투 중!”

“꺄악!”

회피를 하며 나아가던 순간, 에코-4를 향해 화력이 집중된다. 채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에코-4는 팔다리에 소화액과 레이져를 맞으며 지면에 그대로 충돌해 미끄러졌다.

“에코-4!”

“내가 가서 보겠다! 에코-2는 계속 나아가! 크윽!”

에코-4가 전투불능이 됐다는 걸 인식한 듯, 그 쪽에 돌려지던 화망이 나와 에코-2에게 집중된다. 소화액과 레이져 몇 발이 장갑복에 맞는다. 디스플레이가 빨간 불을 점멸한다. 어떻게든 피하며 에코-4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에코-4의 무선이 지지직 거리며 들려왔다.

“으윽……. 아뇨! 오지 마세요!”

“에코-4! 괜찮아?”

“아뇨……. 하하, 오른팔이랑 양다리가……. 없어요. 왠지 아프지도 않네요…….”

“…….”

“아무래도 여기까지인가 봐요……. 그럼 마지막으로 길을 열어드릴게요.”

대답과 동시에, 에코-4가 하나 남은 왼팔과 절단된 양다리로 버둥거리며 몸을 돌려 사령선을 바라봤다. 나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에코-4의 등에서 하전입자포가 펼쳐지고, 마지막 남은 동력을 전부 집중한다.

“그랬다가는 다시 화망이…….”

에코-2의 중얼거리는 것 같은 말에 에코-4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니까.”

“……수고했다.”

“헤헤, 고맙습니다.”

하전입자포가 불을 뿜고, 동시에 사령선의 소화액과 레이져가 에코-4가 누워있던 자리에 날아든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전입자포는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가, 막으려고 하는 듯 날아오는 비행형 몇 마리와 함께 모선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버렸다. 진청의 외계인의 피가 공중에서 흩날린다.

“안으로 진입한다.”

“……라져.”

에코-2의 힘없는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나는 반중력 장치를 키고 부스트를 마지막으로 최대한 전개해서 공중의 사령선의 구멍을 향해 몸을 날렸다. 먼저 선두에 서있던 에코-2의 뒤를 따른다. 에코-2가 먼저 구멍에 도착해 나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 아직 공중에 떠있는 나를 막으려는 듯 비행형들이 달려든다.

“제기랄!”

사방으로 무기를 난사하며, 어떻게 해서든 왼손을 에코-2에게 내밀었다. 에코-2는 내 손을 살며시 맞잡으며, 작게 말했다.

“……그럼, 저도 여기까지 할게.”

“……뭐?”

그와 동시에, 에코-2는 내 손을 잡아당겨 구멍 속으로 밀어넣으며 자신은 구멍에서 떨어져갔다.

“에코-2!”

“여기에 남아서 안으로 들어가는 걸 막을게. 안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행형이 지상형을 데리고 안에 밀어 넣으면 더 최악이잖아. 그리고,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도 다 알고.”

“……들었어?”

구멍을 통해 사령선 안을 향한다. 에코-2의 싸우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무선 사이로 들려오는 사격음은 끊이질 않았다.

“아니. 나한테는 안 알려주지. 어쨌든 애인인데.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에코팀을 앞으로 보내라! 하는 말과 이야기는 들었다는 말, 그리고 네 성격 생각해보면 딱 나오지.”

“…….”

“먼저 갈게.”

“……응.”

“무선, 끌 테니까.”

“응.”

지지직 거리는 소리를 끝으로 무선이 끊겼다. 나는 철컹거리며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대로 사령선의 중심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부스트를 무리하게 연발해서 더는 연료가 없다. 아까 맞은 소화액과 레이져 때문인지 장갑복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거대한 혈관인지 뭔지 어두운 관 안을 걸어간다. 더 이상 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령선의 체내라서인지 무선도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남은…… 치직, 5% 미만…….”

“……에코팀, 치직, 시간, 칙, 벌…….”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시간은 이제 15분. 시간이 없다. 강철의 관을 채찍질하며 채 얼마 남지 않은 중심부를 향해 걸어갔다.

중심부는 거대한 공동(空洞)이었다. 적은 없었다. 나는 백팩의 뒷부분을 열어, 비밀리에 여기까지 가져온 그 것을 작동시켰다.

반물질 폭탄. 인류가 개발한 최종병기. 아직 시험품이지만, 이 화력이면 이 거대한 사령선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반물질 폭탄의 봉인을 풀고, 기폭코드를 입력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셀 수도 없다. 내가 여기 오게 하기 위해서. 에코-1, 수많은 전장에서 살아온 베테랑 한 명을 여기까지 보내기 위해서. 돌아올 수 없는 편도 티켓을 끊어주기 위해서.

이제 이걸로 끝이다. 인류는 이겼다.

나는 기폭스위치를 눌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기폭코드를 입력했다.

기폭스위치를 눌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하하.”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반물질 폭탄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공동으로 통하는 수많은 통로에서, 지상형과 처음 보는 외계인들이 물밀듯이, 공동을 가득 채울 듯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삐걱거리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장갑복이지만, 무기는 작동하고 있었다.

마지막 발악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발악하기에 5분은 충분한 시간이다. 오히려 짧아서 안타까울 정도다.

나는 사방으로 총격을 가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몰려오는 해일. 총알과 폭탄과 플라즈마 캐논에도 굴하지 않고 해일은 밀어내면 밀어낼 수록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이 별에서 꺼져버려!”

지상형의 날카로운 턱이 장갑복을 찢는다. 소화액과 레이져가 온몸을 뚫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 거대한 적의 앞에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만 발버둥 치는 것뿐이다. 그것뿐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서, 나는 그렇게 발악했다.

힘을 잃고 쓰러지는 내 장갑복이, 반물질 폭탄을 강하게 후려쳤다.

그 순간 의식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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