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2일 월요일

[라한대]한 그릇 더 주세요


작성 : 2013년 3월 11일


“뱉어요! 당장 뱉어요!”
“욱.”
갑작스럽게 등 뒤에서 들어온 공격에 입에 있는 음식을 식판에 뿜어버렸다. 반쯤 씹고 침에 버무려진 쌀알이 참……. 밤길에 꼭 한 번씩 봤던……. 아직 반 이상 남아 있었는데…….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크고 강력한 감정이 몰려나온다.
“뭐 하는 짓이야!”
“그건 제가 할 말이에요! 당신 죽고 싶은 건가요?”
내 분노의 극에 다다른 표정에도, 그녀는 오히려 한심하다는 듯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딘지 성이 난 목소리로.
“살려줬더니 고마운 줄도 모르고.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려고 한 일은 아니지만 이건 예의가 아니잖아요?”
“예의가 아닌 건 그 쪽이지!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대체 당신 뭐야!”
내가 왜 초면인 여자한테 이런 행동을 당하고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건데? 딱히 원한 살 기억도 없는데. 애당초 살려주긴 뭘 살려줘. 내 밥이나 돌려줘.
그런 내 말에,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잘 들어요. 그 쪽은 지금 혼자 밥을 먹고 있었어요.”
“그게 뭐 어때서.”
“그럼 죽어요.”
“…….”
아 씨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 내 멍한 표정을 보고 코웃음을 치면서, 그녀는 가슴을 내밀고는 당당하게도 말했다.
“토끼만 외로우면 죽는 게 아니에요. 사람도 외로우면 죽어요. 그리고 혼자서 밥을 먹는 건 외로움의 극치고요.”
그럼 도대체 나는 몇 번이나 죽어야 하는 거냐. 불사신이냐.
나는 잠시 말을 고르고,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혹시 이 대학교의 미친년은 당신인가요?”
“말이 심하시네요! 목숨을 구해줬는데!”
“…….”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고 하더니, 오늘 강적을 만났습니다 아버지. 이 이상 이런 이상한 여자랑 얽히는 것은 인생의 낭비다. 그런 생각에 식판을 들고 일어나려는 내 손을 그녀가 붙잡았다.
“어딜 가는 건가요?”
“웬 미친년 덕분에 점심 식사도 날아갔으니까 정리하고 나가서 혼자 햄버거라도 먹으려고. 따라오지 마 신고할 거야.”
“그러니까 그러면 죽는다고요! 게다가 살려준 보답도 아직 안 했잖아요?”
“오히려 내가 점심값을 받아내면 몰라도 보답을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학식 밥 한 끼로 봐드릴 테니까요.”
“…….”
오늘 제대로 재수 옴 붙었네. 그냥 수업도 째고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잘까.
“그러지 마시고요! 사람 하나 살린다고 생각하시고요, 네?”
“이게 그쪽 수법인가? 혼자 먹는 사람 등쳐먹는 게. 말 그대로 등쳐먹는 거네.”
“등쳐먹다니요! 제대로 상부상조라고요!”
“상부상조?”
“그래요. 혼자 밥을 먹는 당신이 죽지 않도록 구해줬으니, 이번에는 당신이 제가 혼자 밥 먹다가 외로워서 죽지 않도록 구해줄 차례에요.”
어딘지 당당한 태도로 그녀는 묶은 머리를 살짝 털어내며 말했다.
“어차피 당신 다시 혼자서 밥 먹을 거라면서요. 그럼 우리 둘이서 먹으면 아무도 죽지 않고 오늘을 지날 수 있어요. 어때요, 상부상조 맞죠?”
“……이봐, 저길 둘러봐.”
나는 학생식당 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세상에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 그래도 아무도 죽지 않잖아.”
“그래요.”
“봐봐. 그러니까 나 좀 내버려두고…….”
“하지만 매일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당신뿐이에요.”
“아니, 그것도 아닌데.”
“아니에요. 한 번도 다른 사람과 밥을 먹지 않는 건 당신뿐이에요.”
고개를 저으며 그녀는 말했다.
“당신 말 대로 혼자 밥을 먹는다고 바로 죽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외로움이 쌓이게 돼요.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고, 아무하고도 관계되지 않고, 그렇게 살다보면 외로움이 쌓여서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지 어떤지조차 알 수 없게 되는 거예요. 세상과 분리되게 되는 거예요.”
역시 이런 타입의 인물에게 이런 개똥철학이 없을 리가 없지. 내 인생의 모토는 인생 혼자 사는 거라고. 딱히 그게 문제가 될 것도 없고. 건성으로 듣는 내 반응도 눈치 채지 못한 채 그녀는 말을 이었다.
“밥을 먹는다는 건 생명을 이어간다는 거예요. 중요한 거예요. 그리고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생명을 나눈다는 소리고요. 세상과 이어지는 거예요. 매일 같이 밥을 먹으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외로움은 힘이 되기도 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어딘지 어두웠다. 그리고 그 이유를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런 여자가 같이 밥을 먹을 상대가 있을 리가 없으니까. 외로움이 이 여자의 힘이기도 할 테니까.
“하지만……. 그게 오래 이어지면 안 돼요. 만약 같이 먹을 상대가 없다면, 언제나 제가 여기 있을 테니까요. 혼자 밥을 먹으면 죽어요.”
그녀는 웃었다.
“자, 목숨을 구해준 데다가 좋은 이야기도 들려줬으니까 같이 밥 먹죠.”
“결국 내가 사는 거지?”
“생명의 은인에게 그 정도는 해야죠?”
“…….”
내가 어쩌다 이런 여자랑 얽히게 된 거지. 혼자 밥 먹는 게 그렇게 죄인건가. 딱히 먹을 상대가 없어서 혼자 먹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변명하고 있겠죠?”
“…….”
진짜 짜증나는 여자다, 이 여자.
한숨을 쉬며 나는 다시 식판을 들어올렸다.
“그렇게까지 말했는데도 혼자 먹으려고 하는 건가요?”
“한 그릇 더 받을 거야.”
나는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밥은 나눠먹는 거라면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