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7일 수요일

[라한대]거미와 나


작성일 : 2011년 9월 9일

글쎄, 뭐라고 해야 좋을까.
아침에 눈을 뜨니 방을 가득 매운 거미줄에 칭칭 감겨있는 자신의 몸을 어렵사리 바라보니 도저히 뭐라고 해야 할지 말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온몸에 힘을 줘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걸 보면 가위 눌렸을 때랑 비슷한 것 같긴 한데, 현실성의 차이가 장난이 아니다. 그럼 진짜로 내 방에 이렇게 거미줄이 가득하고, 내가 거기 칭칭 묶여있다는 소리가 된다.
머리를 굴려보자. 도대체 이유가 뭘까. 뭐가 나를 이렇게 만든 걸까.
“그딴 거 알 리가 있냐!”
뭐지, 이건? 신종 몰래 카메라냐? 어느새 부활한 거냐? 그럼 연예인에게나 갈 것이지!
“어라, 일어나면 안 되는데?”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나는 애써 눈을 돌려봤다. 억지로 불가능한 각도로 눈을 돌리려고 하니 미간이 땅긴다.
음, 이것만으로도 현실성이 없는데 더욱 현실성이 없어지는군.
뭐라 말하기 곤란한 상대였다. 사람이라고 하자니 곤란하고, 그렇다고 거미라고 하자니 또 곤란하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다리가 많은 생물체를 무서워하는 사람과, 다리가 없는 생물체를 무서워하는 사람. 나는 후자다. 그래서 특별히 발작을 한다든지 소리를 지른다던지 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전자라면 좀 곤란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확실한 것 하나는 있었다. 얼굴과 상체 부위는 여자아이였으니까.
긴 검은 생머리. 약간 찢어진 느낌의 검은색 눈동자. 얼굴의 생김새 자체는 굳이 말하면 날카로운 느낌인데, 분위기는 그와는 정 반대로 축 쳐진 달까, 그런 느낌이다. 그녀(그것?)는 나를 보면서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저기, 그냥 그대로 다시 주무시면 안 될까요?”
“너 같으면 자겠냐?”
“음, 전 그런 상황에 안 놓여봐서 모르겠지만, 안자겠죠?”
안자겠죠? 하고 동의를 구해 봐도 곤란하다고……. 나는 눈을 빛내며 자신의 답이 맞았는지 기다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제발 부탁이니까 시야 안으로 좀 들어와 줘. 눈 아파.
“일단,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줄래?”
나도 참 착한 놈이다. 설명을 해달라고 먼저 묻다니.
“설명 해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곤란하다는 듯 헤헤 웃으면서 말한다. 아, 이 태도를 보면 나쁜 녀석은 아닐지도 몰라.
“해봐.”
“굳이 말하자면, 당신을 먹어버리려고 그러는데요.”
“……먹는다고?”
“네. 영양분 섭취로요. 아프진 않을 거예요. 당신에게 독을 집어넣어서 마취시킨 다음 먹을 거니까요. 그냥 주무시고 계시면 금방 끝날 거예요.”
아, 뭐라 할 말을 잊었습니다.
“괜찮겠죠?”
“미쳤냐!!”
나는 있는 힘껏 외쳤다. 느낌표가 두 개나 붙은 건 그런 의미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계속해서 외쳤다.
“아픈거안아픈거가중요한게아니잖아이정신나간놈아너같으면산채로뜯어먹는다는데아예그렇습니까맛있게드세요오늘의아침정식은17년묵은인간남자아이입니다하고말하리이거당장못풀어사람살려요여기사람이있어요 사 람 살 려ㅡ!”
“아, 안돼요! 그렇게 흔들어대면…….”
“아이고 삭신이야!”
“……그렇게 아파요.”
온 몸이 묶인 채로 흔들어대니 관절이고 묶인 곳이고 안 아플 리가 없다. 내가 얼굴을 찡그린 사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정체불명의 괴물은 내게 다가와서 내 얼굴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많이 아프세요? 마취라도 시켜드릴까요?”
“잠들면 먹어 버릴 거잖아!”
“어쩔 수 없어요. 저도 먹고 살아야한다고요.”
“내가 죽잖아!”
토라진 얼굴로 입을 삐쭉 내민다. 귀여워 보이긴 하지만, 지금 날 산채로 잡아먹겠다고 선언하는 생명체에게 그런 감정을 느낄 리는 없다. 너 같으면 느끼겠냐.
“저도, 특별히 당신을 먹는다거나 하고 싶지는 않다고요…….”
“갑자기 그런 말 해봤자 별로 안 믿어지거든요?”
“진짜에요!”
“뻥치시네! 방금까지만 해도 그렇게 당당하게 먹겠다고 선언했으면서!”
녀석은 어느새 눈물까지 그렁그렁한 채로, 우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안 그러면 사람이 될 수 없는걸요!”
“……뭐?”
내가 상황파악도 못하고 그렇게 말하는 사이, 녀석은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예전부터, 흑, 이 집에 살았어요. 당신이 청소도 안하고 살아서 살기는 좋았죠. 다른 집에서는 거미라고 죽이려고 들거나 하니까요. 훌쩍, 나름대로 오랫동안 당신하고 잘 살았어요. 모기 같은걸 먹거나 하면서. 그러다가 문뜩 생각했어요. 나도 사람이 되면, 당신처럼 즐겁게 살 수 있을까 하고요. 매일 이 좁은 방이 아니라 어디론가도 나가보고, 뭔가 재밌어 보이는 책을 보거나, 빛이 나는 상자를 만지거나……. 그리고, 당신에게 답례도 하고 싶었고요. 여기서 살게 해줘서 고맙다고.”
“……그래서, 나를 잡아먹고 사람이 되겠다는 거?”
“어제 밤, 잠에서 깨니까 이렇게 커져있더라고요. 그때 머릿속에 뭔가 말이 들려왔어요. 사람을 백 명쯤 먹으면, 완전하게 사람이 될 거라고요. 역시 무서워서 그러진 않으려고 했지만, 이렇게 커지니까 모기나 그런 걸로는 배가 안찬다고요. 당신 정도 되는 크기가 아니면…….”
“……사람이 되면 뭘 하게?”
녀석은 눈물을 닦고, 위를 보면서 곰곰이 생각한다. 그리고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일단, 당신에게 고맙다고 해야겠죠?”
“날 먹고?”
“네. 당신을 먹고요.”
“……음.”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눈을 빛내는 녀석. 나는 눈짓으로 귀를 가까이 대라는 신호를 보냈다.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웃으며 녀석은 귀를 입 가까이 댔다. 나는 있는 힘껏 외쳤다.
“날 먹으면 나에게 어떻게 고맙다고 할 건데!!”
“꺄아아아아악! 아, 그러고 보니 아차!”
지능지수는 거미 그대로인가. 한숨이 다 나온다.
“어, 어쩌죠? 지금 배고파서 견딜 수가 없는데, 하지만 당신을 먹으면 고맙다고 할 수가 없고……. 으으…….”
머리를 싸매고 진심으로 고민한다. 나는 말했다.
“이거 풀어주면, 밥 해줄게.”
“밥, 이요?”
“식사. 먹을 거.”
“지, 진짜로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신이 나서 거미줄을 끊는다. 나는 몸이 자유로워지자, 몸을 두어 번 움직이고는 부엌을 향했다.
“아무거나 잘 먹지?”
“아, 아마도요!”
기쁜 얼굴, 기쁜 목소리로 녀석이 말한다. 방금 전 나를 잡아먹으려고 했던 녀석에게 밥을 주다니. 집에 어디 독극물 없나.
하지만,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은 고마웠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넓은 집에 혼자 사는 게 싫었다. 정리하는 것도 싫었다. 뭐랄까, 좀 그래서. 그러다보니 거미줄 하나가 방구석에 있는 것도 내버려두고 있었다.
뭐, 알든 모르든 군식구였고,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려고 사람이 되려고 하는 녀석이다. 날 먹으려고 했지만, 일단 악의는 없어 보이고.
그럼 잠깐 동안은, 이 녀석을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해보자.
“아, 방에 있는 거미줄 다 치워라.”
“에ㅡ이.”
“밥 안준다?”
“먹을 거예요?”
“누구한테 고맙다고 할 건데?”
“아차!”
……얼마나 같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르칠게 산더미 같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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