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9일 금요일

[라한대]손만 잡고 잤을텐데

작성 : 2012년 3월 12일



“무, 무슨 소리야!”
“그, 그러니까!”
세연이는 얼굴이 완전히 빨갛게 변한 채, 반 아이들이 전부 바라보는 데에도 말해버렸다.
“네, 네 아이를 가져버렸단 말이야…….”
…….
“……네? 뭐라고요?”
영문을 모르겠어서 한 내 질문에 반 아이들의 비난이 집중된다.
“이런 인간쓰레기!”
“여자한테 그런 짓을 하고 뭐라고?”
“자살해! 유서에 내 이름 쓰고!”
“우우우!”
“잠깐, 잠깐 기다려! 기다리라니까!”
약속이라도 한 듯 나에게 날아오는 야유와 각종 사물들. 필통과 교과서부터 시작해서 손에 집히는 대로 잡아 던지는 공격을 막으며, 나는 애써 외쳤다.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이야!”
“아, 아무 일도 없었다니…….”
그리고 내 말에 세연이의 표정이 부끄러운 듯, 화난 듯 하던 표정에서 놀란 듯, 절망한 듯 한 표정으로 변한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하고…….”
세연이의 눈에서 뚝, 하고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시연이는 자신이 울기 시작했다는 걸 눈치챘는지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훌쩍이기 시작했다.
“흑, 으흑, 그, 그런 짓을 하고…….”
“거기 경찰이죠?”
“여기 강간마가 있어요.”
한 두 명씩 핸드폰을 꺼낸다. 세연이의 행동에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지만, 겨우 정신이 들었다.
“잠깐, 자세연! 어제 내가 뭘 어떻게 했다고 그러는 거야!”
“흑, 그, 그런 말을 해놓고…….”
조금씩 좁혀지는 포위망이 정말 무섭다. 이제는 뭘 던지는 대신 손에는 각종 흉기를 들고 있다. 사회 정의를 위해 힘쓰는 우리 반이 정말 좋다.
“어, 어제 네가 말 했잖아. 손만 잡고 자겠다고…….”
“그래! 손만 잡고 잤잖아!”
내 외침에도 세연이는 계속 훌쩍였다.
“소, 손만 잡고 잔다니……. 그, 그런 말을 어떻게 그렇게, 훌쩍,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어? 내가, 흑, 얼마나, 우으, 무서웠는지 알아?”
“아니, 난 내 말을 지켰다고! 네가 무서워한 건 알아! 하지만 같이 잘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정말, 정말로, 아무 짓도 안하고 손만 잡고 잤잖아!”
“그러니까 애가 생긴 거잖아!”
“……뭐?”
내 얼빠진 표정에도 신경쓰지 않고, 세연이는 눈물을 닦으며 최대한의 힘을 내서 나를 노려봤다.
“어, 엄마한테 들었단 말이야! 남자랑 여자가 손잡고 자면, 황새가 애를 물어다 준다고……. 너, 너도 알 거 아니야!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손만 잡고 잔다’고 하고, 설마 했더니 진짜로 손을 잡고 자고……. 너, 너무하잖아! 아무리 사귀고 있다고 해도, 어떻게…….”
“…….”
뭐라고 말해줄 기운도 안 났다. 나는 다시 훌쩍거리기 시작하는 세연이에게서 고개를 돌려 나랑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그래서, 나 유죄냐?”
“음, 사형이다.”
“어떻게 저런 애한테 정말로 손을 잡고 잘 수가 있어? 이 악마!”
“인간쓰레기!”
“자살해! 유서에 내 이름 쓰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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