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9일 금요일

[라한대]그 동굴 속에는

작성 : 2012년 1월 22일


“좀 잘 좀 받쳐봐!”
“무, 무거운 걸 어떻게 합니까?”
내 어깨 위에 올라 타있던 교수님은 흔들거리는 내 다리가 불만스러운지 발에 지긋이 힘을 주었다. 악! 교수님! 거기에 힘을 주면 더 흔들리지 말입니다! 내 쇄골!
“정말, 남자라면 좀 튼튼한 몸을 가져야하는 거 아니야?”
교수님은 안경을 추켜올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게 불만이셨으면 좀 체격 좋은 선배님들이랑 같이 오시지 그러셨습니까!”
“하지만 다들 바쁘다고 했단 말이야. 한가한 건 너 뿐이었고.”
“애당초 문과생에게 뭘 바래요! 끄악! 발에 힘주지 마세요! 아, 알겠으니까, 잡담은 좀 나중에 하면 안 될까요……. 다리가 후들거려요…….”
“후들거리긴 뭐가! 내가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고!”
그러니까 제발 투덜거리는 건 나중에 하시고 그 석판 좀 읽으시라고요!
“읏챠.”
후들거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지탱하며 버티고 서있자, 교수님은 겨우 석판의 해독이 끝났는지 내 어깨를 걷어차며 바닥에 깔끔하게 착지했다. 물론 나는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교수님은 힐끔 나를 내려 보며 한숨을 쉬었다.
“나약해서는. 그렇게 약해서 앞으로 조사는 어떻게 진행하게?”
나는 바닥에 엎어진 채로 후들거리는 다리와 욱신거리는 어깨를 주물거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교수님을 올려다보았다.
교수라고 하면, 특히 그것이 고고학 교수라고 하면 보통은 나이 든 할아버지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다른 교수들은 대부분 그렇고. 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이 교수님은 참으로 독특한 사람이다. 어느 정도로 독특하냐하면, 문과에는 있을 리 없을 거라고 생각한 10대 교수거든. 아니, 농담하는 거 아니다.
장세지 교수. 나이는 내가 알기로는 아마 15살. 4살 때 이미 5개 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었고, 7살 때는 고대 문자 해석에도 참가했다나 뭐라나. 그 천재적이다 못해 한숨이 나올 것 같은 두뇌 때문에 10살에는 미국 애리조나 대학에서 교수 자격을 취득해서 지금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뭔가 대단한 대학에 다니는 것 같은데, 사실 별 이름 없는 대학이다. 아무래도 유명 대학에서도 천재라고는 해도 15살짜리 여자애를 대학 교수라고 뽑아 쓰기는 뭐해서 우리 대학 같은 곳에 들어왔거든.
그래, 잘못 말한 거 아니다. 거기다 이 양반, 여자다. 키는 기껏해야 내 가슴팍. 아직 성장할 구석이 다분하지만 역시 천재는 천재인지, 얕볼 수 없는 인물이다. 교수님은 허리까지 오는 치렁치렁한 머리를 한 번 흩어내고는, 나를 내려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자네, 이번 발굴이 실패하면 학점이 어떻게 될지는 알고 있겠지?”
까짓것 학고 맞고 한 학년 꿇을 걸.
지금 여기는 중동의 어느 동굴 안이다. 왜 어정쩡한 대학에서 학고 위기를 맞이한 내가 이런 곳까지 조사를 오게 됐냐 하면, 전부 이 양반이 자기가 이런 찌그러기 대학에서 버틸 수 없다면서 대발견을 해서 학계에서 인정을 받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물론 좋다구나 하고 교수님을 따라 방학에 중동까지 원정을 와서 무임금 봉사를 할 학생은 없었고, 교수님은 마침 자신의 수업 때문에 학고가 간당간당한 나를 채온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교수님. 석판에 뭐라고 써져있덥니까?”
나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교수님은 약간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홱 돌리고는 말했다.
“역시 문헌에서 읽었던 대로야. 이 동굴 어딘가에 그 램프가 있어.”
그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 차있었다. 나는 플래시 라이트에 의존하며 먼저 걸어 나가는 교수님을 따라가며 물었다.
“그런데 진짜로 이것만 발굴하면 학계의 대발견이 될 수 있는 거죠?”
“물론이지!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교수님은 기가 막히다는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악! 플래시! 내 눈!
“잘 들어. 기본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구전설화들과 문헌설화들은 모두 현실에 기초하고 있어. 원시단계의 신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정도는 기억하겠지?”
역시 아는 걸 떠들기 좋아하는 건 교수의 직업병인걸까. 교수님은 다시 어두운 인조 동굴을 비추며 걸어나가면서도 설명을 끝내지 않았다.
“아라비안나이트, 천일야화는 사산왕조 후기에 당대 전해지던 다양한 지역과 국가의 민담과 전설을 모아낸 것이 원전이야. 거기에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오면서 다시 이야기들이 추가되고 도태되었지. 그런데 자네, 아라비안나이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가 뭐야?”
갑자기 다시 돌아보며 플래시를 눈에 비추어 나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그, 그야 역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틀렸어! 멍청아! 그러니까 학점이 그 모양이지!”
교수님은 진심으로 화를 내며 외쳤다. 동굴이 다 울린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가 뭐냐면서! 난 그냥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걸 댄 것뿐이라고!
“바보야! 아라비안나이트 하면 역시 알라딘과 요술램프잖아! 넌 디X니 만화영화도 안 봤어?”
쓸데없는 데에서 애 같기는. 다행히 이를 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알라딘의 이야기는 유럽으로 이야기가 전해지는 과정에서 추가된 이야기야. 흔히들 아랍인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원전에서는 중국인이지. 상상속의 중국이지만, 당시 실크로드를 따라서 실제로 중국과의 교류는 활발했어. 아마 알라딘의 원전이 된 인물도 그렇게 온 거겠지!”
“그런 건 다들 알고 있는 거 아닙니까? 달리 그걸 밝혀낸다고 해도 학계에 충격이 될 것 같지는…….”
“이 바보야! 그게 아니야! 요술램프라고 요술램프!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요술램프! 그게 진짜로 있다는 걸 밝혀내면 학계는 대충격일걸!”
“…….”
이 여자 교수 맞죠? 하긴 수업시간에도 ‘과거 기록은 모두 옳아! 그러니까 마술이나 마법도 실제로 있었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잊혀진 기술로 보는 게 옳다고!’ 하고 주장하는 괴짜였지. 솔직히 유명 대학에서 안 데리고 간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그런 점 아닐까.
“어라.”
그런 생각을 하다 멈춰선 교수님에게 부딪힐 뻔 했다. 다행히도 그 전에 멈춰 섰지만. 박았으면 또 난리난리를 쳤겠지.
“무슨 일이세요?”
“아니, 지금 발에 뭔가 꾹, 하는 느낌이 났는데?”
“…….”
나는 책망하는 눈빛으로 교수님을 바라봤다. 교수님은 내 엄한 표정에 움찔 하고 놀라더니, 역으로 화를 내며 외쳤다.
“어, 어쩔 수 없잖아!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 걸!”
“그러니까 제가 앞에 선다고 했잖아요! 아니 천재라는 인간이 그렇게 주의력이 산만해서 어떻게 합니까?!”
“처, 천재랑은 상관없다 뭐! 너무 똑똑해서 사소한 건 신경 쓰지 않는 거다 뭐!”
교수님은 참으로 꼬운 표정을 지으며 양 손을 허리에 댄 채 민무늬토기 같은 가슴을 내밀었다. 에이씨! 이럴 때가 아닌데! 나는 재빨리 교수님의 허리를 잡아 든 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제발 함정 좀 신경 쓰라고요! 그보다 여기 판 놈들은 왜 이딴 쓸데없는 함정을 만든 거야!”
“보라고! 함정이 있다는 건 여기 뭔가 대단한 게 숨겨져 있다는 뜻 아니겠어?”
“알았으니까 팔다리 버둥거리지 마요! 끄악!”
온다! 온다! 등 뒤에서 거대한 뭔가가 굴러오는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는 구르는 돌 함정이구나!
고개를 돌릴 틈새도 없었다. 진짜 젖 먹던 힘까지 다 하지 않으면 쥐포가 되어버린다. 다행히 이미 익숙해졌는지 교수님은 나에게 옆구리를 잡힌 채 플래시를 내 진로로 비추어주고 있었다.
“위에 막대기!”
“으랏차!”
교수님이 외치는 대로 눈앞에 목을 걸기 딱 좋을 높이로 배치된 막대기를 피하기 위해 허리를 숙이며 달렸다. 달리는데 집중해야해서 앞을 살필 틈이 없거든. 등 뒤에서 굴러오는 돌 소리와 함께 파삭 하고 나무 막대기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연대측정하면 여기가 언제 적 유적인지 알 수 있는데…….”
“그게 중요한게 아니거든요?!”
“밑에 함정!”
“어기어차!”
이번에는 사람 하나 빠지기 딱 좋을 넓이의 함정이 파여 있다. 보나마나 밑에는 창날이 서있겠지. 달리던 스피드를 살려 그대로 뛰어넘는다! 돌덩이가 함정에 빠지지는 않나 기대했지만, 소리를 들어보면 아닌 것 같았다.
“좌회전!”
“허업!”
달려가던 스피드 그대로 왼쪽으로 꺾어지는 벽면을 반쯤 타고 오르며 방향을 전환한다.
“우회전!”
“흐, 흐어억!”
슬슬 숨이 차오르지만 멈추면 죽는다!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꺾는다!
“……수직강하.”
“……네?”
순간 생각지도 못한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설마하니…….
“흐꺅!”
역시나 떨어지고 있잖아! 아, 이게 도대체 몇 번째냐.
풍덩!
“푸하! 어푸!”
“사, 살려! 사람 살려!”
겨우 물 밖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자, 교수님이 어떻게든 떠오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우이씨! 나는 재빨리 교수님의 목덜미를 잡은 다음 전속력으로 헤엄쳤다. 왜냐하면 우리 등 뒤로 쫓아오던 돌덩이가…….
푸웅더엉!
이렇게 떨어질 테니까.
나는 등에 매고 있던 물에 뜨는 특수 가방을 퍼덕거리는 교수님에게 넘기고 물 위에 떠올랐다. 그리고는 교수님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또 떨어졌잖아요! 솔직히 말해 봐요! 아까 석판에 뭐라고 새겨져 있었어요?!”
“그게, 그러니까…….”
“…….”
“으으……. ‘발밑도 살펴보지 못하는 자는, 아무리 해도 넓은 하늘을 볼 수 없으니.’”
“척 봐도 이번에도 함정 이야기였구만! 도대체 그 머리로 어떻게 교수직 딴 거예요!”
“시, 시끄러워! 교수님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존스 교수님은 그런 거 다 뻥이라고 했다고!”
“다 됐고, 다음번부터는 절대로 제가 앞에 섭니다. 절대로!”
“싫어! 감히 어디 학생이 교수의 앞에 서려고 그래!”
아, 진짜 속 터진다. 그런데 더 큰 문제점이 있다. 나는 근대 교육론이 어쩌니 교권이 땅에 떨어졌느니 어쩌니 하는 말을 외쳐대는 교수님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는 겁니까?”
“…….”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간다는 걸 깨달았는지, 교수님은 아직 용케도 쓰고 있는 안경을 추켜올리고는 한쪽 팔을 들어 올려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
“…….”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칼을 꺼내 가방에 작대기를 하나 더 그었다. 이걸로 작대기 다섯 줄 완성.
“방학도 다 끝나 가는데 우리 집에는 언제 가요!”
“요술램프를 찾기 전 까지는 못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