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0일 토요일

[라한대]벚꽃 엔딩

원본 : http://lightnovel.kr/one/383804
작성 : 2012년 4월 8일


팔랑거리며, 벚꽃 잎이 바람에 마치 눈이 오듯 내려온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김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 하고 숨을 내쉬었다. 벚꽃 잎 하나가 내려오다 입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이씨. 퉤퉤 하며 손가락으로 꺼내는 사이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맛있어?”
“맛있을 리가 있나.”
“그럼 왜 먹어?”
“안 먹었어.”
“하지만 먹었잖아.”
말을 말아야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걸로 대화 종료를 선포했다. 어느새 다가온 모란이는 내 행동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먹었잖아?”
“얌마, 아까 거기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건 ‘나 안 먹었어’가 아니라 ‘말을 말아야지’라는 뜻이야.”
“……작년에도 그랬지만, 이해불능.”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멍한 눈빛으로 모란이는 나를 바라봤다. 그나마 여기까지 이해했다는 것만 해도 정말 장족의 발전이기는 하지만, 그래봤자 이 모양이니까 기쁘진 않다.
그래, 그러고 보니 떠올랐다.
작년 벚꽃이 피던 무렵 만났을 때부터, 그 많은 일을 겪어가며 벌써 1년이나 지났구나. 마침 우연히도 그때랑 상황도 똑같았다. 이것 참 느낌이 묘하구만. 그리고 그렇다는 건…….
아직 손가락에 붙어있는 벚꽃 잎을 바라보는 사이, 모란이는 겨우 떠오른 듯 말했다.
“그보다, 나 이제 3학년 선배로 전학. 존댓말 해야지.”
“…….”
이 어리버리하고 말없는 선배가 오늘로 이 학교를 떠난다는 소리다.
그래서인지 모란이는 나를 어딘지 기대감에 부푼 눈동자로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잔인할 정도의 미소와 함께 말했다.
“존댓말을 들으려면 존경받을 짓을 하라고 했잖아.”
“……너, 건방져.”
“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처음 볼 때도 이랬었지.”
모란이는 내 말에 그러고 보니 그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한 번 웃으며 말했다.
“처음 볼 때도 어리버리 했었고.”
“……화낼 거야.”
볼을 부풀리는 반응이 귀여워서 그냥 웃었다.
작년 이맘때, 그렇게 입에 들어간 벚꽃 잎을 빼내는 나에게 지나가던 모란이는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우연한 얼빵한 여자와의 만남과 우연한 대화였을 뿐,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재수 없게도 반장으로 뽑혀 처음 들어간 학생회실의 학생회장석에 앉아 있던 게, 그 얼빵한 여자였다는 거다. 사실 진짜 실수는 그냥 멍한 눈으로 나를 보던 모란이에게 ‘아, 아까 벚꽃 잎 맛있냐고 물었던 그!’ 하고 외친 거였지. 다른 반장들도 있는데.
모란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너, 서기.”
“네?”
“너 서기. 앞으로 나를 보좌해.”
“싫은데요!”
“싫으면 시집가.”
“…….”
“농담.”
하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로 나는 서기 자리를 꿰차고, 정신을 차리니 모란이의 보조 같은 역할이 되어버렸다. 때려치우겠다고 해도 받아들여주지도 않고, 무엇보다 이 여자는 정말 얼빵했다. 아무리 학생회장이 꿔다놓은 보릿자루라고 해도 이 나이 먹도록 이렇게 얼빵하면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성적은 좋은데, 일상생활에서는 답답하다 못해 얼빵해보이는 그 여자를 차마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딱히 정의로운 성격이라서 보다는, 왜일까.
아무튼.
어쨌든 좋든 싫든 비서 같은 역할로 모란이의 곁에서 도와주고, 그러면서 ‘너같이 얼빵한 여자를 선배 취급하며 존댓말 할 수는 없다! 너는 지금부터 그냥 모란이야!’ 라고 선언하고, 티격태격하고,
알고 보니 부잣집 아가씨에, 꽤나 막장스러운 가족관계를 가졌다는 것도 알게 되고, 그것 때문에 왠지 내가 열이 받쳐서 가족들과 싸우기도 하고,
바다에 놀러가기도 하고, 축제 준비도 하고, 뭐 그렇게 지냈던 1년.
어느새 1년이나 지났구나, 그게. 더 오래 된 것 같은데.
“아무튼, 그래서 이제 전학이야.”
아쉽다는 듯, 아니면 시원하다는 듯, 모란이는 그냥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다시 선배라고 불러. 존댓말 하고.”
“싫은데.”
“……끝까지 건방져, 너.”
어느새 다가온 비싸 보이는 검은 차가 문을 열었다. 나랑 이야기하기 위해서 잠시 걷도록 해준 모양이었다.
“이제 안녕이네.”
“…….”
말없이 서있는 나는 모란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놀랐다.
처음보는 환한 얼굴로, 모란이는 웃으며 말했다.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해?”
“응?”
“기대해. 엔딩 이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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