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9일 금요일

[라한대]옥탑방의 신

원본 : http://lightnovel.kr/one/372435
작성 : 2011년 11월 26일


월세 10만원. 버스 정류장에서 15분 거리 언덕 위의 3층 상가 건물 옥상의 옥탑방. 누수 있음. 보일러 고장. 관리비 5만원에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는 별도. 이것이 어제까지 내가 살던 집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사람 살 곳이 아니었다.
밤에 대학교에서 돌아와 문을 열면, 캄캄한 방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불을 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당연히 알 수 있다. 뭐가 이 안에 사는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당장 화장실로 뛰어가고 싶어지지만 자는 도중에 입으로 들어간 적도 있다. 다리가 네 개보다 많은 모든 생명체에 대해서 막대한 증오심을 가진(그래서 오징어랑 문어도 안 먹는다) 나로서는 세스코라도 부르고 싶지만, 가난한 대학생에게 그럴 돈은 없다. 관리비는 꼬박꼬박 받아가면서 비가 오면 그릇이 필요하고, 보일러는 탱크 엔진이라도 되는지 굉장한 소음을 울리면서 방 온도를 1도도 올리지 못한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건 꿈속에서나 해봤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다르다.
어젯밤, 외계인이 나에게 선물을 주고 갔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이야기 하면 내가 합법적으로 투약해서는 안 될 약이라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어젯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버스 막차를 타고 집에 들어와 한 겨울에 찬물로 고양이세수를 하고 이불 깔고 누운 순간, 천장이 무너졌다.
드디어 구멍 숭숭 뚫린 이놈의 집뚜껑이 가라앉았구나. 싼 방값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울까. 눈을 뜨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 눈 앞에는, 어릴 적 봤던 아담스키형 UFO가 코앞에 둥둥 떠 있었다.
“…….”
헛웃음도 안 나왔다.
“그 안의 원주민, 괜찮으신가요?”
그리고 이미 UFO에 충분히 놀라서, 딱히 그 이상 놀라지도 않았다.
금발, 바디슈트, 미녀. 끝.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오며 나에게 사과하고는 사태를 설명했다. 지구로 관광차 놀러왔지만 그녀가 타고 온 항성간 이동이 가능한 UFO와 기타 각종 기물을 노리고 미국과 러시아와 중국과 기타 떨거지 나라 15개국 정도의 정보부가 추적하고 격추해서 정보를 뜯어낸 다음 외계인 고문을 하려고 했고, 그녀는 도주하다가 급커브를 돌다 실수로 충돌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하마터면 죽일 뻔해서 미안하고, 집 부순 거 미안하고 우주법상 고쳐줘야 하지만 지금 좀 바쁘다면서 나에게 뭔가 요상한 물체를 던졌다. 마이크랑 유사했다.
“거기 버튼을 누르면서 원하시는 걸 말하시면, 아마 그대로 이루어질 거예요. 합의금이라고 생각하고 편히 받아주세요. 그럼!”
“…….”
그리고 그녀는 아담스키형 UFO에 타서는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내 손에는 마이크를 닮은 물체 하나만 남긴 채.
꿈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구멍 뚫린 천장 때문에 스며드는 찬바람이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일단 천장을 막는 게 우선이었다. 물론 그 새벽녘에 어디 미장이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부른다고 해도 내가 거기서 편히 잘 수도 없을 것이었다. 열심히 사는 고학생에게는 달리 머물 곳도 없다.
그래서 나는 속는 셈 치고, 그 외계인 금발 바디슈트 미녀가 알려준 대로 마이크의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천장이여, 고쳐져라!”
그리고 그리 되었다.
반쯤 장난으로 말했던 나는 튀어나온 눈알을 줍느라 바빴다.
그리 하야 어제 천장이 날아갔다는 흔적조차도 없는, 멀쩡한 집에서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집의 크기는 거의 3배로 늘어나있었다. 방도 적절히 나누어져 꿈에도 그리던 3LDK를 달성했다. 코딱지만 한 원룸 자취방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내용물. 지금 마루에는 42인치 최신형 벽걸이 TV가 걸려있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소파도 놓여 있다. 반찬 몇 통 들어가면 꽉 차고 시원해지지도 않던 냉장고는 냉동실과 냉장실이 분리된 대형냉장고로 변해 있었고, 보일러는 모기 우는 정도의 소리를 내며 한겨울의 방안을 후끈후끈하게 데우고 있었다.
“으하하하하하!”
마지막으로 나는, 영화에서나 보던 모피코트를 입고 만들어낸 돈다발을 방 안에 뿌리면서 호쾌하게 웃고 있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인생에 한방 따위는 없다고. 열심히 사는 게 최고라고. 죄송합니다, 아버지. 하지만 말할게요. 아버지가 틀렸어요. 세상은 한방입니다. 로또라고요.
나는 휘파람을 불며 즐겁게 TV를 시청했다. 아담스키형 UFO가 월세 10만원, 관리비 5만원의 이 낡아빠진 자취방 뚜껑을 따준 대가로 나는 인생의 승자가 됐다. 아니, 승자 레벨도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래, 나는 자취방의 신!
까짓것 대학은 필요 없다. 아르바이트도 그만 둔다. 열심히 살아온 만큼, 나는 인생을 즐기겠다.
지나가는 바퀴벌레. 마침 배고프던 참에 잘 됐다. 먹으려는 거 아니다. 나는 우아한 자세로 마이크를 잡고는, 바퀴벌레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퀴벌레여, 미녀 메이드가 되어라!”
그리고 그리 되었다. 역시 인생의 승자라면 메이드지.
그 증오스럽고 증오스럽던 바퀴벌레 한 마리가 변한, 내 취향에 딱 맞는 검은색 생머리가 어울리는, 단정한 미니스커트와 가슴이 노출되는 메이드 복을 입은 미녀 메이드를 바라보았다. 바퀴벌레……라고 자꾸 말하면 떠오르니까, 메이드는 당황한 듯 주위를 둘러보다, 나를 당황한 눈치로 쳐다봤다. 나는 턱으로 부엌을 가리키며 말했다.
“식사.”
“알겠습니다, 주인님.”
전직 바퀴벌……주제에 이해력이 빨랐다. 마이크의 효과인지 바……메이드는 즉시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는, 냉장고에서 찬거리를 꺼내 빠르게 요리를 해서 내놓았다. 맛도 일품이었다. 전직을 떠올리는 걸 관두면, 아무래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어떠십니까, 주인님?”
공손하게 물어보는 메이드 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맛있었어.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주인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메이드 양. 아, 좋다. 그래, 나는 떠오른 바가 있어 웃으며 말했다.
“잠시 외출할 테니, 집을 청소하면서 기다리도록.”
“네, 알겠습니다.”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는 메이드 양.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집의 문을 열었다. 이렇게 된 김에, 새끈한 자동차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문을 열자 평소와도 같은, 탁 트였지만 참으로 별 볼일 없는 달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음, 하지만 기분이 나쁠 리가 없다. 나는 이제 인생의 승자니까!
만세를 부르던 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 번째, 집이 3배로 커졌으면, 옥상보다 넓다. 하지만 나는 옥탑방을 나와 옥상을 딛고 있다.
두 번째,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을 터인데 춥다.
“…….”
나는 몸을 둘러보았다. 모피코트, 없다. 금목걸이, 없다.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던 지폐, 없다. 마이크를 들어 올려 바라봤다.
‘한정된 지역에만 효과를 발휘합니다.’
요컨대, 이런 거다.
금발 바디슈트 미녀 외계인은, 집뚜껑을 박살내버리셨다. 수리는 해줘야하는데, 쫓기는 상황. 그녀는 나에게 이 마이크를 선물했다. 하지만 그건 어떤 배상이라기보다는, 집 수리용구 정도…….
“…….”
즉, 나는 이 월세 10만원, 관리비 5만원 옥탑방, 자취방 안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이지만……. 문을 나가는 순간…….
어떻게 하지. 오늘 수업. 어떻게 하지. 알바 관둔다고 전화 해버렸는데.
그보다.
“주인님, 핸드폰 놓고 나가셨는데요…….”
문 뒤에서 들리는 메이드 양의 목소리와, 문이 열리는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려옴에도, 나는 고개를 도저히 돌리고 싶지가 않았다.

댓글 1개:

  1. 방 안에서만 작동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골 때리는 전개가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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