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9일 금요일

[라하대]오빠는 동생이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원본 : http://lightnovel.kr/one/370805
작성 : 2011년 10월 29일


“오빠, 저기, 부탁할게 있는데…….”
갑작스러운 동생의 말에, 나는 컴퓨터에서 눈을 돌려 동생을 바라봤다. 애써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얼굴에는 귀찮은 기색을 가득 채운 채. 나는 퉁명스럽게 물어봤다.
“뭔데?"
동생은 내 퉁명스러운 말투에 더욱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러니까…….”
“도대체 뭐길래 그래? 컴퓨터 쓰려는 거냐? 써. 짧게 하고.”
우리 집의 컴퓨터는 내 방의 한 대 뿐이기에, 동생은 컴퓨터를 쓰고 싶으면 나에게 부탁한다. 때문에 나는 당연히 동생이 그런 이유로 나에게 ‘부탁’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집은 모르겠지만, 내 동생은 늘 저렇게 소심한 태도였으니까.
하지만 동생이 평소보다 소심해 보인다고 생각한 건, 틀린 게 아니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오빠도 남자잖아……?”
“그럼 내가 여자겠냐.”
오늘따라 동생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겠기에, 나는 결국 짜증의 기운을 더 크게 했다. 동생은 혼이라도 난 듯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아, 아니야 오빠.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그러니까…….”
“도대체 뭐길래 그래? 좀 똑바로 좀 말해봐! 맨날 그런 식이니까 다들 짜증을 내는 거라고!”
결국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말해버렸다. 동생은 정말로 혼이 났다고 생각했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미, 미안해…….”
“나 참, 그래서, 뭐야? 이렇게까지 하고 별 일 아니면 진짜 화낸다?”
“응, 알았어.”
동생은 울먹거리며 말했다.
“사, 사실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우리 집의 가족 사정은 흔히 볼 정도로 간단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복잡하고 보기 힘든 이야기도 아니지만.
몇 년 전 아버지가 재혼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꽤 지난 뒤였기에, 나도 별 말 없이 수긍했다. 아버지가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 웃는 얼굴로 잘 됐다고, 새엄마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는 나에게, 아버지는 머리를 긁적이며 중요한 부분을 얼버무렸다.
중요한 부분은 새엄마를 처음 보는 날에 밝혀졌다. 인사를 하러 만난 식당에서, 새엄마의 옆자리에는 나보다 한두 살 정도 어려보이는 여자애가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
이런 자리에서 흔히 보이는 긴장한 태도 이상으로, 그 여자애는 어디 벌이라도 서는 지 움츠러든 채로 우물쭈물하며 앉아있었다. 길게 기른 검은 머리와 두려운 빛이 가득한 커다란 눈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뭐라고 할까, 주워온 새끼고양이 같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
위험한 말이지만, 첫 눈에 반했다.
들어보니 새엄마의 옛날 남편은 완전 망나니로, 가정폭력이나 그런 것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인간말종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남편 곁에서 매일 얻어맞고 살다보니, 어른인 새엄마도 힘든데 그 여자애는 얼마나 고통 받았겠는가. 덕분에 지금도 늘 움츠러들고, 소심한 성격으로 굳어졌던 모양이었다. 결국 남편의 죽음으로 둘만 살아오던 새엄마와 그 애는 아버지를 만나고, 행복하게 지낸 끝에 결혼까지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두 분은 어두운 기색도 없이 즐겁게 말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여자애는 겁먹은 태도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때 결심했다. 이 상처받은 여자애를 위해서, 멋진 오빠가 되어주자고.
이렇게 말하면 멋지게 보이겠지만, 사실 살다보면 여러 문제가 있는 법이다.
일단 남자만 살던 집에 여자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들어왔다는 것부터 곤란하다. 그나마 한 명은 어른이고 어쨌든 새엄마니까 그렇다고 쳐도, 첫 눈에 호감을 가졌던 여자와 지내는 건 심장에 부담이 많이 간다. 그야 처음에는 오오, 양동생 오오! 러브 코메디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분위기! 그런 상황! 하고는 불타올랐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음, 돌 맞을 이야기지만 흔히 나오는 “꺄악!” “아차, 샤워 중이었구나! 미안해♡” 하는 이벤트나, “오빠, 그만 일어나!” “으음……. 5분만 더…….” 같은 이벤트를 겪어오기도 했고. 하지만 문제는 현실과는 그런 이야기랑은 다르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만면에 미소를 짓는 나와는 반대로, 여동생의 표정은 급격하게 굳어갔다. 사실 생각해보면 기분 나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 안 그래도 그런 일도 있었는데, 거기에 오빠라는 인간이 늑대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으헤헤헤 하고 있으면, 내가 여동생이라도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브라콘이 아니라면.
그리하여, 나는 반성했다. 그리고 마음먹었다. 평범한 오빠가 되자고. 그래서 애써서 마음을 억누르고, 귀찮은 척을 하고, 주변에 여동생이 있는 친구들의 의견을 받아가며 평범하게 대한 결과, 동생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평범, 해졌다면 평범해졌다고 느꼈는데…….
뭐, 그리하여 대충 반년 정도 흐른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 음. 그래. 그렇구나.”
그 이상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기에, 나는 겨우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침대로 자리를 옮겨, 동생에게도 앉으라고 손짓으로 권했다. 의자에 앉으라는 뜻이었지만, 동생은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침대로 다가와 내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사실 머릿속은 꽤 공황상태인 채로, 나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래서, 상대는?”
“그게…….”
동생은 여전히 우물쭈물 하는 느낌으로,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학교는 공학이다. 그것도 남녀 혼반. 여학교에 다니던 동생은 그런 새로운 학교에 전학 와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어릴 때의 그 일 때문에 남자에게 공포증도 가지고 있던 동생은 반에 어울리지 못하고 곁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 남자아이는 동생에게 도움을 주었다.
간단하게는 과제를 챙겨주거나 말을 거는 것에서, 크게는 자신의 그룹에 끼워주거나 다른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도록 도와주거나 하는 등. 그리고 그 결과 동생은 그 남학생에게 호감을 가지고, 그 호감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으로…….
이야기 하면서 동생의 얼굴은 풀어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홍조를 띄었다. 평소에 보지 못하는 모습.
지금 무슨 순정만화 찍나.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렸다. 미담은 미담이지만, 나에게는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으니까. 나의 귀여운, 착한 여동생이 왠 족보도 모를 개뼉다귀 같은 놈에게 코가 꿰여서 이렇게 볼에 홍조를 띄우다니! 왜 대한민국은 총기를 구매할 수 없단 말인가! 이리 나와라! 미국 영화의 딸을 둔 아버지들을 대신해서, 지금 내가 엽총을 가지고 그 녀석의 대가리를……!
나는 동생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날 보고 어떻게 해달라는 거야?”
겨우 내 말에 현실으로 돌아왔는지, 동생은 여전히 발개진 채로 말했다.
“그게, 나는 남자애들은 잘 모르니까, 오빠한테 상담 좀 받을까 해서…….”
평소에는 소심한 주제에, 연애 이야기가 되니까 과연 적극적이 된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런 걸 나한테 물어보다니, 그만큼 신뢰받는다고 좋아해야하려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려나.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이다. 계속해서 깎여가는 나의 정신력 수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동생은 부끄러운 듯 말했다.
“사실은, 이번에 그 애랑 주말에 놀러가기로 했거든. 그래서 어떤 옷을 입어야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그런 걸 좀 듣고 싶어서…….”
동생은 다시 우물쭈물하는 태도로 말했다. 말 자체는 간단했지만, 그 말하는 분위기는 어울리지 않게 절박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이런 날이 결국 오고 마는구나. 이대로 평범한 오빠로 보이면서 차근차근 점수를 올리고, 언젠가 “나……. 결혼하지 않을 거야. 오빠랑 계속해서 살 거야!” “기쁘구나, 내 동생아! 그렇다면 우리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자! 아무도 우리를 방해하지 않을 곳으로!” “오빠……. 나, 행복해…….”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꿈꿨는데. 아, 현실은 왜 그런 만화가 아니란 말인가.
공황상태에서 평소보다 2배 정도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결국 나는 굳게 결심하고는, 입을 열었다.
“……알겠어.”
“오빠?”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동생을 돌아보고는 외쳤다.
“알겠다, 내 동생아! 그렇다면 이 오빠가, 있는 힘껏 너를 도와주마! 여동생의 사랑을 이뤄주기 위해! 이 한 몸 바치마!”
“오, 오빠…….”
내 갑작스러운 태도에, 동생은 겁먹은 듯 몸을 움츠러들였다. 아차, 이건 좀 아닌가.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아, 아무튼! 이 오빠에게 말 해줘서 기쁘다. 알겠어.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어떻게 하면 그 개뼉다귀……. 가 아니라 그 남학생이 너에게 빠지게 할 지 함께 생각해보자.”
“으, 응……. 알았어…….”
영 석연치 않은 태도였지만, 일단 동생은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말로 기쁜 듯,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 오빠…….”
“고맙긴 뭘. 난 네 오빠잖아?”
멋진 대사를 날리며,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줄줄줄 흘렸다.
솔직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나의 귀여운 여동생이, 나 말고 다른 남자에게 볼을 붉히고, 같이 데이트에 나가고, 기쁜 듯 손을 잡고, 그리고 그 개뼉다귀 같은 녀석이 은근 슬쩍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하면, 잠시 주춤하다가 곤란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이……. 입술을 맞추고, 어, 언젠가는 함께 침대에 누워서, “처음이니까, 상냥하게 해줘…….” 같은 마, 말을 하면서, 누, 눈을 감거나 하다니! 상상만 해도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진다. 동생아! 그러면 안 돼! 남자는 다 늑대야! 짐승이라고! 그렇지 않은 이 오라버니만을 바라보고 평생을 살아야한단다!
하지만, 만약 그게 동생의 행복이라면, 그걸 웃는 얼굴로 도와주고 지켜보는 것 역시, 오빠의 역할이라는 생각도 든다. 끔찍하긴 하지만.
견딜 수 없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오빠다. 새엄마랑 아버지가 결혼해서 한 가족이 된 이상, 한 명의 남자가 아니라 한 명의 오빠란 말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피눈물을 흘리더라도 웃는 얼굴로 동생의 행복을 빌어줘야 하는 거지? 응?
마음속에서 악마가 “아예 이 기회에 둘의 관계를 박살내버려! 훼방을 놓는 거야!” 하고 유혹했지만, 애써 이성을 동원해서 때려눕혔다. 나는 그런 오빠가 아니다! 동생을 위해서, 멋진 오빠가 되어주기로 맹세했단 말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지만, 이제 와서 어쩌랴. 왜 아버지는 재혼을 한 거야! 내가 동생과 결혼한 후에 결혼을 해도 됐잖아! 까짓것 10년, 아니 5년만 기다리면 됐을 것을!
나는 속으로 여전히 피눈물을 흘리며, 동생에게 말했다.
“그럼 일단, 옷부터 맞춰볼까?”
“응, 알았어.”
동생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쁜 기색으로 자신의 방으로 동동거리며 달려갔다. 꼬리가 달려있다면 기분 좋은 기색에 빠르게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데이트(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는 주말. 벌써부터 준비를 하고 설레발을 치는 건 좀 이르다는 생각도 들지만, 기왕 도와주기로 한 이상 미리미리 준비를 해둬도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컴퓨터를 끄고, 마음의 번뇌를 애써 다스리며 동생을 기다렸다.
“오, 오래 기다렸어?”
조심스럽게 말하며, 동생은 방문을 빼꼼 열었다. 나는 말없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동생은 문을 열고, 한 아름의 옷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 그 옷은 다 뭐야?”
예상치도 못한 옷의 양에, 나는 무심코 물어버렸다. 동생은 다시 얼굴을 상기시키며 말했다.
“무, 무슨 옷이 좋을지 몰라서…….”
“…….”
하지만 동생이 손에 든 옷은 그런 말로 어떻게 될 양이 아니었다. 족히 십수 벌은 넘을 것 같은 각양각색, 가지각색의 디자인과 느낌의 옷들. 그보다 그 옷을 여기로 가져오셨다는 건, 혹시 여기서 입어보겠다는 소리인가요? 가슴의 두근거림을 애써 숨기며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 그럼, 일단 네 의견부터 들어볼까? 어떤 옷이 제일 어울릴 것 같아?”
“나, 나는…….”
동생은 내 말에 약간 동요한 것 같았지만, 이윽고 조심스럽게 침대에 내려놓은 옷더미 중에서 한 벌을 골랐다. 과연 내 생각이 지나쳤던 것인지, 동생은 옷을 자신의 몸 위에 대충 올려놓으며 말했다.
“나, 남자애들은 이런 귀여운 디자인, 어떻게 생각해?”
동생이 고른 옷은 원피스, 랄까 드레스 같은 느낌의 옷이었다. 파란 색의 프릴이 달려있는, 하늘하늘한 옷. 동생은 옷을 내려다보고 내 시선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기다린다. 나는 마음속 그대로 “너는 뭘 입든지 너무나도 예쁘단다!” 하고 소리치는 대신, 고민하는 분위기로 말했다.
“음, 확실히 너랑 잘 어울리긴 하지만, 너무 튀지 않을까? 그보다 어디로 놀러 가는 건데?”
“그, 그런가? 일단 놀러가는 데는 요 앞 놀이동산인데…….”
첫 외출부터 놀이동산을 고르다니, 제법이군. 개뼉다귀. 너 다음번에 만나면 두고 보자. 속으로 이를 갈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역시 놀이동산 가는데 그런 하늘하늘한 옷은 좀 그렇지. 많이 돌아다니기도 할 테고, 놀이기구 같은 걸 타다 보면 팔랑거리니까 위험할 수도 있고. 그보다 그런 옷은 놀이동산과는 좀 안 어울리지 않을까.”
“트, 특별히 그럴 건 같지는 않지만…….”
동생은 내 말에 좀 풀이 죽은 모양이었다. 으악, 그런 표정을 짓지 마라! 이 오빠는 너무나도 슬프단다! 동생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옷을 내려놓고, 다음 옷을 들어올렸다.
“그, 그럼 이건 어때?”
이번에 고른 것은 몸에 딱 붙는 청바지와, 폴라티의 조합. 이것도 너무나도 예쁘구나, 동생아!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활동적인 건 나쁘지 않은데, 네 이미지랑은 좀 안 어울리지 않아?”
동생은 굳이 말하자면 조용하고 얌전한 스타일이니까. 저렇게 입으면 그 매력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 저런 건 좀 활동적인 분위기의 아이랑 잘 어울리니까. 동생은 내 말에 다시 실망한 듯 말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동생은 이번에도 내키지 않는 듯 했지만, 내 말에 따르는 착한 동생답게 옷을 내려놓고는 다음 옷을 골랐다.
이번 옷은 무릎 위로 조금 올라간 미니스커트와 셔츠였다. 나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치마가 너무 짧잖아. 남자는 늑대라고. 오빠로서 나는 네가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걸 허락할 수 없다!”
그렇게 공방을 벌인 것이 몇 번. 결국 동생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빠는 그럼 어떤 옷이 좋다는 거야……?”
풀이 죽은 목소리로 동생은 나를 보며 말했다. 약간 삐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윽, 마음에 가책이 느껴진다. 나는 잠시 대꾸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사실 곤란하니까.
내 동생은 무얼 입어도 예쁘다. 지금까지 고른 옷들만 해도 모두 어울린다. 너무나도 예쁘다. 하지만 문제가 있으니, 그런 옷차림을 그런 개뼉다귀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연하지! 어디서 감히!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그 녀석과 놀러가야 할 테니 가장 예쁜 옷을 골라줘야 하고, 하지만 너무 예쁜 옷은 골라주고 싶지 않고, 동생은 뭘 입어도 너무 예쁘고……. 답이 없는 사지선다형 문제를 푸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결국 ‘너무 예쁘지 않은, 하지만 적당히 그 남학생도 고개를 끄덕일 옷’을 골라야한다는 것인데…….
내 침묵을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동생은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오빠라면 내가 같이 놀러갈 때 무슨 옷을 입는 게 제일 좋은데?”
“그야 무슨 옷이든 오케이지!”
대답을 내뱉고 나는 동생의 표정을 보고 깨달았다. 아차, 너무 억눌렸다. 동생은 방금까지 토라졌던 걸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빨간 얼굴로 더듬더듬 말했다.
“저, 정말, 계속 그렇게 놀린다니까……. 장난치지 말고, 응?”
“…….”
진담인데. 나는 약간 상처받은 채로, 어쩔 수 없다는 듯 조심스럽게 동생의 옷더미를 뒤지다 골랐다.
“그럼 이게 제일 좋아.”
내가 고른 것은, 적당히 종아리 부분쯤에 멈추는 치마와, 하얀색의 가디건이었다. 이거라면 동생의 청순미를 살리고, 동시에 발랄한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역시 이것도 보이기 아까울 정도로 예뻤지만, 어떻게든 봐줄 수 있다. 동생도 내 선택에 동의하는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가 보기에는, 이게 제일 좋다 이거지?”
끄덕.
“알았어. 그럼 이 옷으로 할게.”
웃는 얼굴로 동생은 대답했다. 그 웃음에 다시 타격을 받으며, 나는 작은 신음을 흘렸다. 내가 골라준 저 옷을 입고, 기쁜 듯 개뼉다귀와 놀이동산을 누비는 여동생의 모습이 떠올랐으니까. 아아, 아아…….
“그럼 머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머, 머리?”
“응, 머리.”
동생은 자신의 긴 생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머리라, 이것도 어려운 문제구나. 한 고비 넘어서 다음 고비라니. 나는 고민했다. 동생은 내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그냥 이렇게 가는 것도 좀 그럴 것 같아서……. 역시 묶거나 하는 게 좋을까?”
“나는, 그 대로가, 제일 좋을 것 같은데…….”
늘 생머리를 내리고 다니는 동생의 이미지에 맞춘 옷이었기에, 나는 그렇게 말했다. 묶는 것도 평소와는 다른 이미지를 보여서 좋을 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동생은 저 머리가 제일 잘 어울린다. 청순한 느낌이 제일이니까. 내 대답에 동생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묶거나 하지 않아도 될까?”
“넌 역시 그 머리가 제일 잘 어울려.”
조심스럽게 머리를 쓸어내리던 동생의 손이 멈춘다. 아차, 이것도 NG? 하지만 동생은 쓸어내리던 자신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만져본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하긴 나도 이 머리가 제일 편하니까……. 너무 꾸미거나 해도 안 좋겠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은 작게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계속 쓸어내렸다.
그 뒤로도 동생의 데이트를 같이 고민했다. 가서 어떻게 말할 것인가, 어디를 먼저 갈 것인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등등. 나는 있는 힘껏 동생을 사랑하는 오빠로서(두 가지 의미로서 전부)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 반, 보여주기 싫다는 생각 반이라 내 번뇌는 가라앉을 줄을 몰랐지만. 나는 강경한 자세로 절대 빈틈을 보이지 마라, 입을 맞추려고 하면 뺨을 날려버려라, 절대로 눈을 감거나 발돋움을 한다던가 하면 안 된다 등등 조언을 했고, 동생은 그럴 때마다 어딘가 책망하는 눈빛과 해석할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새벽 중이었다. 겨우 계획이 일단락 된 동생은 옷더미를 들어올리고 나를 보며 말했다.
“도와줘서 고마워, 오빠. 많은 도움이 됐어.”
눈이 부실 정도의 미소를 짓는 동생의 얼굴을 보면서, 마음속에서 출혈과다로 쇼크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나는 애써 웃어보였다. 결국 내가 짠 계획대로 내 동생은 그 개뼉다귀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겠지. 두고보자, 개뼉다귀! 집에 인사하러 오면 눈물 쏙 뽑을 정도로, 깐깐한 시어머니보다 더 엄하게 대해주마! 그러는 사이 동생은 옷더미를 가지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잘 자, 오빠.” 라는 마지막 공격을 날리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하아…….”
웃으면서 대꾸한 것으로 나는 결국 출혈과다로 사망했다. 기운이 빠진 나는 앉아있던 침대에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남자친구라…….”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을 생각도 못한 건 아니었지만, 마음이 복잡하다. 역시 이런 마음을 가진 건 오빠로서 이상한 걸까? 아니 이상하겠지. 피는 이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이제는 귀여운 여동생인데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은. 하지만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다고 하는데, 하물며 가족이야!
“그래도, 오빠로서 행복을 빌어줘야겠지…….”
나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그래, 오빠로서, 동생의 연애를 응원해야겠지. 복잡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오빠니까. 그 날, 가족이 된 날, 인사를 마치고 서로 집으로 돌아갈 때, 동생은 나를 올려보며 말했으니까.
“저기, 앞으로, 잘 부탁해요……. ‘오빠’.”
그 날부터, 나는 오빠다. 상처를 가지고, 우물쭈물하고, 매사에 조심스러워하는 그 아이의 오빠가 되었다. 그렇다면, 오빠로서 대해야겠지. 웃는 얼굴로, 동생의 행복을 빌어야겠지.
하지만 역시 데이트는 용서할 수 없다. 그 날은 몰래 따라가야지. 그리고 만약 동생에게 수상한 수작이라도 부리려고 하면, 그 개뼉다귀를 날려 버릴 테다. 나는 굳게 결심했다.
결행은 이번 주말. 아무래도 미행 방법이라도 공부해봐야겠다. 동생을 사랑하는 오빠에서 한 발자국 더 위험한 곳으로 발을 내딛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잘 됐어. 오빠도 진심으로 생각해서 말해줬고.”
그 대답에, 친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너도 참 위험하다. 어떻게 그런 계획을 짤 수가 있어?”
친구의 한심하다는 눈에, 동생은 우물쭈물 하면서도 대답했다.
“하지만, 오빠가 되었지만, 나도 여자인걸.”
“그게 위험하다는 거야.”
“하지만…….”
뭔가 말하려고 하는 동생을 말리며, 친구는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에휴, 뭐 어쨌든 잘 해봐. 너도 참 고생이다.”
“응, 고마워.”
조심스럽게 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한테 다른 여자가 생기기 전에, 나를 여자로 보게 할 거야.”
“대단하다, 진짜.”
친구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조심스럽게, 동생은 주머니에 들어있는 티켓 두 장을 만지작거렸다. 미리 예매해둔 주말 놀이동산 입장권. 같이 놀러가기로 한 남학생은, 계획대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전날 오빠에게 울면서 그 사실을 고할 것이다. 그리고 티켓을 보여주겠지. 그리고 말할 것이다.
“이 티켓, 어떻게 하지……?”
그러면 오빠는 대답하겠지.
“그 녀석 나중에 만나면 가만 안두겠어! 그럼, 일단 나랑 같이 가자. 표도 아까우니까.”
그렇게 말하는 오빠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동생은 작게 웃었다. 친구가 복잡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것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빠를 사랑하는 동생에서 한 발자국 내딛을 주말이 기다려져서, 동생은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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